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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을 권리 일깨운 <언노운 걸>

기사입력 2017-05-11 14:43

▲<언노운 걸> 영화 장면(박미령 동년기자)
▲<언노운 걸> 영화 장면(박미령 동년기자)
흔치 않은 시사회 초대를 받았다. 작가주의 소형영화지만 칸이 사랑하는 다르덴 형제의 새 영화라 시작부터 가슴이 설렜다. 다르덴 형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7번이나 오르고 2번의 수상을 거머쥔 그야말로 칸의 황제라 할만하다. 어느 해인가 다르덴 형제가 작품을 출품하지 않은 해에 수상한 감독은 그들이 출품하지 않은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대부분 사회 문제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집요할 만큼 물고 늘어진다. 그러다 보니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심심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달고 짠 외식에 시달린 미각이 평양냉면의 달관한 무미함에 위로받듯 할리우드의 속 빈 깡통 같은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모처럼 영화의 세계에 진지하게 몰두한 시간이었다.

영화는 ‘다르덴 형제가 주목하는 가해자는 어떤 형상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집요하게 쫓는다. 그 역할을 주인공 제니(아델 하에넬 분)가 오롯이 감당한다. 그녀는 의사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진료시간이 끝난 이후 병원 문을 두드린 소녀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것, 그것뿐이다. 게다가 그녀의 죽음이 진료를 받지 못한 때문만도 아니다.

제니도 평범한 의사로 격무에 시달리는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며 좀 더 나은 종합병원에로의 탈출을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건은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며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제니는 죄의식을 느끼며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소녀의 이름이다. 단지 소녀의 가족에게 그녀의 죽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바로 이 대목에 다르덴 형제의 시선이 숨어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칸이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 홍상수가 떠오른다. 그도 다르덴 형제 못지않게 수십 년간 인간의 문제를 끈질기게 추적해온 작가다. 그러나 홍상수가 인간 개개인의 내면에 숨어있는 추한 진실에 천착해 왔다면 다르덴 형제는 사회문제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제니의 죄책감 속에는 유럽이 처한 가슴 아픈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죽은 소녀는 불법체류자로서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험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였다. 이는 유럽 사회가 외면하고 싶지만,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제이다. 감독은 이 부분을 들춰내며 우리들의 각성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자극적인 장면이나 극적인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 마지노선이 바로 ‘이름 찾기’인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이름을 찾기 위해 다니는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 입장에서도 그녀의 죄책감은 과도해 보인다. 어쩌면 감독이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을 만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바로 이러한 우리의 감성이 얼마나 죄의식에 무뎌져 있는지를 생생하게 일깨운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어느새 우리는 타인의 문제에 무감각하게 되어버렸다. 사회적 정의는 누군가가 지켜야 하는 것이고 나와는 무관한 듯 살아가고 있다. 문명화된 선진국들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의 등장은 이런 현상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현실이 워낙 극적이라 오히려 다르덴의 심심함이 우리를 각성하게 하는지 모른다.

티저 포스터에 환자의 등을 응시하는 제니의 눈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마지막에 제니의 눈은 환자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다르덴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설 때 김춘수의 절창이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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