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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음(無音)의 노래

입력 2026-07-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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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브라보! 순간’ 공모전 당선작 | 행복상]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은빛 관(管) 속의 고독

음악 용어에 ‘배음’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음이 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질 때, 우리의 귀에 닿는 선명한 소리 뒤에 몸의 감각으로 포착되는 숨은 진동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것을 말한다. 차갑고 견고한 금속의 골격 같은 ‘겉소리’가 있다면, 배음은 그 뼈대 사이를 부드럽게 감싸안는 온기이자 체온이다. 연주가 물리적으로 멈춘 뒤에도 잔상처럼 남아 공중을 유영하는 이 진동은, 주선율보다 더 깊게 인간의 내면을 흔들어놓는다.

그동안 40년 넘게 플루트를 불며, 귓속으로 정확하게 안착하는 음가를 만들며 나의 음악적 정체성을 지켜왔다. 긴 시간과 젊음을 투자해서 완성된 나의 명함. 그러나 정작 살아 있는 나를 만든 것은 겉소리가 아닌, 들리지 않는 배음들의 표출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흔적은 늘 은빛 플루트의 좁고 긴 관 속을 통과하는 숨처럼 가쁜 여정이었다. 열네 살, 처음으로 전공의 길을 택했을 때 음악은 내게 낭만이 아닌 규율이었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함성을 지르며 뛰어놀 때, 나는 창문 없는 좁은 연습실에 갇혀 메트로놈의 기계적인 박자 소리에 영혼을 맞추어야 했다. 다른 관악기와 달리 플루트는 연주자의 숨이 악기 밖으로 절반 이상 버려지는 구조로 돼 있다. 허망하게 흩어지는 숨을 모아 한 가닥의 호흡으로 꾹꾹 다져 온전한 음을 만드는 일은, 자신과의 냉정한 싸움이며 무한 반복훈련으로 옆에서 듣는 가족들을 질리게 했다.

10대와 20대의 내 하늘은 구름 없는 연습실 천장으로 낮고 좁았다. 그 좁은 공간에서 나와의 싸움에서 이긴 자신은 손가락과 악기 사이를 이간질해서 몇 시간이나 또 싸우게 했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던 고교 시절, 나의 음악은 더욱 절박해졌다. 입시 지옥에서 당당히 살아남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새벽 기차를 탔다. 애지중지 가슴에 안고 있던 플루트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고 기도하듯 잠들곤 했다. 플랫폼에 내려 마주하던 새벽의 서늘한 공기는 내가 불어야 하는 흔들리지 않는 첫 음의 음정 무게처럼 무거웠다. 유명하신 선생님께 지도받기 위해 정해진 시간을 기다리느라 비 오는 대문 앞에서 습기를 흡수하고, 부모님의 헌신과 맞바꾼 레슨비를 사례하면서,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은 나를 기술적 완벽주의자로 몰아넣었다. 나에게 음악은 ‘표현’이 아니라 ‘생존’이었고, 무대는 ‘축제’가 아니라 단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심판대’였다. 입시의 흰 커튼 앞에서 한 음의 실수는 대학 진학을 더 멀게 하는, 돈과 눈물을 감당해야 하는 재수생·삼수생을 만들 수 있었다.


무관심이라는 이름의 부끄러움

음악적 성취만을 좇던 유학 시절, 나는 사할린 교포 친구 이리나를 만났다. 그녀를 통해 들은 강제징용 1세대인 할아버지·할머니의 이야기는 영화 속 스토리가 아닌 실제 이야기로, 당시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이었던 나에게도 가슴 시린 통증으로 남았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영하 40℃의 혹한 속에서 탄광을 파고, 후에 해방됐음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무국적자’로 떠돌아야 했던 그녀의 할아버지·할머니 이야기는, 그들의 자식인 이리나의 어머니·아버지 삶에 녹아 이어졌고 가끔 기억과 추억 속에서 소환되었다고 한다. 전쟁영화 한 편을 본 듯한 정서적 울림과 통증은 이내 학업과 일상의 분주함 속에 잊혔고, 나는 다시 나의 연주, 나의 성공이라는 좁은 세계 속에 함몰돼갔다.

