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북]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이재연 작가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재연 작가가 꼽은 손주와의 특별한 순간도 함께 만나보세요.막상 손주를 그리기 시작하자 나날이 손주 사랑이 커져만 간다. 하루하루 자랄수록 이야깃거리도 많아져서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내다 보니 나의 그림도 함께 성장해가는 것을 느꼈고 내 생에 손주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매일 기록하고 싶었다.
-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13p
7년, 약 2500일, 60여 권의 일기장. 70대 할머니는 늦둥이 손주가 태어날 때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성장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할머니의 눈에는 손주의 모든 순간이 경이롭다. 그래서 묻는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1948년생 이재연 작가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70세 때다. 며느리의 권유로 경기도 파주시 중앙도서관 그림 동아리를 찾은 것이 계기였다. 학창 시절 이후 처음 4B 연필을 손에 쥔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림에 빠져들었고, 과거의 추억을 담은 첫 그림책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를 펴냈다.
그리고 그해 12월, 뜻밖의 ‘그림 모델’이 찾아왔다. 바로 늦둥이 셋째 손주 준영이다. 이 작가는 손주의 성장을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뒤집고, 걷고, 말을 배우는 과정부터 고집부리고 온갖 장난을 치는 ‘미운 일곱 살’까지 하루하루를 그림과 글로 남겼다.
2017년 12월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2023년 12월까지 7년, 약 2500일 동안 손주의 크고 작은 변화가 차곡차곡 쌓였다. ‘신준영 성장일기’라는 제목의 일기장만 60여 권. 그 가운데 특별한 순간을 추려 엮은 책이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다.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손주가 한 뼘씩 자라나는 동안 할머니 역시 화가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동반성장’이 흐뭇함을 더한다. 70세에 새로운 꿈을 찾은 이 작가는 75세에 그림을 시작해 101세까지 활동한 미국 화가 ‘모지스 할머니’처럼 오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다. 개인전도 준비 중이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수백 장의 사진을 남기는 시대.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주의 성장을 지켜보며 한 획 한 획 그린 기록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70세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50~60대에는 반려식물인 다육이 키우기에 푹 빠져 살았어요. 하루 종일 다육이를 보고 가꾸며 위로를 많이 받았죠.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친구도 사귀고 뭔가 배워보시라”며 파주시 중앙도서관의 그림 동아리를 알려줬어요. 그렇게 70세에 처음 그림을 배우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고 방에 가장 많은 다육이를 그리며 재미를 느꼈어요. 그 무렵 며느리가 방문을 빼꼼 열더니 “어머니, 저 임신한 것 같아요” 하는 거예요. 첫째와 둘째 손주가 어느 정도 자란 뒤라 깜짝 놀랐죠. 첫째와 셋째 손주 준영이는 열 살이나 차이가 나거든요. 여하튼 그렇게 몇 개월 뒤 준영이가 태어났고, 제 그림의 모델도 다육이에서 손주로 바뀌었답니다.
늦둥이 손주의 7년을 기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갓 태어난 손주가 손발을 꼼지락거리는데 고사리 같은 손발 하나하나가 너무 귀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마침 제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사진으로만 남기기보다 직접 그려두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갓난아기를 그려도 초등학생 얼굴처럼 보일 만큼 서툴렀죠. 이후 인물화와 아크릴도 배우면서 조금씩 손주를 닮게 그릴 수 있었답니다. 7년을 꼬박 그리다 보니 그림은 저의 일상이 됐죠.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는 실제로 손주에게 자주 하던 말이라고요?
처음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어요. 당시 저는 황혼육아를 졸업하고 이제 제 시간을 가지려던 때라, 이 나이에 다시 육아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어요. 그런데 막상 태어난 준영이를 보니 너무 예쁘고 신기한 거예요. ‘이 아이가 안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였죠. ‘도대체 너는 어느 별에서 떨어져 우리 집으로 쏙 들어온 거야?’ 싶어서 자주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물었어요. 준영이도 할머니가 자기를 사랑하고 예뻐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손주는 할머니의 그림일기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림일기를 자주 들여다봤어요. 그때는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할머니, 오늘 이거 일기에 쓰면 되겠다”고 먼저 알려주기도 했죠. 지금은 성장 일기를 쓰고지 않지만, 준영이는 여전히 제 그림에 관심이 많아요.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고, 제가 작업하는 그림에 어떤 색을 칠하면 좋을지 물으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줘요. 함께 그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참 재미있어요.
2500일 동안 손주의 성장을 바라본 할머니에게 준영이는 어떤 존재인가요?
보물 같은 존재예요. 할머니를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저를 좋아하는 거겠죠.(웃음) 초등학생인 지금도 어릴 때부터 해주던 성장 마사지를 해주고 있어요. 준영이가 참 좋아하죠. 한번은 “나중에 할머니가 이 세상에 없으면 뭐가 제일 생각날 것 같아?”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해주던 마사지”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준영이의 성장과정을 그림으로 남겼듯이, 준영이에게도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로서 손주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길 바라나요?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준영이가 한창 자랄 때가 코로나19 시기였어요.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도 새삼 느꼈죠. 한편으로는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해 걱정도 됩니다.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AI 시대에는 또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잖아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는 어떤 세상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부터 물건을 아껴 쓰고 쓰레기도 잘 분리해서 버리려고 합니다. 준영이가 어른이 된 뒤에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주민욱 프리랜서)매일 오후, 복도 불도 켜놓고 현관문도 열어놓고 나가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 “짠” 하고 나타나는 우리 집 복덩이 늦둥이 손주는 내 노년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다. 가끔은 짜증을 내고 불만도 터트려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인지 언제나 명랑하고 어떤 일에도 잘 적응한다. 오늘도 내일도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할미가 기도한다.
-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443p
요즘 보기 드문 3대 가족입니다. 가정이 화목한 비결이 있을까요?
며느리의 역할이 큰 것 같아요. 며느리가 참 싹싹하고 말을 예쁘게 해요. 자녀 육아를 돕는 것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요. 저도 딸이 없다 보니 며느리에게 정을 많이 줬어요. 저 역시 사회생활을 해봤기에 일하고 돌아온 며느리가 집안일까지 해야 하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요. 그래서 설거지나 빨래 같은 집안일은 제가 먼저 해놓으려고 하죠. 서로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마음을 써주는 게 화목한 가정의 비결 같아요.
세 손주를 돌보며 경험한 ‘황혼육아’는 어떠셨나요?
물론 힘들 때도 있었죠. 특히 70대에 준영이를 돌보는 일은 또 달랐어요. 아이는 점점 커지는데 제 체력은 떨어지니 힘에 부치더라고요.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집에 들어오는 것조차 버거웠죠. 그래도 누나들이 늦둥이 동생을 참 예뻐하고 잘 돌봐줘서 큰 힘이 됐어요. 이제 큰손녀는 대학생이에요. 그림을 일찍 배워 첫째와 둘째가 자랄 때도 이렇게 기록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준영이의 성장 일기를 쓰면서 기록이 지닌 힘도 새삼 깨달았죠.
‘늦어서 못 한다’고 망설이는 또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70대도 늦지 않았어요. 100세 시대잖아요. 노후를 즐겁게 보내려면 자기가 좋아하고 재미를 느끼는 일을 찾아야 해요. 그러려면 일단 집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문화센터도 좋고 도서관도 좋아요. 저도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림을 배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재미있으니 계속하는 거죠. 앞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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