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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목(木)테크 실패기

입력 2025-11-27 06:00

[전원일기] 묘목 100여 주가 죽어버리는 참사를 겪다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15년 전 귀촌·귀농을 계획할 때 처음 만났던 ㄱㅈ원예의 나무 담당 팀장은 장대한 기골과 수려한 외모 못지않게 화려한 말솜씨가 일품이었다. “나무는 재고가 없는 상품입니다. 한 해 묵으면 그만큼 가치가 높아져 값이 더 나갈 테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지요. 노후엔 나무 목(木)! 목(木)테크보다 더 좋은 투자는 없습니다. 게다가 나무 가꾸기는 훌륭한 소일거리가 될 테니 금상첨화고요.”


각기 다른 매력의 소나무들

블루베리 농장 주인장은 팀장의 꼬임에 귀가 솔깃해져 블루베리를 심기도 전에, 2년생 소나무 묘목을 500평(약 1652㎡)과 800평(약 2644㎡) 밭에 촘촘히 심었다. 손이 유달리 커서 소나무 묘목을 2000주가량 심은 것 같다. 당시 나는 학생들 가르치는 현직에 있으면서 시간제 계절노동자를 자처하며 소나무 재배에 한 발을 슬쩍 들여놓았다.

그때 알았다. 소나무는 그저 다 같은 소나무인 줄 알았는데 종류가 무진장 많다는 것을. 잎이 2개씩 모여 나는 소나무, 반송, 곰솔, 잎이 3개씩 모여 나는 백송, 리기다소나무, 테에다소나무, 잎이 5개씩 모여 나는 잣나무, 눈잣나무, 섬잣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의 비슷한 침엽수들까지. 그 많고 많은 나무 중 팀장이 추천해준 대로 둥근 소나무라 불리는 반송(盤松), 나뭇잎 빛깔이 철 따라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는 재일황금송(在日黃金松), 키가 부쩍부쩍 자라고 가지가 늘어지는 낙락장송(落落長松) 종류를 심었다.

농사 첫해는 조치원에 집을 마련하기 전이라 주말마다 서울 집과 소나무밭을 오르내렸다. 비가 오면 밭에 못 들어가니 쉬고, 날씨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꾀가 나서 땡땡이치며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때 마을 이장님에게 들었던 말이 “나무는 사람 발소리를 듣고 큰답니다”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잡초의 습격을 받아 묘목 100여 주가 죽어버리는 참사를 겪으며 농사는 풀과의 전쟁임을 생생히 체험했고, 잡초의 생명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건지 감탄할 정도로 실감했다.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나무 도둑아, 황금송이 탐나더냐!

소나무 묘목을 심은 첫해와 둘째 해엔 서울에서 설을 쇠고 내려오면 여기저기 묘목 캐간 자리가 눈에 띄곤 해서 애를 태웠다. 나무 크기가 작아서 쉽게 캘 수 있을 때, 그리고 나무가 겨울잠을 잘 때, 나무 도둑질이 기승을 부린다는 걸 알게 됐다. 재일황금송이 가장 많이 사라졌다.

언젠가 일본 교토 여행길에 소박한 느낌의 절 앞마당에서 보기 좋게 잘 자란 황금송 성목을 본 적이 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스님에게 물으니 “황금송은 철 따라 색이 변하던 돌연변이 소나무의 세포를 배양해서 묘목으로 키우는 데 성공한 것으로, 흔치 않은 탓에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가끔 지나가던 분들이 차 세우고 밭에 들어와 재일황금송을 분재용으로 팔 의향이 있는지 묻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황금송에 얽힌 해프닝이 몇 가지 있는데, 5월의 어느 날인가 마을 이장님이 서울 집으로 전화했다. “빨리 내려와 보셔유. 소나무가 누렇게 병들어가고 있구만유.” 그 소릴 듣자마자 부리나케 내려와 보니, 소나무 이파리가 연녹색에서 연노란색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어 생긴 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 소나무는 사시사철 색이 변치 않는 나무라고 배웠는데, 이 또한 틀린 이야기가 된 셈이다.

한번은 세종시 연기리 네거리에 있는 차량 정비소 마당에 우리 밭에서 캐 간 것이 분명해 보이는 황금송 세 그루를 발견했다. 주인을 찾아 어떻게 된 연유인지 물으니, 3년 전엔가 남편이 “친구가 줬다”면서 가져왔길래 앞마당에 심었다는 것이다. 남편을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6개월 전에 갑자기 죽었슈” 하는 것이 아닌가.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얼른 그곳을 떠나왔지만, 지금도 정비소 앞을 지날 때면 괘씸한 생각이 든다.


▲낙락장송을 전지하는 농장주.(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낙락장송을 전지하는 농장주.(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가지치기와 잡생각 쳐내기

나무는 땅에 심어만 놓으면 알아서 혼자 크는 줄 알고 내버려두었는데, 30년 나무를 키우신 동네 어른이 “소나무는 2년만 다듬어주지 않으면 불쏘시개로도 못 쓴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나무는 사람 손길을 은근히 많이 타는 예민한 나무였다.

반송 묘목을 심은 지 3~4년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지나가던 분이 소나무 가지치기의 기본을 몇 가지만 알려주겠다며 밭으로 성큼 들어왔다.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시나요?” 물으니 조경 전문가란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 밭 소나무 전지를 부탁하면 안 될까요?” 하니 정색을 하며 “제 일당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엄청 비쌉니다. 제가 전지를 하면 하루에 몇 그루나 하겠습니까? 제 인건비 감당 못 하십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낙담해서 “그럼 어쩌지요?” 또 물으니 “배워서 하셔야 합니다. 요즘 유튜브 보면 소나무 전지하는 법 정말 많습니다”라며 가르쳐주고 떠났다.

