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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강추하는 아름다운 사람

기사입력 2016-06-28 16:35

필자의 이민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이민 가기 전에 이민1세가 살아야 할 삶의 행로가 불보 듯했다. 이미 필자보다 먼저 이민한 언니로부터 기능도 익혀오지 말고 노동력이나 강화하여 오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래서 필자가 한 이민 준비는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밭매기 봉사 두어 달 한 것이었다. 흙과 함께 잔뼈가 굵은 농군의 아내와 함께 이른 아침부터 땅거미 뉘엿뉘엿 긴 그림자 드리우는 저녁까지 보수도 없이 긴 하루를 농사일 했다 보수로 받은 신선한 야채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런 알짜의 이민정보와 마음의 준비로 미국 땅을 밟았건만 여전히 복병은 있었다.

취미로도 하지 않았던 바느질을 해야 하는 세탁소를 인수했다. 드랍 오프(drop off)다. 세탁은 자체 처리하지 않고 옷수선만 하는 가게인데 주수입원이 옷수선이다. 재봉틀에 실 꿰는 법도 모르는 필자를 전 주인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준 아이디어는 “ 처음에는 쉬운 것만 소화하고 어려운 것은 반반 나누는 외부로 보내세요”다

필자도 걱정하였고 주위의 사람들도 걱정하였던 그 어려운 일이 들어왔다. 한 눈으로 봐도 고급여성 수트인데 소매의 끝을 완전히 디자인 바꾸는 일이다. 주문받는 순간부터 가슴이 벌렁거려 그 일을 밀어내고 싶었다. 가격 높게 불러 손님 쫓아내리라 생각하고 높은 가격을 불렀건만 손님이 쾌히 받아들인다. “고급이고 내가 무척 좋아하는 수트이니까 일이나 잘해줘. 왕창 세일해서 400달러야” 한다. 할 수 없이 납품일을 최대한 멀찌감치 잡았다. 혹 손님이 그 시간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필자에게 맡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었다. 여전히 좋단다.

두 주 약속의 시간동안 필자는 늘 수트만 생각하였다. '할까, 말까, 외부로 보낼까'를 왔다 갔다 했다. 400달러 공탁 걸고 그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실수하면 변상하겠다. 인명이 왔다갔다하는 일도 아닌데 위험부담 줄이려는 소극적인 자세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다른 일 다 마쳐놓고 하루를 잡았다. 기도하는 자세로 옷을 손에 잡았다.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면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온 몸과 마음을 다한 정성이지만 역시 기술적인 작업이라 메뚜기 뛰어봤자의 결과다.

약속한 날 손님이 왔고 필자는 감히 손님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 보지 않아도 손님의 실망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할 게 뻔했다. 형량의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그 짧은 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한참 만에 손님은 “탱큐”라는 마지못해 하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5달러의 팁을 놓고 옷을 낚아채 듯 내 가게를 떠났다. 그 손님의 얼굴을 다시 보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한 달 후에 그 손님은 필자를 찾았고 단골이 되었다

6개월 후 어느 날. “숙, 너 내 옷 망친 거 아니? 그날 나는 너를 쥐어박고 싶었다. 그날 네가 이민 초년생이란 걸 알 수 있었기에……. 내 부모가 처음 이태리에서 미국 왔을 때의 어려움이 생각나 너에게 불평을 할 수가 없었지. 잘 버티라고 힘주려고 팁을 놓고 갔다. 하지만 너 아주 스마트하다. 겨우 여섯 달 짧은 기간에 좋은 심스트레스(seam stress)가 되었네! 이제부터는 내 친구들 데리고 올게.” 이 일방적인 약속은 철저히 지켜졌다. 캐더린이 데리고 온 가족과 친구들은 오랜 동안 단골손님이었다. 작은 몸집의 줄담배인 캐더린은 필자 가슴에 온정이라는 작은 불을 켜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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