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홍혜걸 비온뒤 칼럼] C형 간염, 당신도 위험할 수 있다

기사입력 2016-04-25 08:57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동네의원에서 수액 주사를 맞았던 환자들에게 C형 간염이 집단 발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숫자만 67명입니다. 주사기를 돌려쓴 것이 결정적 원인입니다. 원장과 원장부인도 감염됐고, 원장은 거동이 불편한 뇌병변장애인이란 소식도 들려옵니다. 면허갱신 등 의사 재교육 필요성이 대두되고 미필적 고의에 대한 형사처벌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원장에 대한 정신감정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혹은 인격장애 수준의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비상식적인 의료행위를 수년 동안 버젓이 자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이 다수의 선량한 동네의원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당한 환자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입니다. 알다시피 C형 간염은 죽을 수 있는 병입니다. 치료제가 있다 하나 완치가 쉽지 않고 만성 간염과 간 병변, 간암으로 악화합니다.

불행한 소식은 갈수록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C형 간염 신규환자가 2002년 1927명에서 2010년 5630명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B형 간염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2012년을 기점으로 C형 간염이 앞지르고 있습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지역적 편차입니다. 2015년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기모란 교수팀이 건강보험공단 유병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적으로 광역단체로는 부산, 기초단체로는 전남 진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전국 평균보다 부산은 2배, 진도는 5배나 높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해마다 수천 명씩 누군가 몹시 황당하고 억울한 과정을 통해 C형 간염에 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고리는 단연 혈액입니다. C형 간염은 술잔이나 키스, 가벼운 성생활 등 일상적 접촉으론 거의 옮기지 않습니다. 타액이나 정액보다 혈액을 통해 주로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로든 다른 사람의 혈액이 나의 혈액과 섞이는 상황이 가장 위험합니다. 이것은 에이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사례별로 알아봅니다.

주사기 주사기는 그냥 한 번 찔리기만 해도 걸릴 수 있습니다. 감염자를 찌른 주사기에 의료인이 사고로 찔린 경우 대략 1~3%에서 감염됩니다.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의 양입니다. 감염자의 혈액이 많이 들어갈수록 확률이 증가합니다. 단순히 바늘에 찔리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처럼 수액을 통해 역류한 피가 섞여 들어갈 경우 확률이 수십 배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번 경우는 예외지만 주사기는 대부분 병원 밖에서의 사용이 문제입니다. 마약 등 약물 중독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 부산에서 C형 간염 환자가 많은 것도 국제 항구란 지역의 특성상 마약 사용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사기는 일회용을 써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B형 간염 환자가 국민병이라 불릴 정도로 창궐했던 이유도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을 대상으로 전염병 단체 접종을 하던 과정에서 지금처럼 일회용이 아닌 주사기로 수백 명을 찔렀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침과 문신 침을 맞거나 피어싱 혹은 문신을 새길 때 반드시 바늘 등 시술 도구가 제대로 소독된 것이지 확인해야 합니다. 까다롭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말입니다. 이것은 환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부분 일회용을 쓰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다른 사람을 찔렀던 도구를 나에게 찌르려 하는 경우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전남 진도에서 C형 간염이 전국 평균 5배나 많았다는 사실은 이들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허술하게 침과 문신 시술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해석합니다. 문신의 경우 도구만 소독해선 안 됩니다. 바르는 문신용 염색약에 바이러스가 묻어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바늘이나 침 등 도구를 일회용이나 소독된 것으로 사용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염색약도 일회용으로 조금씩 덜어서 사용하는 게 옳습니다. 이 부분은 보건당국이 좀 더 철저하게 감독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면도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대부분 안전합니다. 그런데 간혹 실수로 피부에 생채기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때가 아주 위험합니다. 피부에 스며든 혈액이 면도날에 묻게 되는데 만일 이를 제대로 소독하지 않고 다음 손님에게 면도하다 또 생채기가 나면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달아 실수로 생채기를 낸다는 게 확률적으로 드물지만 얼마든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느 경우든 이발소의 면도기도 다른 손님에게 사용하기 전 철저하게 소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접촉 일상적 성접촉은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는 배우자 중 한 명이 C형 간염이라도 다른 배우자가 콘돔을 써야 한다고 권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접촉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얌전한 성접촉은 괜찮습니다. 에이즈와 달리 정액이나 질액으로 옮길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그리고 다소 격렬한 성접촉 시 성기 점막의 상처를 통해 혈액이 묻어나올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실제 캐나다 보건성의 조사결과 20년 이상 부부생활을 할 경우 2.5%의 확률로 배우자에게 감염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가능하면 콘돔을 착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섹스 파트너가 많다거나 항문성교 등 비전형적 성행위를 즐기는 경우 감염 확률이 급증합니다. 이 경우 콘돔 착용은 필수입니다. 특히 여성이 생리 중인 경우 성접촉은 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해 안전합니다.

칫솔과 손톱깎이 감염자가 사용하는 칫솔과 손톱깎이를 같이 사용하면 안됩니다. 특히 잇몸 질환으로 구강 출혈이 있는 경우라면 칫솔로 인한 감염 확률이 급증합니다. 손톱깎이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톱을 깎는 과정에서 생긴 피부의 상처를 통해 소량의 혈액이 묻어날 수 있습니다. C형 간염의 잠복기는 6주에서 9주로 보고 있습니다. 대개 C형 간염은 초기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에게 피로와 입맛 떨어짐, 구역과 구토, 근육통과 미열, 소변 색깔이 진해지거나 피부와 눈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생긴다면 바로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C형 간염 진단이 내려지면 나에게 6주에서 9주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져보기 바랍니다.

증세가 늦게 나타나 진단이 뒤늦게 내려질 수도 있으므로 수개월 전까지 기억을 더듬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주사기가 되었건 침이나 문신이 되었건 어떤 경로를 통해 나에게 다른 사람의 혈액이 섞여 들어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적절한 배상 등 개인적 억울함을 풀 수 있고 무자격이든 비양심이든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C형 간염을 확산시키는 주범들을 색출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삶이 곧 힙합” 춤주머니 아저씨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땀으로 지병 없애고, 복근 남겼죠”
  • 패션부터 여행까지… 소비시장 주도하는 욜드족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커피 내리는 현장 남고자 승진도 마다했죠”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