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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퇴역군인의 죽음 앞에서

기사입력 2016-06-16 14:17

▲최근 현역 시절 상관으로 모시던 퇴역군인이 돌아갔다. (김종범 동년기자)
▲최근 현역 시절 상관으로 모시던 퇴역군인이 돌아갔다. (김종범 동년기자)
임이시어! 홍 경호! 홍 요셉! 형제님 이시어

오늘 이 화창한 초여름에, 따뜻한 체온을 함께 나눌 수 없는 먼 길로 영영 긴 작별을 해야만 하는 섭섭한 안타까움이, 쓰나미 해일처럼 우리 가슴 속을 덮어 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셨지만, 뿜어져 나오는 정기는 누구도 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강인함과 올곧은 모습은, 주위 세상을 이끌어 가기에도 충분하시었고, 매사에 정도를 택하시어 빈틈없는 이승의 행로를 거룩하게 마무리하셨습니다.

허스키한 음성에 호탕한 웃음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둘러앉아 식사할 땐 음식을 그리 맛있게 드셨습니다. 밥억고 담소하며, 함께 즐겼던 시간이 서글프게 마음에 쌓여갑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청춘 시절엔 직업군인 가난을 달고 사셨습니다. 누구나 그즈음엔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겠지만 남다른 학구열과 집중력을 발휘해 병사에서 영관장교까지 진급하신 자수성가, 대기만성의 표본이셨습니다.

설악산 뒤편의 깊숙한 골짜기 속에서 30kg 모래 배낭을 메고 산악구보할 땐 전투복 등판에 배어나온 검붉은 핏자국을 개울가에서 같이 앉아 빨아 말리기도 하셨습니다. 한여름 한국전쟁 기념일 전후로 하는 혹서기 천리행군과, 12월 크리스마스를 앞에 두고 강행했던 혹한기 천리행군 때는 잰걸음으로 항상 선두에 나서 팀원을 이끄셨습니다. 고공낙하 훈련 시에는 팀원들의 무사 귀대를 기원하며 부인과 함께 성당에 나가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셨습니다. 당시 팀원들은 전우애를 알기 전에 이런 훈훈한 인간애를 함께하셨습니다.

주도면밀한 전략과 반복적인 철저한 훈련으로, 맡겨지는 임무수행에서도 탁월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짧게나마 같이했던 힘겹고 즐거웠던 시간, 이제 우리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끼리끼리 모여 옛일을 얘기할 때마다 한 장씩, 한 켜씩 꺼내 들춰보게 될 것입니다.

전역 후엔 인생의 선배로서뿐만 아니라 혈육으로 맺어진 친형제처럼, 계절마다 만나서 회포도 풀고 정도 쌓으며 이승에서의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퇴촌 산자락에 수십 개의 벌통을 줄 세워 앉혀 놓고 자나 깨나 그물망을 덮어쓰고 따가운 벌침에 쏘여가며, 향긋한 꿀맛을 주위의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셨습니다. 꿀맛보다 더 달콤한 인간의 정을 함께하셨음에 보내 드리는 우리 가슴이 더욱 메워 옵니다.

남들보다 더 투철한 사명감과 국가관을 갖고 조국의 국방에 30여 년 젊음을 받치는 동안, 부인께서는 묵묵히 다정한 손길과, 따뜻한 미소로 서방님의 손발이 되어 빛나지 않는 아름다운 내조자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셨습지다. 가시는 임의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반쪽이셨습니다.

그 어떤 서방님이고 그 어떤 아버지셨는데, 이렇게 먼저 떠나보내야 하시다니…. 서글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누가 신 알아줄 수 있겠으며, 어느 누가 보듬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젊고 건실한 두 아들과 함께 못다 이루신 임의 뜻을 받들어 기도드리며, 임이 떠나가신 커다란 공간을 메워 나가셔야 합니다. 속상하고, 처절하고, 불쌍하고, 안타까워 눈앞이 캄캄하시겠지만 앞으로는 저희가 함께할 것입니다. 조금만 힘을 더 내시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 같은 친근한 모습을, 오늘 먼저 가시는 임은 기대하고 계실 겁니다.

평상시 혈육의 정을 나누시었던 일가친척분들 모두, 하느님의 자식인 성당의 형제ㆍ재매님들 모두, 그리고 임의 떠나시는 먼 길을 배웅하기 위하여 모여 있는 우리 모두가 두 손 모아 빕니다.

하늘나라 주님의 품에 따뜻하게 안기시어, 연년세세 평안하시고 편하신 곳에서 영면하시길 비옵니다.

삼가임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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