국내 귀국 후 15년이란 시간이 지난 2016년, 광복 71주년을 맞아 나는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사할린 방문 연주회를 기획했다. 오랜 시간 가슴 한구석에 부채감처럼 남아 있던 그곳의 이야기를 선율의 따뜻한 노래로 풀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주회를 준비하며 홍보용으로 배포할 종이에 인사말을 썼고, 마침 한국에 거주 중이던 이리나에게 러시아어 번역을 부탁하며 한글 원고를 이메일로 전송했다.

며칠 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평소 다정한 것과는 달리 무거웠다.

“어떻게… 사할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수가 있어?” 당황한 나는 내가 쓴 한글 원고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그곳에는 나의 무지함이 고스란히 박제돼 있었다.

“러시아 땅인지, 중국 땅인지 한 번쯤 들어봄직한 사할린을, 지도를 들여다보고서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국가의 역사적 책임과 사과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성하는 의미를 담아 반어적으로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사할린은 언젠가 뉴스에서 들어본 먼 섬이었고, 지식으로만 존재하는 희미한 지명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뼈를 묻은 한의 땅이었고, 단 한순간도 잊지 못한 고향의 건너편이었다. 친구의 질문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녀의 슬픈 가족사를 들으며 가슴 아파하던 기억 한 조각이 내 마음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그 무거운 기억을 짊어진 채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할린, 얼어붙은 시간의 해독

인천에서 직항으로 3시간이면 가는 거리였다. 비록 항공료의 부담을 줄이고자 몇 시간 더 지체되는 경유를 택해서 갔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사할린의 거리보다 실제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은 확실했다. 러시아 사할린주 한인문화원 강당은 낡고 소박했다. 그곳을 가득 채운 이들은 대부분 예순을 훌쩍 넘긴, 혹은 여든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이었다. 이리나가 말했던 그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이곳에 뿌리를 내린 1세대의 후손들이다. ‘한인교포협회’, ‘한인교포 이산가족협회’, ‘한인교포 노인협회’의 이름으로 고향의 뿌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깊게 파인 주름은 그대로 사할린의 거친 대지였고, 굳게 다문 입술은 침묵해야 했던 세월의 기록이었다.

공연 전 그들은 나를 ‘한국에서 온 유명한 연주자’가 아니라 ‘내 고향의 냄새를 묻혀온 막내딸’처럼 대해주었다. 투박한 손으로 내 손을 맞잡으며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은, 그 어떤 평론가의 극찬보다 묵직하게 가슴에 박혔다. 친구가 던졌던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질문이 어르신들의 젖은 눈동자 위로 겹쳐 보였다. 강당 안에 고인 침묵 속에는 누군가의 그리움과 한(恨),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공연의 1부가 끝나고 2부의 막이 올랐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고향의 봄’이었다. 나는 이 곡의 1절을 피아노 반주 없이 플루트 독주로 구성했다. 악기 하나와 연주자의 숨소리만이 존재하는 시간. 화려한 화음으로 가릴 수 없는, 가장 순수한 음악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무대 중앙에 서자, 내가 준비한 그 ‘본질’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겁게 다가왔다.

플루트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차가운 금속이 입술에 닿는 순간, 객석에 앉은 할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일제강점기의 소학교 교실, 부모님과 헤어지던 항구, 그리고 사할린의 매서운 눈보라가 한꺼번에 담겨 있는 듯했다.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평소처럼 깊고 안정적인 복식호흡이 되지 않았다.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조여왔다.


멈춰버린 선율과 이어진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첫 프레이즈를 띄웠다. 은빛 관을 타고 나간 소리가 강당의 천장을 치고 돌아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객석 어딘가에서 아주 작고 가느다란 웅얼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노래라기보다 차라리 앓는 소리에 가까웠다. 한 사람이 시작하자 옆 사람의 목소리가 얹어졌고, 이내 강당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번져나갔다.

그들의 목소리가 내 플루트 선율의 가장자리에 닿는 순간,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오랫동안 기술적으로 단련해온 나의 ‘완벽한 호흡’은 그 투박한 목소리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멜로디를 이어가려 애썼지만, 목이 메어 숨이 더 이상 악기로 들어가지 않았다. 악보 위의 음표들이 시야에서 흐릿하게 번졌고, 손가락은 악기 위에서 멈췄다.

