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돌봄의 사각지대, 농촌의 나 홀로 가구

입력 2026-04-27 06:00
기사 듣기
00:00 / 00:00

[전원일기]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당산(堂山) 아랫마을에 블루베리 묘목을 심고 어설픈 농사꾼이 된 건 내 나이 쉰두 살 되던 해였다. 그 시절 60~70대 마을 할머니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복숭아 농장이나 인삼밭에 일을 다니곤 했다. 워낙 일솜씨가 탁월한 ‘농사의 달인’들이었던지라, 오라는 데가 많아 골라서 다닐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후 1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활기와 생기 넘치던 주인공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농촌, 고령사회, 1인 가구의 교집합

‘오늘 농촌의 고령사회 현주소가 내일 도시의 자화상’이란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어왔건만, 가까이서 지켜본 현실은 더욱 안타깝고 슬펐다. 누가 뭐래도 농촌은 우리네 전통의 최후 보루라 믿었는데 고령사회의 민낯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당산마을만 해도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 사는 집은 월산리 이장님 댁과 트린이네 두 집뿐이고, 노부부만 덩그러니 남아 서로 등 긁어주며 사는 집은 쌍둥이 할머니 집, 남편 바보인 박 씨 아주머니네, 황 씨 아저씨네로 한 손에 손꼽을 정도다. 할머니 먼저 하늘나라 보내시고 홀로 남아 쓸쓸히 집 지키는 할아버지 한 분 빼곤, 나머지는 모조리 할머니 1인 가구다.

건강한 노인과 병을 달고 사는 노인 사이의 간극이 모든 불평등을 압도하는 사회가 곧 고령사회라는 말이, 홀로 사는 할머니들 볼 때마다 실감 난다. 당신 스스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A, 아픈 가운데 가족이나 친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면 B, 노인을 위한 각종 요양 시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중간 점수의 성적표를 받을 테지만, 홀로 투병하다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최악의 상황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당산마을 어귀에는 가을이면 마당 가득 주황색 감이 탐스럽게 매달리는 감나무 집이 있다. 겨우내 먹을 곶감이 뒤뜰에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도 동네 명물로 꼽힌다. 그 넓은 집엔 할머니가 홀로 살고 계신다. 서른 초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둘 딸 하나를 키우셨다는데, 팔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예전의 고운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 사위가 재주가 좋아유.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주고 고장 난 전기도 금세 고쳐주니 말여유.” 사위를 무던히 아끼시는 할머니는 입만 열면 사위 자랑이 늘어지신다. 할머니의 일터는 제초제를 뿌릴 수 없기에 일 년 내내 손으로 풀을 뽑아야 한다는 인삼밭이다. “한번 맞추면(일꾼으로 고용되면) 6년은 계속 다닐 수 있기에 인삼밭은 너도나도 가고 싶어 하는 곳”이란다.

어느 날인가 솜씨 좋다는 사위가 마당 한구석에 방을 들였는데, 그곳에 집주인과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 한 분이 세를 들어오셨다. 마을의 새 식구가 된 할머니는 세종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아들 며느리와 몇 달을 살았는데 도무지 갑갑하고 답답해서 홀로 이사를 나오셨다고 했다. 두 노인네가 적적함을 달래며 말동무도 하고, 바로 코앞에 있는 텃밭에 파 심고 고추 심고 이것저것 부쳐 먹으며 오순도순 잘 지내셨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그랬던 두 할머니가 몇 해 전부터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걱정하던 차에 어느 날 우연히 주간요양보호센터 로고가 찍힌 노란색 미니버스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리는 감나무 집 할머니와 마주쳤다. “어쩐 일이세요? 요즘 통 안 보이시더니만” 인사를 드렸더니 “요즘 핵교(학교, 주간요양보호센터) 다녀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하네유” 치매 초기란 진단을 받으셨다고 한다. 함께 살던 할머니는 다시 아들네로 들어가셨는데, 얼마 전 사위를 통해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뒷마당을 굳건히 지키던 감나무를 덥썩 잘라버리셨다.

젊은 시절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워대는 통에 동네 아낙들 ‘공공의 적’이 된 안 씨 아저씨에겐 똑똑한 누님이 계신다. 남매가 이웃해서 살고 있는데 누님 또한 거동을 못 하신 지 오래됐다. 초보 농사꾼 시절 일머리를 몰라 쩔쩔매는 내 손을 잡고 호미로 풀 매는 법부터 콩잎·깻잎 솎는 법, 밭고랑 위에 비닐 씌우는 법까지 차근차근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안 씨 누님이셨다.

