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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타임머신②] 5060세대들의 청춘시절, 연애의 재발견- 1986 종로

기사입력 2014-11-27 10:50

진정한 기다림의 미학, 소병국(50)씨와 이재정(50)씨의 연애시대

70~80년대 나눴던 연애방식을 추억 따라 가보자.

데이트장소, 사랑의 징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 등에서 묻어난 추억속의 아련한 커뮤니케이션이 현재와 어떻게 다른지…<편집자 주>

▲1980년대 연애시절 이재정씨와 소병국씨(왼쪽부터)

#1986 종로에서...

1986년 봄. 종로 3가 탑골 공원. 한여름 뙤약볕에서 한 남자가 5시간째 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약속 시간은 12시. 여자는 몇 시간째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점심도 거른 채 탑골 공원 주위를 서성일 뿐이다. 지금이었다면 답답한 마음에 연신 휴대폰만 들었다 놨다 했겠지만, 그 시절 그 둘은 휴대폰이 없었다.

‘5분만 더 기다려 볼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나에 대한 마음이 변했나?’.

만감이 교차한다.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5시간이 훌쩍 넘었다. 여자를 만날 생각에 폭발할 것처럼 뛰던 남자의 심장박동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느새 안정세로 돌아섰다. 발밑에 있던 남자의 그림자도 어느새 동쪽을 향해 있다. 그만하면 많이 기다렸다는 태양의 신호일 것이다. 남자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남자는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돌린다.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러나 한 곳을 응시하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가 온 것이다. 장장 다섯 시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 그 남자 소병국(50)씨와 그 여자 이재정(50)씨의 연애시절이다.

그녀는 늦을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날 이씨는 약속을 앞두고 뜻하지 않은 급한 일이 생겼다. 고모 댁에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하게 늦게 된 것이다. 그때가 오후 3시였다. 이씨는 남자친구인 소씨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락은 되지 않고 약속 장소에도 갈 수 없으니 이씨도 답답한 것은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김씨는 찝찝했다. 당연히 돌아갔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찝찝함이 그녀의 발길을 종로로 향하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갈 때마다 한 남자의 형상이 점점 커진다. 놀라움에 이씨의 동공이 커진다. 소씨다. 기다리지 않고 간 줄 알았던 그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이씨의 마음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몰아쳐 온다. 정식 교제를 시작한 연애 초기 이씨가 소씨의 진심을 느끼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5시간. 지금이라면 휴대폰으로 한 통화면 없었을 기다림이다. 하지만 그 당시 휴대폰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가까운 공중전화로 가 상대방의 집에 전화를 하거나, 전화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거나 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하염없는 기다림 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또 하나의 낭만이었다. 전자기기 하나에 설레는 감정이 한순간 사그라들지 않으니까. 그때는 기다림이란 곧 설렘이었으니 이 또한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었다. 기다림은 휴대폰이 없는 그 시대의 청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 시대 남자들에게는 여자에게 진심을 표현할 무기이자 방식이었다. 소씨가 이씨를 기다린 시간은 5시간이었지만, 이씨가 소씨의 진심을 확인한 시간은 단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정말 그땐 그랬다.

▲1980년대 연애시절 커플티를 입고 사진을 찍은 소병국씨와 이재정씨(왼쪽부터)

사실 이들의 첫 만남은 병원이었다. 서울 한양대학교병원 21층. 그 때 이씨는 소씨의 친구가 환자로 있는 병실을 담당하는 간호사였다. 절친한 친구라 하루가 멀다 하고 병문안을 갔던 소씨는 자연스럽게 간호사인 이씨와 접촉하는 횟수도 잦아졌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녀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녀의 청순한 외모에 끌렸다. 그 다음은 뽀얗고 고운 피부, 그 다음은 수줍은 미소가 소씨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 그는 이 감정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용기를 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데이트 신청 방식은 말로 하기. 요즘 젊은이들과 같이 ‘저기요. 휴대폰 번호 좀 주실래요?’와 같은 무드 없는 방식이 아니다. 박력 있으면서도 떨리는 감정이 가감없이 전해진다.

“병원 앞 다방에서 O시에 기다리겠습니다.”

병원 앞 다방, 포장마차, 볼링장 등 두 사람의 만남이 늘어날수록 둘 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86년 봄 병원에서 시작한 이들의 인연은 현재 예쁜 두 딸을 키우는 부부로 이어지게 됐다.

소병국씨와 이재정씨의 80년대 연애시절 이야기. 아니 모든 80년대 청춘들의 연애 이야기가 그럴 것이다. 그들의 연애의 중심엔 기다림이라는 설렘이 있었다. 휴대폰, 컴퓨터, 전자기기 등은 이들의 떨리는 감정을 방해하지 않았다.

기다리지 못하고 부재 중 통화가 수십 통이 된 이 시대. 80년대 연애시절 기다림이 더욱 멋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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