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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찾아온 각양각색 동물 손님들

입력 2025-10-22 07:00

[전원일기] 개구리, 지렁이도 반가워라

▲방조망을 설치한 블루베리 농장. 참새가 들어가 있다.(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방조망을 설치한 블루베리 농장. 참새가 들어가 있다.(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꽃피는 곳에 벌과 나비 날아들 듯, 식물 있는 곳에 청하지도 않은 동물 손님들이 들락날락한다. 지난해 봄만 해도 고라니 한 마리가 블루베리밭에 뛰어 들어와 커다란 화분 서너 개를 쓰러뜨리고는 쏜살같이 도망갔다. 동네 분들 말씀이 “고라니 고기는 맛이 음써(없어). 누린내가 엄청 나. 그래 인기가 없는 겨” 하신다. 고기 맛 좋은 동물이 로드킬이라도 당하면 눈 깜짝할 새 누군가 채간다면서 말이다.

그해 가을에는 길 잃은 새끼 노루 한 마리도 밭에 들어왔다. 이 녀석은 천방지축 날뛰던 고라니와 달리 블루베리 그늘에 얌전히 숨어 있었다.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어찌어찌 쫓아내긴 했는데 어미를 제대로 찾아갔을지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고라니든 노루든 산에 먹을 것이 떨어져 인가로 내려왔다니 더더욱 마음이 짠하다.


▲손녀가 그린 블루베리 농장의 할머니와 고양이.(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손녀가 그린 블루베리 농장의 할머니와 고양이.(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작지만 톡 쏘는 매운 친구들

2년 전엔 서울서 추석 쇠고 내려온 사이, 컨테이너와 연결된 창고 지붕 처마에 말벌이 커다란 집을 지어놓은 바람에 119 소방차가 출동한 사건도 있었다. 말벌 집을 발견하면 필히 소방서에 신고하라는 안내 문구를 본 기억이 있어서다. 두 명의 소방관이 번개처럼 출동해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농장에 도착했다.

이렇게 큰 말벌 집은 처음 본다는 소방관이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앞으로는 말벌 집이 너무 커지기 전에 신고하시고, 집 떠났던 말벌이 저녁나절 돌아오면 난폭(?)해질 수도 있으니 하루 정도는 조심하세요.” 신신당부하고 돌아갔다. 소방차까지 출동한 덕분에 동네 분들도 한분 두분 나와 한마디씩 거들었다. 사교성 뛰어나기로 일등인 조선족 아주머님, 은근슬쩍 내게 귓속말을 건넨다. “소방관 부르지 말고 우리 아저씨한테 말했으면 좋았을걸. 중국에선 말벌 집으로 담근 술이 남자들에게 좋다고 소문났다”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올해도 말벌이 찾아왔다. 이번엔 밭 한가운데 심은 블루베리 나뭇가지에 집을 지었다. 벌집 크기가 비교적 작은 데다 예닐곱 마리가 들락날락하는 것 같아 그대로 두었는데, 벌집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근처의 풀을 뽑다가 그만 왼팔에 1방, 오른팔에 2방을 쏘였다. 벌에 쏘이는 순간 꽤 따끔하더니 제대로 쏘인 탓인지 주위가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쏘인 자리에선 고름 비슷한 진물이 나오기까지 했다. 상처 주위로 가려움과 통증이 교대로 나타나더니만 완전하게 아무는 데는 꼬박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실상 벌보다 더 지독하게 쏘는 벌레는 쐐기다. 쐐기에 쏘이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꼬박 24시간 동안 예리한 칼에 베인 것처럼 아프고 욱신욱신 쑤신다. 오죽하면 “나 오늘 쐐기 물린 여자야” 하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신경이 곤두서서 누구든 눈에 거슬리게 굴면 한바탕 싸울 태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놈의 쐐기는 물려도 약이 없다. 찬물에 닿으면 펄쩍 뛸 만큼 따갑고 아프지만 따뜻한 물에 닿으면 아무런 통증도 못 느끼니 이 또한 신기하다.

나비목 쐐기나방이 나풀나풀 날아다니며 블루베리 이파리에 낳은 알이 부화하면서 쐐기가 된다. 예전에 호랑나비인지 노랑나비인지를 보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혹해서 나비를 보면 손뼉 치며 좋아한 적도 있었건만, 블루베리 농부가 된 이후엔 나비를 보면 겁부터 덜컥 난다. 연두색 쐐기들이 블루메리잎을 사정없이 갉아먹고 블루베리 따는 사람들 손등을 톡 쏠까 봐.



