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커뮤니티 활동으로 쉽게 접근
문학은 함께 나눌 때 그 의미와 즐거움이 배가된다.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 감정을 다른 이들과 공유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이를 위해 시 관련 동아리나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거나, 시를 주제로 한 여정에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도시를 걷다, 시를 만나다… ‘동주와 마실’
도심 속 산책과 함께 문학적 사유를 나눌 수 있는 인문학 프로그램이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 종로구는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문학을 따라 걷는 ‘동주와 마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깃든 종로구 일대를 전문 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그의 시 세계와 삶을 체험해볼 수 있다.
최대 15명이 함께하는 ‘동주와 마실’ 프로그램은 짧은 마실과 긴 마실 두 코스로 나뉜다. ‘짧은 마실’은 윤동주문학관에서 무계원까지 약 1시간 코스로,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반면 ‘긴 마실’은 2시간 30분가량 소요되며, 서촌의 주요 문학 명소를 아우르는 본격적인 탐방이다. 피스북스 코스와 서촌 그 책방 코스 중 선택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2만 원이다.
5월 초 ‘긴 마실 with 서촌 그 책방 코스’를 직접 체험했다. 가정의 달이라 그런지 대부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했다. 프로그램 관계자는 “기존에는 50~60대 여성 참가자가 많은 편이었고, 가족 단위 참여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세대 간 문학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부모와 손주, 혹은 3세대가 함께 참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는 윤동주문학관 앞에서 시작된다. 무선 송수신기를 착용한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향한다. 언덕 정상에 자리한 비석에는 시인의 대표작 ‘서시’가 새겨져 있다. 이어 초소책방, 무무대, 수성동 계곡까지 인왕산 자락을 따라 걷는 여정이 이어진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서촌이 펼쳐진다. 젊은이들이 많은 서촌이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윤동주의 옛 하숙집 터, 누하동 오거리를 거쳐 이상의 집에 들른다. 서정적 감성의 윤동주와는 전혀 다른, 실험적 시 세계를 지닌 이상을 마주하며 문학적 대비의 지점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여정의 마지막은 ‘서촌 그 책방’이다. 이곳에서는 하영남 대표가 직접 진행자로 나서, 참가자들과 함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윤동주의 동시, 이상의 ‘꽃나무’ 등 선별된 명시를 낭독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를 읽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확장하는 시간이다.
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체계적이고 섬세하다. 탐방 코스 외에도 굿즈, 안내 자료, 해설 까지 내실 있게 구성됐으며, 참여자들의 만족도 역시 높은 편이다. 모든 여정이 끝난 후에는 자연스레 시집 한 권을 펼쳐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윤동주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동주와 마실’. 시를 몰라도 괜찮다.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공감하는 과정에서 시는 어느새 마음속에 스며든다.
※6월 1일자로 1차 운영 종료. 2차 운영은 9월에 진행되며, 8월에 신청 오픈.주최·주관 : 종로구, 종로문화재단, 윤동주문학관
운영 문의 : 돌레길협동조합 010-9545-0423, 윤동주문학관 02-2148-4175
시 낭송 동아리 ‘시동’
문학 동아리 활동을 원한다면, 거주지 인근의 공공도서관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서울특별시교육청 용산도서관은 시를 중심으로 한 문학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시 창작 및 시 낭송 동아리를 운영하며, 매년 창작시 공모전을 개최해 시민들의 문학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시동’은 시를 사랑하는 시민 20여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용산도서관의 시낭송 동아리로, 광복 80주년을 맞아 이육사의 시 전편 40편 낭송회를 기획했다. 5월 중순 취재 당시, 회원들은 낭송회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시 읽기에 그치지 않는다. 본격적인 낭송에 앞서 시인과 시를 공부하고, 시의 맥락과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시를 암기한 후 시의 감정을 목소리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윤창규 시동 회장은 “시 낭송은 시를 수백 번 반복해서 읽고 외워 자기 안에 새기는 작업”이라며 “시공간을 초월해 정보, 지식, 감정을 동시에 얻는 예술적 행위”라고 설명한다.
시동은 매주 월요일 4시간가량 시 낭송을 연습하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정기 공연을 연다. 고된 일정이지만 회원들은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윤 회장은 “시를 함께 나누고 해석하는 시간이야말로 시의 진정한 확장”이라며 “함께 낭송할 때 시의 깊이가 더해진다”고 전했다. 회원들 역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언어 감각과 정서적 안정감을 얻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 창작 동아리 ‘시샘’
용산도서관의 시 창작 동아리 ‘시샘’은 단순한 글쓰기 모임을 넘어선다. 매주 시를 쓰고 합평하는 치열한 과정 속에서 시인으로 발돋움하는 이들을 길러내는 문학적 온상으로 자리 잡았다. 양사강 시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2024년 제30회 김유정신인문학상에서 ‘딸기의 축지법’으로 입상했고, 이듬해 ‘모란 경전’으로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 읽기는 좋아했지만, 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양 시인. 직장인 시절 신문에서 경복궁 백일장 공고를 보고 무심코 참가했다가, 예상치 못한 입상과 함께 시 쓰기를 권유받았다. 이후 2016년 용산도서관의 시 창작 강좌에 발을 들였고, 약 10년간 두 해를 제외하고 꾸준히 수업에 참여했다.
양사강 시인은 “등단의 8할은 이승희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승희 시인은 용산도서관 시 창작 교실 지도교수다. 양사강 시인은 성찰시 교육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사물을 깊이 바라보고 새로운 시선을 갖는 것이 시의 출발점이자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기의 축지법’의 시작은 명절에 가족이 떠난 후 접시 위에 남은 딸기와 얼룩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어떤 향기를 남기고 갈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모란 경전’은 어머니의 자수 병풍과 가족 서사,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은 작품입니다.”
동아리 ‘시샘’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시 창작 교실 수강생들이 결성한 이 동아리는 매주 서로의 시를 나누고 합평하는 과정을 거친다.
“내가 아껴서 놓기 싫었던 문장이 남들 눈엔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인정하고 퇴고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했죠.”
이제 그는 ‘시를 위한 시’가 아닌, ‘나를 위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아주 작은 사물의 목소리도 듣고, 남들이 놓치는 감정을 포착하는 시를 지향한다. 나아가 늦은 나이에 시를 시작한 이들에게 용기를 전하고, 기회가 된다면 재능기부로 그 여정을 함께 걷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시 공부를 시작한 건 60세가 다 되어갈 때였어요. 누군가 제게 지금 등단해도 활동할 시간이 10년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등단이 더욱 간절했고, 결국 해냈죠. 늦게 시작해도 괜찮다는 걸 제 시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양사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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