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방 추세… ‘중년’ 배려 시설도 늘어
과거 동네마다 있던 경로당은 노인이 마음 놓고 편하게 지내도록 만든 사회복지 휴식 공간의 한 형태였다.
노인 인구가 많은 동네에선 마을회관이 같은 기능을 하기도 했다. 최근 급격한 고령화사회와 길어진 노후로 노인 여가 활동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경로당 역시 새로운 공공 여가시설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노인복지법 제36조 노인여가복지시설에 대한 법령에 따르면 경로당은 ‘지역 노인들이 자율적으로 친목 도모 및 취미 활동, 공동 작업장 운영, 기타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로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23 노인복지시설 현황’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 경로당은 6만 8000여 개소에 달한다.
경로당이 취미 활동 및 기타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과거 친구와의 대화, 바둑·장기, 라디오·텔레비전 시청 등에 국한되었으며,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활동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시설 협소와 운영 재원 부족, 조직적인 운영 계획 결핍 등으로 노인 여가시설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커뮤니티 공간으로 리모델링되면서 역할을 재정립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소통 위한 복합문화공간
서울시 내 기존 경로당이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는 노년층뿐 아니라 지역 주민 등 전 세대가 어우러져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허브로 활용하겠다는 각 자치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시작한 ‘서울시 개방형 경로당’은 카페·동아리형, 돌봄형, 학습형, 영화관람형 등 다양한 형태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78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신개념 커뮤니티 공간도 함께 조성 중이다. 2024년 7월 오픈한 서울시 서초구 반포2동 ‘시니어 라운지’는 기존 반포2동 경로당 1층을 리모델링해 노년층뿐 아니라 지역 주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여가와 휴식은 물론 세대 간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2024년 8월 중랑구 최초로 오픈한 시니어 복합문화공간 ‘화랑마을 시니어센터’는 경로당, 다목적 프로그램실, 중랑시니어클럽 등을 갖추고, 어르신 일자리 발굴과 교육·훈련 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역 노인의 여가 공간 및 일자리 확대 기회까지 제공하는 공간으로 벌써 지역 주민들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시에서는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복합문화공간뿐 아니라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에서 위탁 운영하는 ‘강남70플러스라운지’도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다. 이는 2019년 11월 개관한 강남형 신노년 문화공간으로 강남구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으며 회원제다. 지역 주민들의 편안한 쉼과 이야기가 있는 공간,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노년의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는 공간, 노년의 삶의 지혜가 지역사회에 녹아 들어가는 지역형 어르신 여가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이루리 서울시청 어르신복지과 주무관은 “서울시에서는 개방형 경로당 및 복합문화공간 등을 대상으로 어르신의 인지 능력 향상과 디지털 역량 강화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스마트 경로당을 추가 조성, 디지털 소외 및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조정민 사회복지사는 “시니어 문화 창출 공간으로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고령층의 욕구에 맞춰 새로운 신노년 문화를 만들어가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5060 액티브 시니어의 취향 맞춤 공간
도시에 비해 노령 인구가 월등히 많은 농어촌 지역에서는 노년층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가시설이 경로당이기에, 그 역할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남 담양군은 2023년 담양읍 경로당 2개소에 중년층의 재도약과 성공적인 노년기 준비를 위한 ‘중년 쉼터’를 조성했다. 중년 쉼터는 복지관과 문화센터를 선호하는 5060 액티브 시니어의 취향에 맞춘 공간이다. 소통을 위한 공간과 북카페 운영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간단한 회의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담양군은 올해 군내 고서면, 창평면, 대덕면, 대전면 4곳을 추가해 6곳으로 중년 쉼터를 확대했다. 그중 대전면 행복문화창작소 1층에 문을 연 중년 쉼터 ‘대전 사랑방’은 요가, 탁구, 제빵 등 14개 취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니어들의 여가 활동을 책임지고 있다. 2026년까지 12개 읍·면으로 확대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부산광역시도 15분도시기획과에서 ‘하하(HAHA, Happy Aging Healthy Aging)센터’를 개소, 노년층을 겨냥한 커뮤니티 공간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하하센터는 60~74세 주민들이 갖는 고유한 경험과 경력을 토대로 자조적 모임을 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기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1호점인 ‘하하센터 재송’은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프로젝트룸, 미디어실, 공유주방 등의 서비스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2호점 ‘하하센터 신평점’은 지하철 신평역사 2층을 개축해 조성했다. 2호점은 라운지와 활동실, 음악실, 독서실, 회의실 등을 갖추고 다양한 분야의 지역 기관과 협업해 신노년 세대 맞춤형 강좌를 선보이고 있다.
경로당의 변화가 과거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던 어르신들을 위한 단순 프로그램 강화가 아니라, 중장기 복지 차원에서의 변화라 반갑다. 경로당을 지역 노인의 여가 문화 및 복지 장소로 활용하며 지속 가능한 실효성 높은 정책이 수립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