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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품은 ‘시끄러운’ 요양원

입력 2026-07-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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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니어 라이프] 일본 고토엔이 보여준 미래의 노인 주거시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노인복지의 새로운 모델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도쿄 에도가와구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고토엔(江東園)은 세대 공존형 복지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는다.


(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고토엔은 고령자 돌봄 공간과 어린이집, 장애인 지원 시설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다세대 공생형 복지시설이다.

고토엔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활기다. 복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지켜보거나 함께 어울린다.


“다 가족 아니냐” 세대 공존의 출발점

고토엔의 역사는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후 혼란 속에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거나 가정에서 돌봄을 받기 어려운 사람, 그리고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로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

고토엔이 지금과 같은 세대 공존형 복지시설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87년이다. 당시 고령자 시설과 어린이집을 한 공간에 결합하는 파격적인 시도가 시작됐다.

그 배경을 창립자의 손자이자 현재 3대째 시설장을 맡고 있는 스기(杉) 씨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고령자와 아이들을 분리해야 한다는 행정 지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부친인 2대째 시설장은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 가족 아니냐. 함께 지내서 뭐가 문제냐’고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창립자의 손자이자 현재 3대째 시설장을 맡고 있는 고토엔 시설장 스기 씨.(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창립자의 손자이자 현재 3대째 시설장을 맡고 있는 고토엔 시설장 스기 씨.(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이 한마디에 고토엔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도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고, 연령이나 장애 여부보다 관계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시선이다.

1987년 현재의 건물이 완공되면서 고령자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지금의 운영 방식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핵가족화가 가속화되며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생활하는 풍경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고토엔은 잊혀가는 ‘대가족의 풍경’을 복지 시스템 속에서 되살려낸 셈이다.

고토엔의 또 다른 특징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누군가를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사용하는 이불을 펴고 개는 일을 담당한다. 얼핏 보면 작은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복지 현장에서는 자칫하면 사람을 ‘지원하는 쪽’과 ‘지원을 받는 쪽’으로 나누기 쉽다. 그러나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존엄을 확인할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도, 다른 장면에서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그런 순환이 있기에 공생은 이념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관계로 자리 잡는다.


▲고토엔 입구.(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고토엔 입구.(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아이들이 배우는 ‘노화’와 ‘다름’

취재차 방문한 날, 시설 안에는 아침부터 부드러운 활기가 감돌았다. 오전 9시 30분이 되자 어린이집 원아들의 체조 시간이 시작됐다. 음악에 맞춰 아이들이 힘차게 몸을 움직이자, 이를 바라보던 고령자들도 자연스럽게 박수 치고 몸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할머니,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체조가 끝나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고령자 곁으로 다가갔다. 무릎 위에 앉는 아이도 있고, 가위바위보를 시작하는 아이도 있었다. 궁금한 것을 묻고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일상 속에서 형성된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있었다.

특히 이 공간은 시설 입소자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자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함께 시간을 보낸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시설 안으로 지역사회가 들어오고, 시설은 다시 지역사회로 열린다. 고토엔이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니라 ‘공생의 광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고토엔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간다. 시설장 스기 씨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릴 때부터 고령자나 장애가 있는 분들과 자연스럽게 접하면, ‘다름’을 특별한 것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서로 돕는 것, 배려하는 것,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배우게 되지요.”

고령화가 진행된 사회에서는 돌봄도, 치매도, 장애도 더 이상 특정한 누군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그런 현실을 일상에서 떼어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왔다.

하지만 고토엔의 아이들은 다르다. 노화를 두려워하기 전에 먼저 마주하고, 장애를 특별시하기 전에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러한 경험은 고령화 사회를 살아갈 다음 세대가 공존과 배려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밑거름이 된다.


