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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가 바라보는 ‘가족의 탄생’… 친생추정과 유전자 검사

기사입력 2024-09-23 08:08

[법률 가이드] 제3자 정자 제공 인공수정은 남편 자녀로 추정

가족관계는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구성된다. 부부관계는 법률적으로 혼인신고로 성립하고, 이혼으로 종료한다. 반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이러한 인위적인 법률 관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혈연관계에 근거한다. 즉 친자관계는 원래 자연적인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상의 친자관계를 진실한 혈연관계에 부합시키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제도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모자관계는 분만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당연히 성립한다. 그러나 부자관계와는 달리, 자녀의 출산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당연히 성립되는 것은 아니고 인지, 입양 등의 법률 요건이 구비됨으로써 비로소 성립한다.


민법 제844조(남편의 친생자의 추정)

①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

② 혼인이 성립한 날부터 200일 후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

③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 민법 제884조는 일정한 요건 아래 남편의 친생자 추정 규정을 두고 있다. 제1항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규정을 두고, 혼인 중의 임신 사실을 일률적인 기준에 의해 정할 수 있도록 제2항, 제3항에서 일정한 기간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정한 기간 중에 태어난 자녀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것으로 추정되고,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

‘친생추정’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친생추정에 의해 혼인 중 출생자의 법적 부자관계가 성립하고, 친생자의 추정을 받는 혼인 중 출생자의 지위는 매우 확고하다. 이를 끊어내려면 요건이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민법 제847조(친생부인의 소)

① 친생부인의 소는 부(夫) 또는 처(妻)가 다른 일방 또는 자(子)를 상대로 하여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이를 제기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경우에 상대방이 될 자가 모두 사망한 때에는 그 사망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검사를 상대로 하여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우리 민법은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한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나마 현재는 완화된 것이다. 과거에는 민법 제847조 제1항의 기산점이 ‘출생을 안 날로부터 1년 내’였다. 즉 자녀가 자신의 친생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태어난 지 1년이 지났다면 원칙적으로 부자관계를 해소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친자관계를 부인하고자 하는 부로부터 이를 부인할 수 있는 기회를 극단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친자관계를 부인하고자 하는 부의 가정생활과 신분 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행복추구권 및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현행 민법은 제847조 제1항의 기산점을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로 조정했다.

기본적으로 이는 부자관계를 신속하게 확정하여 자녀의 복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원래 친생추정제도는 모자관계와 달리 부자관계의 정확한 증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친자관계 증명이 가능해진 현 상황에서 부자관계 입증 곤란은 더 이상 친생추정의 근거가 되기 어렵고, 자녀의 법적 지위를 신속히 안정시킬 필요성만 남게 되었다.


친생추정의 예외

이러한 친생추정에도 예외는 있다. 과거 대법원은 아내가 남편의 자를 임신할 수 없는 객관적으로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친생추정을 받는다는 입장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러한 명백한 사정이 있다면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이 경우 소 제기 기간 제한이 거의 없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편이 행방불명 또는 생사불명인 경우, 남편이 장기간 수감・입원・외국 체재 등으로 부재중인 경우,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사실상 이혼 상태로 별거 중인 경우 친생추정이 배제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거의 결여, 별거 상태가 아닌 경우, 예를 들어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다든지, 남편이 생식 불능이라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는 어떠할까? 현재의 대법원과 다수의 견해는 이러한 경우 친생추정이 여전히 미친다고 보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이상해 보일 수 있는 결론인데,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사례[대법원 2019. 10. 23. 선고 2016므2510 전원합의체 판결 사안]

• 남편과 아내는 1985년경 혼인신고

• 남편은 결혼 후인 1992년경 무정자증 진단

• 아내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 시술을 통한 인공수정 방법으로 임신하여 A를 출산

• 남편은 A를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

• 아내는 혼외 관계를 통해 B를 임신·출산

• 남편은 B를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

• 남편은 늦어도 2008년경 병원 검사를 통해 B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

• 남편은 2013년경 A, B를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송 제기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유전자 검사와 친생추정

유전자 검사 기술의 발달로 손쉽게 친자 감정이 가능해졌다. 혼인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었고, 혼인관계가 파탄된 상태에서 아내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녀를 임신하여 출산할 가능성도 커졌다.

전국의 가정법원 근처에 유전자 검사 기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친생부인의 소,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 등 친생자관계에 관한 여러 소송에 활용할 용도로 당사자들은 유전자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친생부인의 소는 진실한 혈연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법률적인 친자관계를 진실에 부합시키고자 하는 남편에게 친생추정을 부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부여한다. 결국 혈연관계가 없음을 알게 되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소 기간(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진행하고, 실제로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은 친생부인의 소로써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다.

그런데 제소 기간을 넘기면 어떻게 될까? 생물학적으로 부자관계가 아님이 명확한데도, 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이에 관해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라도 친생추정이 미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친생추정 규정의 문언과 체계, 민법이 혼인 중 출생한 자녀의 법적 지위에 관해 친생추정 규정을 두고 있는 기본적인 입법 취지와 연혁,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혼인과 가족제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부부와 자녀의 법적 지위와 관련된 이익의 구체적인 비교 형량 등을 종합하면,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본다. 즉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친생추정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하는 것으로, 친생추정 규정을 친자관계의 설정과 관련된 기본 규정으로 삼고 있는 민법의 취지와 체계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또한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면 필연적으로 가족관계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부부관계나 가족관계 등 가정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고, 결국 혼인과 가족관계가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혈액형 검사, 유전자 검사 등 과학적 방법에 따른 검사 결과 역시 ‘동거의 결여’와 같은 예외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반대 견해도 있다. 물론 이 견해 역시 이러한 검사 결과뿐만 아니라 별거 유무와 그 기간, 부부 중 일방이 별도의 주거지를 가졌거나 외국 등 먼 장소로의 왕래가 잦았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부부의 혼인관계가 종료 또는 파탄되어 자녀를 둘러싼 종래의 공동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지 여부와 경위, 친생자관계의 부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이 부모, 자녀와 같이 친생자관계의 직접 이해당사자인지 여부 등 여러 사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공수정과 친생추정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이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자녀가 남편의 자녀로 추정될까?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에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고 보았다. 친생추정 규정은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해 적용되는데, 친생추정 규정의 문언과 입법 취지,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헌법적 보장 등에 비추어 혼인 중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도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부자관계를 신속하게 확정하여 자녀의 복리를 보호하려는 친생추정 규정의 입법 목적을 고려한다면, 인공수정 자녀의 출생 과정과 이를 둘러싼 가족관계의 실제 모습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러한 결론은 타당하다. 대법원은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 친생자관계가 생기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인공수정 자녀를 양육해왔던 혼인 부부에게 커다란 충격일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가족관계를 형성해온 자녀에게도 회복하기 어려운 위험일 수 있다는 점도 논거로 들었다.

기본적으로 정상적으로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 사이에서 인공수정 자녀가 출생하는 경우 남편은 동의의 방법으로 자녀의 임신과 출산에 참여하게 되는데, 남편이 인공수정에 동의했다가 나중에 이를 번복하는 것은 법 감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허용되기 어렵다. 참고로 독일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경우 부모는 친생부인권을 행사할 수 없는 반면, 자녀는 친생부인권 행사가 허용된다. 혈연관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뿐만 아니라, 혈연관계의 태동부터 많은 변화가 있는 만큼 향후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고 기대되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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