블루베리밭은 고양이 유치원

한데 블루베리밭의 진짜 골칫거리는 길고양이다. 컨테이너와 저온 냉장고 아래에 아예 살림집을 차리곤 여러 마리가 들락거린다. 작년에 새끼 고양이가 4마리 태어났는데, 올해 4마리가 또 태어났다. 고양이 덕분에 쥐 걱정은 안 해도 되니 다행이다 싶지만, 고양이로 인한 폐해가 만만치 않다. 이 녀석들은 밭에 들어가 블루베리 나무 아래 똥을 누고는 땅을 파서 똥을 묻고 흙을 덮어놓는다. 고양이 똥 세례를 받은 어린나무들은 영락없이 죽어버리니, 고양이 보는 눈이 고울 리가 없다.

새를 쫓으려고 설치한 방조망에 커다란 구멍을 내는 것도 영락없이 고양이 짓이다. 어느 날인가는 고양이가 낸 구멍으로 새들이 줄지어 밭으로 들어가는 것도 목격했다. 새끼 고양이가 조금 더 크면 어미가 밭에 들어가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방조망 따라 올라타기도 하고 배수구 속으로 도망가기도 한다. 심지어 작년엔 창고에 쌓아둔 택배용 스티로폼 박스를 발톱으로 모조리 갉아놓아서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했다.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고양이 키우는 제자에게 조언을 구하니, 시청에서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해줄 거란 정보를 알려줘 곧바로 신청했다. 혹한기 끝나면 출동한다더니 4월하고도 중순쯤 되어 고양이 덫 3개와 참치 통조림 3개를 들고 시의 위탁을 받은 업체에서 농장을 방문했다. 동네 분들 말씀으론 설치된 덫마다 고양이가 붙잡혀서 3마리 모두 데려갔는데, 3마리 잡아봐야 턱도 없으니 부지런히 또 신청하라고 등 떠미신다.


▲밭에서 흔히 만나는 개구리들.(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밭에서 흔히 만나는 개구리들.(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보라색 똥 공습경보!

블루베리 수확기에 가장 까다로운 경쟁 상대는 바로 새다. 블루베리 관련 책자를 보면, 새로 인한 피해가 전체 수확량의 30% 이상을 차지할 수 있으니 방조망을 꼭 설치하라는 권유가 나온다. 하기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새들도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테니 방조망 없던 시절의 우리 조상님들 ‘고생 많으셨겠구나’ 싶다. 블루베리를 수확하던 첫해는 새가 오지 않아 그냥저냥 잘 넘겼다. 한데 두 번째 해가 되자 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머지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뛰며 ‘훠이 훠이’ 손을 저어 새를 쫓아보려 했지만 결과는 물론 꽝이었다. 전통시장 안에 자리한 단골 농약사에 도움을 청하니, 얇은 셀로판지로 만든 가짜 독수리를 걸어놓으라 한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가짜 독수리를 여러 장 사서 농장 이곳저곳에 달아보았지만 이 역시 효과는 제로였다. 당산마을 일이라면 늘 발 벗고 나서는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 대전댁이 무심코 뱉은 푸념이 지금도 기억난다.

“워매! 조치원 새는 모조리 여기 농장으로 날아오는 것 같어. 블루베리 쪼아 먹은 새들이 동네방네 날아다니며 보라색 똥을 싸지르는구먼. 우리 집 장독대도 블루베리 똥 벼락을 맞았네. 우덜은 비싸서 사 먹을 엄두도 못 내는데, 새들 신세가 더 나은가벼.”블루베리 수확 3년 차 되던 해 봄에 방조망을 설치했다. 설치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방조망은 다행히 정부 보조금 신청이 가능한지라 용기를 냈다. 방조망 친 첫해는 새를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새들과의 싸움에서 연전연패했다. 2×2㎝ 그물망을 설치했는데, 틈새가 조금만 벌어져도 머리를 디밀고 들어온다. 새가 들어올 만한 구멍을 찾아 아무리 막고 또 막아도 유유히 들어오는 새 무리를 보면 머리끝까지 약이 오르곤 한다.