▲요양원을 방문한 어린이들.(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요양원을 방문한 어린이들.(신미화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대학교 교수)


졸업식에 눈물 흘린 할아버지·할머니

고토엔의 진정한 가치는 제도의 참신함에만 있지 않다. 이곳에서 세대 간 교류는 특별한 행사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아이들은 날마다 고령자 곁에서 자란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배우고, 어느새 의젓한 형과 누나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어르신들은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자녀 두 명을 고토엔 어린이집에 보내는 직원 마쓰자와(松沢) 씨는 인상적인 장면을 들려줬다.

“아이들 졸업 날이면 ‘그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하며 눈물 흘리는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아기 때부터 성장과정을 함께 지켜봤기 때문이죠.”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삶을 지켜본 사이다. 어르신들에게 아이들은 단순히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어린이가 아니라 성장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이웃이자 가족 같은 존재가 된다.


▲어린이집 풍경.(고토엔)
▲어린이집 풍경.(고토엔)


이 장면은 현대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핵가족화가 되면서 조부모와 손주가 일상을 함께하는 기회가 크게 줄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고령자는 고령자끼리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구조가 됐다.

고토엔 안에는 울음소리도, 웃음소리도, 노쇠함도, 미숙함도 함께 존재한다. 아이들의 성장과 노년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풍경이다. 고토엔은 그 잃어버린 풍경을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복지제도 안에서 다시 구현해내고 있다.


▲고토엔 운동회 풍경.(고토엔)
▲고토엔 운동회 풍경.(고토엔)


현장을 움직이는 ‘생각하는 직원들’

고토엔의 세대 공존 모델은 245명의 직원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특징적인 점은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직원들이 직접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며 운영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고토엔에는 ‘세대 간 교류위원회’가 있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등 다양한 직종의 직원들이 참여해 더 나은 교류 방안을 논의한다. 현장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실제 프로그램과 운영에 반영된다.

고토엔의 힘은 이러한 보텀업(상향식) 문화와 현장 중심의 운영 방식에 있다. 아무리 훌륭한 이념이라도 현장에서 실천되지 못하면 지속될 수 없다. 반대로 직원들이 조직의 철학에 공감하고 이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때 공생의 가치는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다양성은 직원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현재는 일본의 복지전문학교 등에서 교육받은 네팔 출신 직원들이 현장을 함께 이끌고 있다. 국적과 배경이 다른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하는 모습 역시 앞으로의 복지 현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러한 복합시설의 운영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인력 배치와 안전관리, 전문직 간 협업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경제적 효율만 기준으로 본다면 결코 운영하기 쉬운 모델이 아니다. 스기 시설장은 웃으며 말했다.

“경영은 늘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입니다.”

그럼에도 고토엔이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자의 고독, 양육 가정의 고립, 장애인의 사회참여, 지역사회의 단절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스기 시설장이 “이 시설은 사회에 플러스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다.


▲어린이집 아이들과 요양원 노인들, 동네 주민이 함께 체조하는 모습.(고토엔)
▲어린이집 아이들과 요양원 노인들, 동네 주민이 함께 체조하는 모습.(고토엔)


‘시끄러운 요양원’이 던지는 질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도 고령자 시설은 늘고 있고, 어린이집과 복지시설도 꾸준히 확충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기능은 분리돼 운영된다.

고령자는 고령자 시설로, 아이들은 어린이집으로, 장애인은 또 다른 지원 시설로 향한다. 제도적으로는 이해하기 쉽고 관리 효율도 높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 맺을 기회는 줄어든다. 세대 간 접점이 사라질수록 외로움과 단절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시끄럽지만 따뜻한 곳.’ 겉으로는 모순처럼 들리는 이 표현 속에 고토엔의 철학이 담겨 있다. 고토엔이 보여주는 것은 복지가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복지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공동체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토엔은 우리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진다. 요양원은 조용하고 분리된 공간이어야 하는가. 복지서비스는 연령과 장애 유형에 따라 구분돼야 하는가. 노년은 돌봄을 받는 존재로만 규정될 수 있는가.

한국에서도 요양원과 어린이집, 지역 교류 공간을 결합한 복합 모델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 고독사와 저출생, 지역공동체 약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세대 공존형 복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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