결국 악기를 통해 흘러나와야 하는 ‘고향의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플루트는 내 손에서 힘없이 내려졌고, 무대 위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아니, 그것은 정적이 아니었다. 내가 연주를 멈춘 바로 그 자리, 그 침묵의 틈새로 어르신들의 노래가 파도처럼 이어서 밀고 들어왔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조용히 노래하기 시작했다. 정확하지 않은 음정, 러시아 억양이 섞인 젖은 발음, 그리고 떨리는 호흡. 세련된 오케스트라도, 화려한 합창단도 아니었지만, 그 소리는 내가 평생 추구해온 그 어떤 완벽한 연주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나는 무대 위에서 뜨거운 눈물과 끈적한 콧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드레스의 우아함과 메이크업의 화려함도 잊은 연주였으나, 나는 가장 완벽한 음악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연주자와 청중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소리를 내지 못하자 그들이 나를 대신해 노래를 불러주었고, 나의 침묵은 그들의 노래를 담아내는 커다란 그릇이 됐다. 음악은 무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서로의 숨을 주고받으며 비어 있는 생의 공간을 채워주는 공명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무음’의 1분 동안 온몸으로 체득했다.


배음으로 남은 생의 노래

다시 플루트를 들었을 때, 내 안의 무엇인가가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잘 불어야 한다는 강박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공포도 없었다. 나는 이미 열려버린 가슴으로, 객석의 노래에 나의 숨을 조심스럽게 보탰다. 플루트의 선율은 이제 주인공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따스하게 감싸는 배음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무대와 객석은 하나의 거대한 울림통이 되었고, 강당을 가득 채운 ‘고향의 봄’은 분단과 이별, 고통과 원망을 녹여내는 치유의 제의(祭儀)가 됐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나가는 오늘, 이곳 사할린에서 이렇게 노래할 것이라고 이원수도, 홍난파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주가 끝난 뒤 무대를 내려오는 내게 어르신들이 달려와 손을 잡고 눈물을 훔치셨다. 무언의 노래를 함께 부른 연주자로서 조금 전 무대 위에 배치된 사건의 시간을 아픔도 슬픔도 아닌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응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팡이를 짚고 달려오신 할머니는 내 손등에 자신의 젖은 볼을 비볐다. “내 마음속에 박힌 가시를 빼주어 고마워요, 스빠시바(Спасибо).” 사실 가시를 뺀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다. 내 음악 인생을 짓누르던 ‘증명’의 강박과 ‘무관심’의 부끄러움을 그들의 투박한 노래가 씻어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함께 태극기를 펼쳐 들고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웃음꽃 사이로, 지도에서 지워지고 역사에서 소외됐던 그들의 시간이 조용히 복원되고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자주 노래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입었던 드레스를 환복하고 퇴장하려는데, 문화원 담당자가 급하게 불렀다. 참가하신 많은 분들이 각 협회를 대표해서 감사의 의미를 담아 감사장 전달을 해달라고 문화원 원장님께 요청하셨다고 했다. 급하게 작성하고 직인을 찍은 감사장이 무대 위로 전달됐다. 따뜻한 감사장의 무게는 어깨를 더욱 눌렀다. 하지만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서운함에 젖은 친구의 질문에 이제는 조금이나마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관심했으나 이제라도 그들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음악가의 숙명임을.


이제 나는 다시 일상의 연습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매일 악기를 닦고 숨을 고른다. 하지만 예전처럼 정확을 두려워하거나 기량에 집착하지 않는다. 내가 내는 소리보다, 그 소리 뒤에 남겨질 여운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피어날 배음을 먼저 생각한다. 사할린에서 배운 ‘무음의 노래’는 지금도 내 안에서 끝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 노래는 어느 요양원 봉사 연주로 시작되고, 그것은 또 따라 부르는 치매 할머니의 노래로 완성된다.

무음의 노래를 이어 부르는 요양원 할머니들의 노래엔 또 다른 추억과 사진들이 담겨 있다. 그 노래는 오래된 무지개 이야기와 사진들을 소환하고, 흐린 눈동자에 선명하게 살아나 움직인다. 상영되는 흑백필름 속에서 어린 소녀가 노래를 부르고, 아가씨가 따라 부르고, 아주머니가 이어 부르다, 오늘 할머니로 오버랩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때와 똑같은 노랫말이지만 이제 작고 희미하게 부른다. 하지만 할머니의 무언 노래는 선명하게 어린 소녀의 노래로 완성됐다. 그래서 나는 기대한다. 내가 부는 이 작은 숨결이 언젠가 또 다른 고단한 삶의 곁에 가 닿아, 사랑과 추억의 기억을 소환해내고 그들의 차가운 마음을 조용히 데워줄 배음이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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