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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하늘은 이미 내 안에 살아

기사입력 2016-07-19 15:56

내가 사진 촬영을 위해 떠나는 여행의 목적지는 오지라 불리는 곳, 그러니까 세계의 변두리나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구석진 곳들이 대부분이다. 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지역이라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로부터 멀어진 순수한 삶의 모습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쐴 수 있으니 그 정도의 불편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돌아보면, 잊을 수 없는 경험이나 세상에 하고픈 이야기들도 대개는 그런 오지로부터 바람처럼 불어왔다.

그런 여행 중 피엔지(PNG)라고 불리는 파푸아뉴기니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였다. 더니든(Dunedin). 남섬과 북섬으로 길게 이어진 뉴질랜드. 그 남섬에서도 남동쪽 남극해와 닿아 있는 더니든에서 나는 보고픈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친구가 안내한 바닷가는 한적했다. 아니 우리밖에 없었다. 친구와 두 딸,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맞는 바람은 순하고 조용했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우리 세대는 그렇게 살았다.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다음 날 친구가 안내한 곳은 넓은 바다가 한눈에 가득 보이는 높은 절벽 위였다. 절벽 끝에는 등대가 있었고 커다란 새들이 많이 있었다. 처음 본 새였는데 가까이 다가가도 별로 피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이상한 새였다.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새는 방향도 바꾸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졸고 있는 새는 뭔가 좀 모자라는 녀석처럼 보였다. 부리를 아예 몸 깊이 묻고 자고 있는 새는 무슨 배짱인지 내가 곁에 가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가까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야생의 큰 새를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었다. 몸의 크기에 비례해 부리도 아주 컸지만 뾰족한 구석이 없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한 녀석이 잠자기도 지겨웠는지 기지개를 켰는데, 난 정말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큰 몸에 날개가 펴진 것이다. 이렇게 클 수 있다니! 바로 그 유명한 알바트로스가 땅에 발을 딛고 활짝 펼친 날개를 본 것이다.

친구의 권유에 따라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그것이 알바트로스-신천옹(信天翁)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이라 했다. 난 그렇게 보고픈 그 친구와 한동안 하늘을 유영하는 창공의 왕자들의 눈으로 하늘보다 더 높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 당시 연재하고 있던 내 고정 칼럼 ‘프리즘 파인더’에 올렸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도서출판 한세가 발행하는 주간지 프리즘이다. 최종훈 편집장이 글을 붙여 주었다. 내 사진과 설명이 단번에 녹아나는 글이었다. 사진가인 나는 글의 힘을 보았다. 그동안 좋은 글은 많이 만났어도 내 사진과 얘기에 맞춰 내 앞에서 그것이 글다운 글로 만들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흥분된 내 설명과 감정을 가라앉히면서 생각을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글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하늘은 이미 내 안에 살아

하늘 위에 더 높은 하늘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모든 게 하찮아졌어.

두 번씩이나 접히는 내 크고 고운 날개도,

더 높이 날아서 더 멀리 봐야 한다는 의지도.

그래, 이름 석 자를 위해 퍼덕이기엔 난 너무 늙었어!

신천옹 네 이름만큼이나

하늘 위에 더 높은 하늘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난 자주 여기서 살아.

날개를 접고 부리를 땅에 박고 있을 때조차 난 이곳에 떠 있지

약해진 두 발목을 노리는 올가미로도, 약 먹인 낟알로도,

단 한 발로 모든 걸 끝내버리는 총알로도 날 여기서 끌어내릴 순 없어.

난 이미 하늘보다 더 높은 하늘을 내 안에 넣어뒀거든

하늘은 이미 내 안에 살아

그리고 한참 후에 보들레르가 같은 새 알바트로스를 노래한 시를 보았는데, 난 최종훈의 글이 감히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보다 한층 더 좋다고 생각했다. 보들레르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글로 눈을 열어준 내겐 참 아름답고 귀한 사람이다.



◇ 함철훈 사진가 개인전 '풍류(風流)' 안내

장소 포스코미술관(포스코센터 지하1층)

일정 7월 13일~8월 9일 *평일 10~19시, 토요일 정오~17시, 일요일ㆍ공휴일 휴관

▲사진작가 함철훈 개인전 '풍류' 포스터. (출처=포스코미술관)
▲사진작가 함철훈 개인전 '풍류' 포스터. (출처=포스코미술관)
'우리가 만난 바람과 물'이라는 부제로 펼쳐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브라보 마이 라이프> 지면을 통해 선보인 몇몇 사진과 더불어 함철훈 사진가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울러 그동안 연재한 '함철훈의 사진 이야기'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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