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가이드] 사실혼, 배우자 상호 간 위자료 지급 의무 생겨
3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사실혼 관계에 있던 당사자 중 일방이 사망한 경우 그 상대방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이나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법률혼에 부여되는 상속권, 재산분할청구권과 같은 법적 효과를 사실혼 관계의 경우에 동일하게 인정해줄 수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부 법령에서는 사실혼 관계를 법적으로 보호해주기도 한다. 사실혼이란 정확히 무엇이고, 사실혼과 법률혼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사실혼이란?
사실혼이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정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사실혼은 당사자 사이에 주관적으로 혼인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 사회 관념상 인정할 만한 혼인 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를 일컫는다. 요즘 젊은 세대는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여러 하객 앞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서로 부부라는 생각으로 함께 살면서도 혼인신고를 상당한 기간 미루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실혼 관계다. 또한 중년기나 노년기의 남녀가 향후 복잡한 재산분쟁이 발생하거나, 자녀들이 법률적으로 재혼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등의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부부처럼 살아가는 형태(이른바 황혼 동거)도 있다.
하지만 사실혼인지 아닌지 밝히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때 사실혼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동거 관계나 내연 관계, 간헐적인 정교 관계 등이 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서로의 관계는 당사자 두 사람만 정확히 알 수 있다. 서로 단순한 애인 관계라고 생각했는지,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서로 부부라고 생각하는 관계였는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두 사람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수도 있다. 장기간 동거했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부부로서의 공동생활을 의미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동거와 부부 공동생활의 경계도 모호하다.
실제 다툼이 생기는 경우(이런 다툼은 사실혼 배우자에게 일정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에 생긴다)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는 쪽에서는 단순히 동거 관계나 간헐적인 정교 관계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사실혼 관계가 맞다는 쪽에서는 사실혼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여러 증거를 제출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실혼 관계가 있었다고 볼 만한 정황과 자료는 무엇이 있을까. 결혼식을 올렸거나 신혼여행을 다녀왔는지에 관한 자료, 동거 여부와 동거 기간에 관한 자료, 일상적으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재산을 모으고 관리했는지에 관한 자료, 주변 사람들이 이들을 부부라고 인식했는지에 관한 자료, 상대방 당사자의 (조)부모, (손)자녀, 친지들과의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가족사진이나 편지 등의 자료, 장례식이나 제사, 친지의 결혼식, 가족 모임 등 상대방 당사자의 집안 행사나 지인들과의 모임에 어떤 자격으로 참여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관한 자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두 사람이 부부로서 정서적·사회적 실체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지 살펴본다.
사실혼의 일반적 효과
사실혼이 성립될 경우 사실혼 부부에게는 혼인신고를 전제로 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권리의무가 인정된다. 대표적으로 사실혼 부부는 법률상 부부와 마찬가지로 상호 간에 동거, 부양 및 협조의무가 인정된다. 즉 정상적이고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활공동체로 함께 지내면서 자신과 같은 상대방의 생활 정도를 보장함으로써 공동생활 유지를 가능하게 해야 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상대방 배우자가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실혼 파탄의 책임이 있으며, 이러한 사유로 사실혼이 해소된다면 사실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상대방 배우자는 법률혼과 마찬가지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사실혼 배우자 서로 간에 일상 가사(부부 공동생활에서 필요한 통상적인 사무)에 대한 상호 대리권이 있고, 일상 가사에 관한 채무에 대해서도 연대책임이 있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므로 사실혼 배우자는 서로 민법상 친족이 아니며, 사실혼 배우자의 원가족과 인척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친족을 전제로 한 규정은 서로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법률상 배우자가 상대방 배우자를 위해 범인 은닉 및 도피 행위를 하면 처벌받지않지만, 사실혼 배우자가 상대방 배우자를 위해 그런 행위를 하면 처벌받는다. 형법은 매정(?)하게도 애정 관계가 실제로 있는지가 아니라, 민법상 친족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처벌 여부를 정한다.
