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항상 ‘남편은 큰 아들’이란 정신에 충만해 있다. 내내 참고 산다. 어떻게 필자 마음대로만 하고 살겠는가. 어찌 할 말을 다하고 살겠나. 요상스러운 것은 저녁이면 남편이 그리워지고 올 때를 기다린다. 소통하며 친하게 지내야 한다.
하지만 남편은 필자의 이런 ‘소통 모드‘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필자가 있는 맘 없는 맘 잔뜩 먹고 잘 지내려 가까이 가면 여지없이 어기짱을 놓는다. 반드시 싸우게 된다. 오히려 데면데면 지내야 별 탈 없다. 너무 오랫동안 달라진 서로의 입장이 안타깝다.
특히 남편은 술을 먹고 오는 날이 문제다. 이런 날은 자기의 의견을 말한다. 평소에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 주장만 한다. 떼쓰는 듯 기분 잡치는 말만 한다. 말할 때 잘난 척을 하고 남편을 무시했단다. 그런 문제가 대화를 못 하게 한듯하다. ‘당신한테 말해봤자’ 라는 생각이 들며, 이야기하기가 겁난다고 했다. 그때 서로 솔직한 대화를 했어야 했다. “당신한테 이야기해봐야 안 통해” 끝말을 쏟아 놓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밤에 베개를 껴안고, 마루를 오가며, 며칠을 힘들어 했다. 밤 2시에 아파트 마당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선생님, 한 밤중에 돌아다니시데요.” 이런 말을 경비원한테 듣기도 했다. 가슴에 통증을 올 때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와 다툼이 있으면 기운이 지치면서도 대항해 보려고 했다. 서로 대화의 기법이 달랐다. 지금은 오로지 필자 마음 아프지 않게 살아야 한다.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다툼이 시작되려고 하면 어느 시점에서 “아이 왜 이리 졸려, 자야겠네.” 하면서 일단 방으로 들어가는 지혜가 생겼다. 내게 강 같은 평화를 주소서. 암시를 한다. 잠들기 전 화난 마음으로 잠들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한테 이야기해 봤자 바뀌지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내 생각만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 집히지 말자. 오로지 일에 열중하는 남편, 나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남편에 대한 미움이 컸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 낫다. 옆집 아저씨다. 그런데 그 아저씨 참 착하다. 나한테 용돈을 주지 않는가. 캄캄한 밤이 오면 기다릴 사람이 있다. 서성거리는 그림자라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참는다.
지금은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을 격려하며 지내고 있다. 그의 사업장에 찾아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는다. 그런데 그는 필자가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껏 살아보니 남편과 필자는 많이 다르다. 그는 현실적이고 필자는 감성적인 편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겠다. 솔직하게 표현하고 공유해야겠다. 여러 번을 반복해서 어깃장 놓는 소리를 해도 ‘그랬군요.’ 동조를 해준다.
‘내가 전생에 진 빚 갚겠습니다.’
‘남편 밥은 앉아서 먹고, 자식 밥은 서서 먹는다.’ 이 두 구절로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