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이 아닌 집으로, 집단 돌봄이 아닌 삶 중심 돌봄으로”

지난 7일 ‘한국형 유니트케어를 말하다’를 주제로 서울 논현동 이투데이빌딩 19층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이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요양시설의 역할은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단순히 ‘돌봄을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노년의 삶을 어떻게 존엄하게 지켜낼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건축·운영·기술·공간·해외 사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니트케어의 개념과 필요성, 그리고 한국 현실에 맞는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좌담회 참석자(가나다 순)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
김민수 케어링스테이 대표
김수형 제이씨에프테크놀러지 이사
우현우 케어러블 대표
주서령 경희대학교 주거환경학과 교수
왜 지금, 유니트케어인가
유니트케어(Unit Care)는 다수의 입소자를 한 공간에서 일괄적으로 돌보는 기존 집단 수용 방식에서 벗어나, 소규모 생활단위를 하나의 ‘집’처럼 구성해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보통 8~10명 내외의 어르신이 하나의 유니트를 이루며, 각 유니트 안에 거실·식당·주방 등 일상 공간을 두고 개인의 생활 리듬에 맞춘 케어가 이뤄진다.
주서령 경희대학교 주거환경학과 교수는 유니트케어를 “시설의 효율을 위한 구조가 아니라, 사람 중심 돌봄(Person-Centered Care)을 구현하기 위한 생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국내외 연구를 분석한 결과, 유니트케어 환경에서는 침대 체류 시간이 줄고 거실 활동과 식사량이 늘어나는 등 일상성 회복 효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주서령 교수는 “최근 요양시설 입소자는 과거보다 경증 노인과 치매 초기 단계 비중이 높아졌고, 입소 기간 역시 길어지고 있다”며 “요양시설이 더 이상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노년의 마지막 집이 되고 있다”고 유니트케어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요양시설 이용자의 변화가 있음을 진단했다.
여기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진입도 큰 변수다. 경제력과 소비 경험을 갖춘 이들은 단순 보호 중심 시설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집과 같은 환경, 선택권이 있는 일상,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돌봄에 대한 요구가 분명해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흐름이 유니트케어 확산의 구조적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공간이 바뀌면 돌봄이 바뀐다
유니트케어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경관·공간 디자인을 담당해온 김경민 경관디자인 ‘공유’대표는 “유니트케어의 핵심은 개인실과 공용 공간의 균형”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실은 입소자의 불안과 혼란을 줄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동시에 거실·식당 같은 공용 공간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장치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일본 사례를 예로 들며, “유니트 현관에 집주소를 붙이고, 신발장과 가구 배치를 일반 주택처럼 구성하는 이유는 공간을 통해 ‘여기는 병원이 아니라 내 집’이라는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단순히 일본 설계를 복제하기보다, 한국의 주거 문화와 생활 습관을 반영한 공간 기준이 필요함을 피력했다.
운영 관점에서 본 유니트케어의 현실
이번 좌담에서는 운영 현장의 시선도 공유됐다. 노인복지시설 김민수 케어링스테이 대표는 유니트케어가 이상적인 모델인 동시에, 운영 측면에서는 정교한 설계가 요구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유닛 운영은 인력 배치, 동선, 프로그램 구성에서 기존 시설과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민수 대표는 “유니트케어는 공간만 바꾼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인력 구조, 케어 철학, 보호자와의 소통 방식까지 함께 바뀌어야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인건비와 수가 구조를 고려한 현실적인 유니트 규모 설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술은 유니트케어를 어떻게 보완하는가
김수형 제이씨에프테크놀러지 이사는 유니트케어와 디지털 기술의 결합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유니트케어에서 기술은 사람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돌봄의 밀도를 높이고 부담을 줄이는 보조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접촉식 레이더·열화상 센서를 활용한 생체 신호 모니터링 기술을 예로 들며, “호흡·심박·움직임·낙상 여부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면서도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아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술은 소규모 유닛 운영에서 야간 안전 관리와 응급 대응의 공백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유니트케어를 어떻게 제도화했나
일본 유니트케어 현장을 오랫동안 경험해 온 우현우 케어러블 대표는 유니트케어의 본질을 공간이나 제도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 구조에서 찾았다. 그는 “유니트케어는 소규모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돌봄 제공자가 입소자의 성향과 감정 변화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우 대표는 일본에서 유니트케어가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유니트 리더 중심의 운영 구조를 꼽았다. 유니트 리더가 돌봄 기록 관리와 팀 소통, 다직종 연계를 맡으며 유니트를 하나의 ‘작은 조직’처럼 운영하고, 이 과정에서 케어의 연속성과 책임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우려되는 인력 부담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일본 역시 처음부터 여건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계 기반의 유니트케어가 오히려 이직률을 낮추고 돌봄 효율을 높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형 유니트 케어는 일본 모델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한국의 제도와 문화에 맞는 운영 철학과 책임 구조를 먼저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Q&A 세션에서도 전문가들의 인식은 분명하게 모아졌다. 유니트케어는 소규모 시설이나 고급 요양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라, 노인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기준으로 돌봄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한국형 유니트케어의 현실로 이어졌다. 제도는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고, 공간·운영·기술 기준은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이에 주서령 교수는 “한국형 유니트 케어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서 있다. 해외 사례를 참고하되, 한국 요양시설 현장을 기반으로 한 설계·운영·기술 데이터가 쌓이지 않으면 확산은 어렵다”고 짚었다. 유니트 케어는 단기간에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현장 실증과 축적을 통해 완성되는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좌담회는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우리는 노인의 마지막 집을 어떤 기준과 철학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한국형 유니트케어 논의는 이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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