사실혼 배우자의 권리 인정
앞서 말했듯, 헌법재판소에서 현행 민법상 사실혼 관계의 일방 배우자 사망 시 생존한 상대방 배우자에게는 상속권이나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되지 않고, 법률혼 관계 배우자에게만 인정된다고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혼인신고라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 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상속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혼 배우자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점, 또한 사실혼 배우자는 생전에 증여나 유증 등의 방법으로 상속에 준하는 법률적·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혼 관계의 일방 배우자 사망 시 생존한 사실혼 관계의 상대방 배우자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을 부여할 것인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은 입법자가 입법적인 규율 자체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일 뿐이며, 그렇다고 하여 헌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한편 소수 의견은 재산분할제도의 본질이 실질적인 부부 공동재산의 청산 및 분배에 있는데 사실혼 해소 시에도 법률혼 해소 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청산 및 분배가 필요하며, 사실혼이 생존 중에 해소되었는지 아니면 사망으로 해소되었는지에 따라 그러한 필요성이 달라지지 않으므로(참고로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사실혼이 사별로 해소된 것이 아니라 생존 중에 파탄으로 해소된 경우에는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된다. 이때 법률혼에서 인정되는 재산분할청구권 규정의 유추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 규정은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결국 사실혼과 법률혼 해소 시에 재산 관계 변화는 앞의 표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실혼 관계가 사망으로 해소된 경우, 남겨진 사실혼 배우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은 현행 민법상 부득이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제적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상으로 혼인신고를 하거나, 생존 중에 사실혼 관계를 해소하여 재산을 분할하거나, 생전 증여 또는 유증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외국에서는 이러한 경우에 사실혼 배우자에게 부양청구권 등을 부여하기도 한다.
사례
사실혼 관계의 당사자 중 일방(갑)이 2007년 3월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자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을)는 2007년 4월 사실 혼 관계가 해소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법 원에 재산분할심판을 청구했다. 이후 병 원에 입원한 갑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 고2007년5월결국사망했다.이때을 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되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사실혼 관계는 사실상의 관계를 기초로 하여 존재하는 것으로서 당사자 일방의 의사에 의해 해소될 수 있고, 당사자 일방의 파기로 인해 공동생활의 사실이 없게 되면 사실상의 혼인 관계는 해소되는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을이 비록 갑이 의사불명이라 하더라도 갑의 사망 전에 사실혼 해소 의사표시를 하여 사실혼 관계가 해소됐고 공동생활 사실도 없게 됐다고 보았다. 따라서 을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을의 행위는 의식불명에 빠진 사실혼 관계 배우자인 갑을 두고 비정하게 행동한 것이라고 평가될 여지도 있는 반면, 갑작스러운 갑의 사망 시 현행 민법상 을이 별다른 재산적 보호를 받기 힘들다는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대법원이 을의 입장을 헤아린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기타 사실혼 배우자의 권리
그 밖에 사실혼 배우자에게 어떠한 권리가 법률상 명시적으로 인정되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인이 없는 경우에는 민법상 특별연고자에 대한 분여를 받을 수 있고, 피상속인이 상속인 없이 사망한 경우 또는 사망 당시 상속인이 주택에서 가정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 일정한 범위 내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차권을 승계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국민연금법,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유족급여 등을 받을 권리가 인정되기도 한다. 사실혼 배우자의 거주권 보호, 생활안정(생계 보호) 등을 이유로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사실혼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부부라 하더라도 합리적인 범위에서 법적인 보호가 필요함은 물론이고, 그러한 방향으로 법은 발전해왔다. 가족을 어떤 범위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고, 어느 정도로 법적 보호를 부여할 것인지는 사회문화적 환경이나 가족 관념에 따라 국가별·시대별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근본적으로는 ‘가족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이슈이기도 하다. 사회 변화에 발맞추어 사회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실혼에 대한 논의와 법적 규율이 점차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