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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없는 사랑의 꽃, 상사화

기사입력 2016-10-21 15:57

▲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꽃, 상사화(김진옥 동년기자)
▲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꽃, 상사화(김진옥 동년기자)

상사화의 꽃과 잎은 동시에 볼 수 없다. 그래서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다. 그날 선운사 산자락 아래 너른 들판은 발 디딜 틈 없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마치 꽃물에 젖어 치맛자락까지 붉게 물들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웅전을 거쳐 작은 선방 주변까지 꽃들의 잔치가 이어졌다. 그러다 한 작은 선방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 아래 홀로 외롭게 피어 있는 가녀린 상사화를 보게 되었다. 순간 필자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누군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픔이 전해지면서 가슴속이 뭉클했다.

지금 스님이 되어 선운사 작은 선방에서 수행하고 있는 한 사람. 저 댓돌 위에 놓인 신발의 주인을 무척이나 연모했던 여인이 있었다면 그녀의 영혼이 혹시 상사화로 피어서라도 스님 가까이 있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스님이 신을 신을 때마다 가녀린 꽃술로 바지 자락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스님은 홀로 피어 있는 꽃을 혹여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레 비켜가기만 한다. 상사화는 "난 당신 발에 밟혀 스러져도 좋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저를 바라봐주셔요"라고 외치는 듯 피어 있다. 그러나 스님은 가을바람 속 풍경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있다. "전생에 당신과 내가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言約을 벌써 다 잊으셨는지요. 나는 당신이 너무 그리워 몇 생을 거듭나 새, 나비, 지금은 꽃으로 님의 곁에 와 있는데 당신은 아직도 저를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이렇게 피 토할 듯 붉은 꽃 화관을 머리에 얹은 채 여리고 가는 목 길게 뽑고 당신만 바라보고 정녕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꽃을 바라보다 뭉글해진 마음을 어쩌지 못해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만 소설까지 쓰고 만다. 상사화는 그 이름만으로도 몇 가지 전설이 있다. 어느 스님이 세속의 처녀를 사랑하여 가슴만 태우며 시름시름 앓다가 입적(入寂)한 후 그 자리에 피어났다는 설, 스님을 사모하여 불가로 출가하겠다는 딸을 억지로 결혼시켜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살게 해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홀로 애태우다 죽은 여인의 넋이 꽃이 되었다는 설, 옛날 한 처녀가 스님을 사모하다가 그 사랑을 전하지도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눈을 감았는데 스님 방 앞에 어느 날 이름 모를 꽃이 피자 사람들은 상사병으로 죽은 처녀의 넋이 꽃이 되었다고 생각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모든 설들이 한결같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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