그러고 보니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고구마 고랑을 만들고 검은색 비닐을 씌운 다음 날 밭에 나가보니, 검은색 비닐이 여기저기 흩어져 바람에 훨훨 날리고 있는 것 아닌가. 고랑에 비닐 씌우는 방법을 몰라서 흉내만 내어 비닐 위에 군데군데 흙을 얹어둔 탓이었다. 그 광경을 본 안 씨 누님, 비닐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다음 흙을 한 삽 크게 떠서 흙 뜬 자리 비닐 위에 얹어주며 “비닐은 이렇게 씌우는겨” 몸소 시범을 보여주셨다. “비닐이 땅에 고정돼야 바람이 시게(세게) 불어와도 꿈쩍 않는겨” 가르쳐주시면서 말이다. 그렇게 똑똑하고 총명하던 누님도 요즘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셨단다. 어르신 학교에 가면 끼니때마다 밥 챙겨주어 고맙고,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하시면서.


노후 둘러싼 동상이몽에 씁쓸…

젊은 시절 애지중지 키운 그 많던 자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싶은데, 세월 따라 부모 부양의 의미도 속절없이 바뀌었으니 세태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통계청에서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설문 중 ‘부모의 노후 부양을 누가 돌봐야 하는가?’의 응답 결과를 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따로 없다. 1998년에는 ‘자녀가 돌봐야 한다’는 응답이 86%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가 11%로 뒤를 이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은 고작 3%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2022년이 되자 ‘자녀가 모셔야 한다’는 응답은 18%로 격감했고, 대신 ‘가족·정부·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가 70%로 가장 높은 지지를 보였다.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쿨한 태도는 13%로 나타났다.

가족과 정부와 사회가 노후 부양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동상이몽인 채 서로 미루고 있는 것이 우리네 현실인 듯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인도인들은 부모를 간병할 상황이 오거나 부모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행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우리도 인도인들처럼 하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숨길 수 없다.

노인이 찬밥 신세가 되어가고 있음은 일상 구석구석에서 감지된다. 미국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흥미로운 실험을 해보았는데 예상했던 대로 씁쓸한 결과가 나왔다. 동일한 사람이 25세, 52세, 73세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각각의 얼굴에 점수를 매겨보라 하니, 대다수 대학생이 73세 얼굴 사진에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다. 노인 공경은 이처럼 먼 이야기가 되고 있다. 하기야 경로석이란 ‘경건하게 앉아 노인을 생각하는 자리’요, ‘경우에 따라 노인이 앉을 수 있는 자리’라는 젊은 세대의 농담도 있지 않던가.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삶을 예술로 경영할 수 있다면

노후에 누구 손을 잡고 가야 하나 생각하다 보니 심란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따스한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 영화 ‘인생 후르츠’는 은퇴 후 노부부가 성실히 그들만의 삶을 일구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젊은 시절 건축가였던 주인공 할아버지는 ‘우리가 사는 집이든 우리네 인생이든 자연과 닮은 채로 친밀하게 교류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노부부는 자신들만의 집을 짓고, 봄·여름·가을·겨울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다. 아침·점심·저녁 식탁에는 직접 수확한 싱싱한 재료가 올라오고, 냉장고엔 농사지은 것들로 손수 만든 장아찌가 가득하다. 가을이면 밭에서 캐낸 각종 채소와 과일을 친지 및 이웃들에게 나누어 보내고, 봄이면 겨우내 모아두었던 낙엽을 거름이 되라고 다시 땅으로 돌려보낸다. 빼어난 그림 솜씨를 자랑하는 할아버지는 틈틈이 소박하고 유머러스한 그림을 곁들인 손 편지를 친지들에게 보내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다.

노부부의 은퇴 후 일상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할머니의 요리 솜씨는 화면 속에서도 빛이 나고, 할아버지를 향한 애정 어린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스하게 해준다. 부부 나이 합산해 177세가 될 때까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아니고서는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정(情)의 깊은 맛이라니. 젊은 시절 할아버지는 일본 전후 복구기, 뉴타운 건설이 붐을 이루던 때 녹지를 살리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설계를 제안했건만 채택되지 않았던 아픈 기억이 있다. 영화 말미에는 노인을 위한 요양원 시설을 짓는 곳에서 할아버지의 설계를 채택하는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90세 할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 잠이 드셨다가 조용히 눈을 감으신다. “먼저 가 계시면 곧 따라가겠노라”며 “그때까지 평안히 계시라”는 할머니의 독백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인생 후르츠’란 제목이 상징하는 그대로 인생의 결실을 맺는 부부의 모습은 고령사회의 아름다운 장면임이 분명하다.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젠 여유를 갖고 인생을 관조하며 평생을 함께 해온 파트너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는 삶은, 그 자체로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예술인 듯했다.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노인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 길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이 길엔 어둡고 우울한 단면과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공존한다. 올봄 정부가 열심히 홍보 중인 통합돌봄 시스템이 시작됐다. ‘의료·요양·돌봄을 지역에서 통합 연계함으로써, 누구나 익숙한 일상에서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란다. 노인 통합돌봄 시스템에 포함된 서비스 목록도 제법 풍성하다.

대문 열어놓고 사는 농촌 마을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는 통합돌봄 시스템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리한 환경일 것 같다. 안 씨 누님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감나무 집 할머니는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비밀이 없는 당산마을 어르신들이 통합돌봄 시스템의 진정한 수혜자가 되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최신뉴스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뉴스

브라보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