게다가 작년엔 커다란 몸집의 청까치가 들어와선 일주일가량 머물렀는데, 블루베리 열매 먹는 양이 엄청난 데다 보랏빛 똥도 푸짐하게 쌓아놓고 몰래 빠져나갔다. 방조망을 뚫고 진입한 새들은 어찌 그리 영리한지, 잘 익고 잘생긴 열매만 쪼아 먹는다. 새들이 먹다 남긴 열매는 예외 없이 새콤달콤하기가 일품이다. 대부분의 농장에서 제일 맛난 과일은 새들 차지임이 분명한 것 같다. 일부 과일 농장에선 새가 쪼아놓은 열매만 모아 팔기도 하는데 워낙 맛이 좋아 인기 만점이란 소식도 들었다. 시각·청각·후각·미각, 모든 감각은 동물들이 한 수 위라는 사실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아무리 잡도리해도 새의 영악함을 당해낼 도리가 없는데, 왜 ‘새대가리’라는 표현을 쓸까? 검색해보니 새대가리는 ‘보통 아둔한 사람을 지칭하거나 조롱할 때 쓰는 단어’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 영어에도 ‘Bird-brain’이란 단어가 있어 멍청한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새들이 이 사실을 알면 집단으로 항의 시위를 할지도 모르겠다. 새들과 10년가량 전쟁을 치르고 난 요즘은 감히 새들을 이기고야 말겠다는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대신 이렇게 애원한다.

“새님들, 올해는 제발 살살 해주세요. 우리 손주들에게 보낼 블루베리는 쪼지 말고요.”


▲밭에서 흔히 만나는 개구리들.(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밭에서 흔히 만나는 개구리들.(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개구리, 지렁이도 반가워라

물론 골치 아픈 불청객만 있는 건 아니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나면, 반가운 손님인 청개구리를 자주 만난다. 청개구리는 청정 지역에만 산다는 속설 때문인지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녀석들을 보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깜짝 놀라는 것도 잠시, 살짝 쫓아가서 손을 오므려 덮치면 움직임이 그리 민첩하지 않은 녀석을 잡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잠시 눈 마주치고 인사 나눈 후 살며시 풀어준다. 봄에 만나는 청개구리는 몸집이 작은 데 반해 블루베리 수확이 끝날 때쯤 만나는 황토색 참개구리는 몸집이 제법 크다. 그 개구리 예전엔 숱하게 잡아서 구워 먹었다던 이야긴 동네 분들 추억의 단골 레퍼토리다.

개구리 있는 곳에 함께 살고 있을 뱀이 그동안은 눈에 안 띄더니, 올해는 내 손가락 두 개 합친 굵기에 길이 90cm는 족히 됨직한 연녹색 빛깔의 뱀이 스르륵 풀 속을 지나가는 모습에 기절초풍하기도 했다.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지렁이도 예전엔 징그럽다고만 여겼다. 그런데지렁이가 유기물을 분해해서 토양을 비옥하고 부드럽게 해주고 식물이 잘 자라도록 돕는 ‘땅속의 쟁기’란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지렁이 대하는 손길이 180도 변했다. 행여 흙 밖으로 나와 멀칭용 비닐 위에 떨어지면 말라 죽지 않도록 호미 끝으로 지렁이를 살며시 들어 올려 다시 흙 속에 묻어주는 일도 이젠 능숙해졌으니 말이다.

가뭄이 심하게 들었던 해 유독 거미가 창궐해 사정없이 빗자루로 털어낸 적도 있고, 수시로 얼굴에 닿는 거미줄을 피해 가느라 귀찮기도 했지만, 해충을 잡아주는 익충이라니 이젠 기특하다는 생각에 거미 한 마리도 애정 어린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동물을 향한 좋고 싫음도 사람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따져 결정하는 좁은 속내가 못내 부끄럽다. 하지만 식물을 키우는 동안 동물을 대하는 마음 또한 한 뼘씩 넓어지는 듯해 뿌듯하기도 하다.

‘경험의 멸종’을 경계하라는 시대에 벌과 쐐기에 쏘이기도 하고, 참새와 청까치를 쫓기도 하며, 개구리와 눈 맞추는 동안 삶이 한결 풍성해지는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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