그 말을 듣고 소나무 전지하는 법을 검색해보니 정말 전 세계에서 올린 동영상이 즐비했다. 동영상 몇 편을 보면서 ‘소나무 전지, 나도 할 수 있겠구먼’ 은근히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 날 전지가위를 들고 우리 밭 소나무 앞에 섰는데, 웬걸 유튜브에서 본 그 소나무가 아니었다. 순간 엄청난 낭패감이 몰려왔다. 결국 인터넷 검색과 영상 시청은 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만 심어줄 뿐, 손발 써가며 직접 해봐야 오롯이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나무를 전지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거나 마음이 번잡해지면 정원에 나가 나뭇가지를 다듬던 드라마나 영화 속 회장님들이 이해됐다. 소나무 가지치기를 하노라면, 어설픈 초보임에도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무아지경(?)에 이르러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으니 말이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덕분인가, 신선한 향기에 취해 맹추위도 잊은 채 가지치기에 몰입하곤 했다.

초보자 눈에도 남겨두어야 할지 쳐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는 가지가 있다. 아래로 뻗은 가지, 안쪽으로 난 가지, 서로 충돌하는 가지는 별 갈등 없이 과감하게 잘라내면 된다. 한데 결정하기 난감한 순간이 종종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뻗은 가지를 쳐내는 것이 좋을지 왼쪽으로 뻗은 가지를 없애는 것이 나을지, 가지를 두 개 남겨야 하나 세 개를 유지해야 하나, 지금은 멋지게 뻗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후년에도 멋진 가지로 남을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수시로 출현하는 것이다.

이럴 때 ‘전문가의 안목을 갖추었다면 몇 년 앞을 내다보고 가지들이 어떻게 뻗어나갈지 머릿속에 그린 후 균형감과 미적 감각을 고려하면서 후회 없이 선택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잡생각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나무 가지치기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많이도 닮았구나 싶다. 블루베리든 소나무든 잔가지를 적시에 잘 쳐내야 굵고 튼실한 가지를 볼 수 있건만, 소심함과 어리석음이 앞을 가려 굵은 가지로 뻗어나갈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린 건 아닌지 후회되는 순간들이 떠올라서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마다 삶 속에 거품도 많았고 잔가지도 무성했음을 반성하게 된다. 아직도 남아 있는 잔가지를 과감하게 쳐내고 굵은 가지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아보겠노라 다짐하지만, 이 또한 마음만 앞설 뿐 몸은 꿈쩍도 하지 않으니 한심하기만 하다.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세상을 길고 넓게 보는 안목

한데 묘목 도둑맞는 일보다 더 안타깝고 황당한 일이 생겼다. 소나무를 키우면 책임지고 팔아주겠다던 원예 팀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나무 시장이라는 것이 묘해서 업자들 간에 꽤 정교한 분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2~3년생 묘목만 다루는 업자, 묘목을 사서 2~3년 더 키운 후 파는 업자, 성목(成木)을 받아서 값비싼 정원수로 만드는 업자 등 시장이 세분화된 것이다.

업자들을 통해 나무 값은 ‘나무를 캐서 옮긴 후 다시 심는 값’이라는 것도 알았다. 반송은 5~6년생만 돼도 작은 굴착기를 동원해서 캐야 하는데, 오래전인데도 하루 부르는 값이 무조건 기본 50만 원이라 했다. 지금은 시세가 더 올랐을 것이다. 실제로 서울숲 가까이 고급 아파트 조경을 하면서 낙락장송 4그루를 한 세트로 묶어 심는 데 그루당 2500만 원, 총 1억 원가량 들었단다. 그중 한 그루가 심은 지 1년도 안 되어 죽는 바람에 보식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소나무는 아무리 나이가 많고 키가 커도 옮겨 심으면 죽을 수 있는 만큼, 업자들 사이에선 최소 세 차례는 옮겨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옮길 때마다 잔뿌리를 내리면서 “흙냄새 맡는 방법을 익혀 새로운 땅에 대한 적응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기야 사람도 가끔 삶의 터전을 바꾸면 세상살이의 안목도 넓어지고 인간관계의 폭도 생기며 지혜로운 생존력 또한 커지듯이 말이다.

소나무를 옮길 때는 분을 잘 뜨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 분뜨기도 전문적 기술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분을 너무 크게 뜨면 옮기는 데 힘이 들고, 분을 너무 작게 뜨면 옮겨 심은 후 생존 가능성이 낮아지기에 적당한 크기로 떠야 한다. 소나무를 옮기는 동안 뿌리 쪽 수분이 마르지 않도록 분을 헝겊으로 감싸는 것도 기술이다. 잘못하다간 분이 부서져 나무뿌리가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커가는데 마땅히 팔 곳을 찾지 못해, 우리 밭 반송들은 서로 붙어버리고 말았다. 반송은 옆으로 퍼지면서 크는 만큼 동서남북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처음 묘목을 심을 때는 자그마한 묘목만 보일 뿐 조만간 성목이 되어 숲을 이루리란 건 상상조차 못 하게 마련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우둔함을 이제 와서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다.

목테크는 환상일 뿐, 나무 업자가 아니고선 섣불리 뛰어들지 말아야 함을 깨닫기까지 10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중간중간 나무 키우고 다듬는 기쁨도 없진 않았지만, 판로를 찾을 수 없는 지금은 한해 한해 하늘을 향해 자라는 낙락장송과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붙어버린 반송, 두더지로 인해 고사당하기 일쑤인 재일황금송을 바라보며 마음 비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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