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영 세계노인인권연합 前의장… “AI는 노인을 관리하는 대신 가능성 열어야”

“정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서로 다른 필요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절충해야 하죠. 그러나 인권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2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제6차 아셈 노인인권 현실과 대안 포럼’ 현장에서 만난 마가렛 영(Margaret Young) 에이지노블(Age Knowble) 설립자는 인공지능(AI)과 노인 돌봄을 이야기하면서도 기술보다 먼저 ‘인권’을 꺼냈다. 어떤 AI가 더 정교한지보다 그것이 노인의 삶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캐나다에 기반을 둔 에이지노블은 지식과 대화, 실천을 통해 노인의 인간적 발달과 인권을 증진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영은 세계노인인권연합(GAROP) 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국제 노인인권 네트워크인 패스 잇 온 네트워크의 인권옹호 책임자와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AGAC) 글로벌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엔 회의장서 마주친 ‘타협할 수 없는 기준’
영이 노인인권 옹호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19년이다. 그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고령화개방형실무그룹(OEWG) 회의에 처음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회의장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노인과 인권 옹호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특히 한 라틴아메리카 활동가가 스페인어로 발언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분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인권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영은 시민단체나 국제기구가 아닌 은행권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전략과 프로그램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자신의 이전 경력을 소개한 뒤 정책과 인권의 차이를 설명했다.
영은 인권이 모든 자원을 노인에게 우선 배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책은 한정된 자원 안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하지만, 인권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긴 정책의 전제를 되묻게 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 뒤 노인을 시설에 수용하는 방식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자신의 집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예방적 지원을 강화하는 해법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에이지노블이 개발한 ‘인권 원칙 프레임워크’로 이어졌다. 캐나다를 비롯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노인, 치매 당사자들과 협의해 노년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리한 것이다.
“AI는 계속 달라질 것이고 기후변화나 국제분쟁처럼 노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새로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권리를 다시 쓸 수는 없습니다. 노인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중심에 둔 인권 원칙이 있다면 변화하는 상황에도 계속 적용할 수 있습니다.”
“노인을 위험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야”
영은 AI와 노인을 이야기할 때 논의가 건강 악화와 치매, 낙상, 고립 같은 위험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안전과 돌봄만으로는 노년의 삶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AI와 노인을 이야기할 때 위험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됩니다. 노인의 가능성과 계속 변화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는 80대와 90대에도 배우고 창작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AI는 이들을 수동적인 돌봄의 대상으로 관리하는 대신 관계를 맺고 배우며 새로운 역할을 발견할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설명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AI가 노인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AI가 노인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에서 무엇을 계속 할 수 있고,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가’입니다.”
AI가 삶을 대신 결정하는 순간이 ‘레드라인’
AI 돌봄은 낙상과 복약 여부를 확인하고 돌봄인력의 부담을 줄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영은 돌봄인력 부족과 재정 압박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시스템의 효율성이 좋은 돌봄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떤 기술은 시간과 자원을 절약해 시스템의 관점에서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선택권은 늘었는지 줄었는지, 사람과의 접촉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을 누가 내리게 됐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치매나 인지기능 저하가 있는 노인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AI는 혼자 외출할 때의 위험을 감지하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AI는 위험을 파악하고 안전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인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되는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험평가가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제한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센서와 AI를 활용한 상시 모니터링 역시 마찬가지다. 돌봄을 받는다는 사실이 자신의 생활을 언제나 관찰하거나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데 포괄적으로 동의했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을 왜 수집하는지, 누가 정보를 이용하는지, 덜 침해적인 방법은 없는지, 당사자가 거부할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AI 사용성 확인 수준 넘어 영향력을 보장해야”
영은 완성된 AI의 사용성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기술을 해법으로 선택하기 전부터 노인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AI가 그 문제에 적절한 해법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아직 열려 있을 때 참여해야 합니다. 참여는 설계, 실행, 평가, 거버넌스 전 과정에 걸쳐 계속돼야 합니다. 단순히 참여시키는 데서 실제 영향력을 갖게 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노인이 모든 기술적 결정이나 규제·구매 결정을 직접 내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영은 일본의 와카미야 마사코가 81세에 프로그래밍을 배워 노인 사용자를 위한 아이폰 게임 ‘히나단’을 개발한 사례를 들며, 노인은 기술의 수동적인 이용자만이 아니라 창작자와 혁신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문을 ‘어떻게 노인의 의견을 반영할 것인가’에서 ‘노인이 어떻게 AI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로 바꿔야 합니다.”
“기술이 바뀌어도 인권은 남아야”
영은 앞으로 마련될 노인권리협약도 특정 기술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권 원칙을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봤다.
“별도의 ‘AI 권리’나 ‘디지털 권리’라는 범주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더라도 노인이 모든 인권을 계속 누리고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협약입니다.”
그는 한국 정부와 기업, 돌봄기관이 AI 활용을 확대할 때 지켜야 할 하나의 원칙으로 ‘인격적 존재로서의 지위와 자기결정’을 꼽았다. 나이나 건강상태, 장애, 의존 정도, 인지기능의 변화와 관계없이 노인은 온전한 한 사람이자 권리의 주체라는 의미다.
“기술이나 돌봄 시스템이 그 사람을 지원하는 대신, 노인이 시스템에 자신을 맞추도록 만들기 시작하는 순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