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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 (15) 디즈니랜드의 추억2

기사입력 2016-08-11 19:28

▲디즈니 랜드의 웅장한 성앞에서. (양복희 동년기자)
▲디즈니 랜드의 웅장한 성앞에서. (양복희 동년기자)
여행은 언제나 기쁨을 안겨준다. 생소한 곳을 처음으로 체험하는 것은 신세계이기 때문이다. 필자 가족의 첫 디즈니랜드 여행은 잊지 못할 고통의 얼룩진 추억이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또한 귀한 삶의 깊은 체험이었다.

긴 하루의 일정에 몸과 마음이 지쳤으나 정신은 말똥거렸다. 아마도 디즈니랜드의 신비한 것들을 체험한 여운이었나 보다. 그러나 웬걸 남편은 또 실수를 저질렀다. 허둥지둥했으니 후리 웨이에서 들어오는 입구를 잘못 탄 것 같다. 집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의 30분은 달린 것 같았는데 그제야 이상하다는 것이다. 어쩌란 말인 가. 다시 내려서 돌아가는 길 밖에는 없었다.

남편은 길눈이 어두웠다. 잠깐 필자가 딴청을 하면 다른 길로 빠져서 다투기가 일쑤다. 더구나 정신없는 하루에 그럴 만도 하기는 했지만, 화가 치솟았다. 아이들이 깰까 봐 소리를 낼 수도 없고 필자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다시 내려서 한 바퀴를 돌아 집 방향으로 향했다. 필자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으나 남편은 거절을 했다. 하는 수없이 두 눈을 감고 긴 호흡을 몰아쉬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루의 긴 일정에 정신이 없으니 생각조차 못 했다. 갑자기 남편이 큰일 났다며 필자를 쳐다보면서도 말을 꺼내지 못 했다. 너무나 엄청나니 본인도 감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나 보다. 잃어버린 열쇠 꾸러미에 집 열쇠와 세탁소 열쇠 몽땅 다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잠이 홀딱 달아나 버렸다. ‘그렇지 맞아! 까마득히 생각을 못했네. 어떡하지?’ 필자는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방법은 없었으나 일단은 집으로 향했다. 남편과는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서 겨우 집 앞에 왔으나, 불 꺼진 아파트 창문은 그림의 떡이었다. 열쇠가 없으니 들어갈 수가 없어 차 안에서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뒤돌아보니 아이들은 이리저리 엉켜져 골아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깰 가 봐 조심스럽게 내려서 방법을 궁리했다. 달빛이 환하게 비추어왔다.

날이 새도록 차 안에만 있을 수 없으니, 남편은 이리저리 다니며 집으로 들어갈 궁리를 했다. 얼마 후에 남편은 방법이 있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굴뚝을 타고 올라가 지붕으로 가서, 다시 2층 필자의 아파트 베란다로 뛰어내려 창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필자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칫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고, 또 지붕에서 떨어지면 더 큰일이라 강력하게 반대를 했다.

잔디밭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피로는 몰려오는데,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고 밤 시간은 아주 길기만 했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 다시 차 안으로 살짝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누군가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남편의 환한 미소가 필자를 깨우고 있었다. 드디어 문을 열었으니 아이들을 깨워서 집으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일단은 나오라고 했다.

새벽 5시 반, 아이들은 떠지지 않는 눈으로 겨우 일어나 투덜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도대체가 궁금해서 조용히 물었다. 남편은 끝내 혼자서 아까 말한 방법대로 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일이었지만 우선은 문이 열렸으니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역시 책임감 강한 남자였고, 든든한 가장이라는 마음에 남편이 다시 보였다. 필자는 걱정이 살짝 들어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제 곧, 아침이 오면 세탁소 문 열 일이 또 다른 비용 고통으로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로 했다.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산 넘어 산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열쇠에 대한 강박관념이 필자를 사로잡았다. 필자 부부에게는 커다란 트라우마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대체로 한인들은, 더구나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디즈니랜드를 몇 번씩은 다녀온다. 대 어둠의 추억이 남겨진 여행 이후에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여러 번을 더 다녀왔다. 필자도 손님이 올 때마다 가이드를 해주었다. 어쩌다 가끔씩은 또 가서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곳이었지만, 남편은 몸서리치며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비록 진한 여행의 고통은 남겨졌지만, 어려운 초기 이민 시기에 잊지 못할 가족여행으로 필자에게는 영원한 추억이 되어 남아 있었다.

언젠가 한번 또 가서 신나게 놀면서 젊은 하루를 즐기며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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