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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후덕하게 늙어갑시다

기사입력 2016-10-05 09:06

여고 졸업 후 A대학 붙었다 B대학 떨어졌다 하면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친구가 어느 날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남자친구가 있었던 그 친구는 집에서 반대를 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하소연을 듣고 있는데 친구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시더니 제게 물었습니다.

“얘, 너는 어느 대학 갔니?”

저는 당시 아버지가 사업에 두 번이나 실패하시는 바람에 대학은 꿈도 못 꾸고 있었습니다.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동네 초·중등학생들을 모아 과외를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 어머니를 보자 대학도 못 간 친구랑은 놀지 말라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몇십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날 집에 와서 베개가 흠뻑 젖도록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젯밤 늦게 “엄마가 돌아가셨다, 국립의료원 oo호실이다.”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바로 저를 그토록 무시하던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문자였습니다. TV 드라마를 볼 때 나쁜 인간을 보면 죽어버리거나 반드시 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막상 그 사람이 죽으면 연민이 느껴지면서 한쪽 가슴이 허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날 제 심정이 그랬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 저 그때 엄청 상처받았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평생 그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마음만 그랬지 생전에 뵈었어도 그 말은 끝내 못 했을 겁니다. 어쩌면 친구 어머니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이 가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가시는 친구의 어머니를 뵈러 갈 것입니다. 가서 명복을 빌어드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상처 받지도 말고 상처 주지도 맙시다.

여고 시절 그 일을 겪고 난 후 저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종종 나이든 사람에게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어린아이들보다 부족한 경우를 봅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남을 더 배려하고 후덕해져야 합니다.

덕 있게 늙어가는 일만이 우리가 앞으로 빚어낼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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