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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돕는 인생 기록법…시니어의 자서전 혁명

입력 2025-11-05 06:00

[배움으로 얻다] 한국디지털포용협회 ‘인생사(史)랑’ 교육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요즘 시니어 사이에서는 ‘자서전 쓰기’가 새로운 배움의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글로 정리하며, 나아가 세상과 나누는 일. 그것은 단순한 글쓰기 교육이 아니라 ‘나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여기에 AI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자서전 쓰기 교육이 등장했다.

▲‘인생사랑’ 교육에 참여한 시니어들의 모습.
▲‘인생사랑’ 교육에 참여한 시니어들의 모습.

기술이 묻고, 기억이 답하다

많은 시니어가 “내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펜을 들면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하다. 인생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조화할지, 어떤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풀어야 할지 혼자서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체계적인 자서전 교육이다.

한국디지털포용협회는 AI 시대에 발맞춰 시니어를 위한 AI 자서전 쓰기 ‘인생사(史)랑’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협회는 자서전 글쓰기를 돕는 전용 챗봇 ‘My Life, Our Story GPTs’를 자체 개발했다.

AI 챗봇은 마치 인터뷰를 하듯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참여자는 그 질문에 따라 인생의 조각들을 회상하며 답한다. 무엇보다 참여자는 글을 쓴다기보다 이야기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만큼 결과물은 진정성이 깊어진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챗봇은 어디까지나 글쓰기를 돕는 비서이자 친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서전의 주인공은 온전히 나 자신이다. 더 깊이 있고 밀도 높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AI가 진짜 나의 언어로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다.

교육은 단계별 체계를 갖추고 있다. 1단계 인생 사건 정리 → 2단계 자서전 유형 선택 → 3단계 AI 질문을 통한 초안 작성 → 4단계 편집·보강 → 5단계 교정·출판의 순서로 진행된다. 완성된 책은 약 150쪽 분량으로, 사진과 그림이 함께 실려 글의 양이 많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개인의 기록에서 사회의 기억으로

강의에는 대학교수와 박사급 미디어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한다. 강사진은 챗봇을 활용한 글쓰기 방법을 실습 중심으로 안내하고, 주기적인 피드백을 통해 글의 완성도를 높인다. 1기 과정 지도를 맡은 김원제 박사는 “참여자들이 AI를 글쓰기 기계가 아닌 자신의 삶을 함께 정리해주는 동반자로 인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자서전 쓰기의 가치는 단순히 ‘내 이야기 한 권이 남는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서전 쓰기는 감정의 치유와 자기 성찰의 과정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하는 행위는 우울감 완화, 정체성 회복, 자존감 강화, 심지어 리더십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 개인의 자서전이 모이면, 그것은 한 시대의 생활사를 담는 집단 기억의 기록이 된다. 시니어의 자서전은 곧 사회의 기억이자 문화의 아카이브다.

실제로 시범 강의 당시 시니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 모(72) 씨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다”며 “AI가 던지는 질문 덕분에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이 모(68) 씨는 “손주가 제 이야기를 책으로 읽더니 ‘할머니도 도전하셨구나’ 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내 삶이 과거에 그치는 게 아니라 미래 세대에 전해질 수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서전 쓰기는 개인의 배움을 넘어 세대 간 연결을 확장한다. AI와 함께 쓰는 자서전은 단지 기술을 활용한 글쓰기가 아니라, 인생을 배우고 세대를 잇는 새로운 방식의 배움이다.

INTERVIEW

송민호 한국디지털포용협회 회장 “AI 시대, 고령층 디지털 포용이 미래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시니어 AI 자서전 교육 ‘인생사(史)랑’을 주최하는 한국디지털포용협회는 2024년 9월 설립한 비영리 민간 협의체다. 송민호 회장은 경기대학교 미디어·교양 교수로서 오랫동안 ‘디지털 포용’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온 인물이다.

디지털 포용이란 모든 국민이 차별과 배제 없이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고르게 누릴 수 있도록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사회적 노력을 의미한다. 송 회장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일수록 한 사람도 뒤처지지 않게 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고령자 품에 안아야 하는 디지털 사회

AI 초격차 시대에 접어든 지금, 송 회장은 고령층이 디지털 약자로 더욱 고립될 것을 우려한다. 이미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50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시니어 세대가 사회의 중심축으로 남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손실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고령층 디지털 포용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안전망이자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입니다. 지금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그가 꼽는 고령층 디지털 포용의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경제 활성화다. 시니어는 잠재 소비력이 높은 세대로, 디지털 시장 참여가 늘면 경제 전체의 소비 규모가 확대된다. 둘째, 신산업 성장이다. 고령층의 요구를 반영한 스마트 돌봄, 인지 보조 기술, 고령 친화 UI·UX 등 이른바 포용 기술(Able-Tech)은 미래 유망 산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사회 통합이다. 재교육과 전환 교육을 통해 시니어가 노동시장과 사회활동에 계속 참여할 수 있다면, 그들은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생산적 사회 구성원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협회는 ‘인생사랑’ 교육을 시작했다. AI를 활용한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은 시니어의 디지털 역량을 키워주는 동시에 배움·소통·포용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실천하는 사회 혁신형 교육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이야기가 다르고, 자서전의 스토리도 다양해요. 누군가는 평생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고백하고, 누군가는 지난 삶을 반성하죠. 자서전 쓰기는 개인의 치유이자 세대 간 공감의 통로입니다. 앞으로는 시니어 AI 자서전 전문 강사 양성 과정을 개설해 자서전 쓰기를 시니어의 새로운 일자리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평생 배움을 일로 이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디지털포용법, 국가의 새로운 약속

디지털 포용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2026년 1월 22일 시행 예정인 ‘디지털포용법’ 때문이다. 단순히 정보격차를 줄이는 법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디지털 사회에 동등하게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법이다. 송 회장은 “디지털 격차 해소를 개인의 노력이나 민간의 선의에 맡길 수 없는 시대”라며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디지털 전환은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불평등을 낳습니다. 과거에는 인터넷 접근 여부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디지털 포용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입니다. 이번 법은 그 책임을 제도적으로 약속하는 장치입니다.”

그는 법 시행과 함께 추진돼야 할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모든 국민의 디지털 이용 보장이다. 단순한 기술 확충이 아닌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수다. 둘째, 디지털 대체제 마련이 필요하다. 이는 곧 ‘기술을 거부할 권리’로, 병원 예약이나 금융 업무 등 필수 서비스에는 아날로그 선택권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셋째는 디지털 교육 강화다. AI 시대에는 단순한 기기 활용 능력보다 정보 판별력과 디지털 윤리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송 회장은 디지털 포용의 본질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포용을 ‘AI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으로 본다. 기술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그 출발점이 바로 디지털 포용이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노인은 65세지만, 지금의 65세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닙니다. 디지털 기술을 멀리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술을 통해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인생사랑’과 같이 그 변화를 이끄는 배움의 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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