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골에 사는 김랑

지리산 자락, 외진 산골이다. 여기 귀촌 11년 차에 이른 김랑(58, ‘지리산 마리의 부엌’ 대표)의 집이 있다. 환한 청산이 드리운 숲의 안통에 새 둥지처럼 살포시 스며든 집이다. 사위의 풍광은 수려하다. 오로지 자연의 민낯으로 채워져 순수하다. 다른 차원의 세상을 이어 붙인 양 그지없이 해맑은 경관이다. 조용한 안식을 구가할 만한 산골짝이다. 어쩌면 고립무원의 외딴섬에 들어온 느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곳이기도. 그만큼 고적한 숲속이다. 그러나 김랑은 이곳에서 고독이 침범할 틈이 없는 평온한 나날을 누린다. 유쾌하게 산다. 그에겐 외려 도시가 ‘외딴섬’이었다.
김랑이 전에 살았던 곳은 경남 창원시. 그는 유기농산물 매장을, 남편 이상대(54)는 수학교습소를 운영했다. 도타운 부부애를 지속하며 살뜰히 일과 살림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불편과 불안이 이어져 안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복잡하고 소란한 도시의 공기에 마음은 물론 몸도 편한 날이 드물었다는 게 아닌가. 특히 병원 처방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격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도시살이가 생리와 적성에 도무지 맞지 않았던 거다. 따라서 마음은 늘 고요한 시골로 흘러갔다. 이렇게 도시에서 이방인처럼 겉돌며 헤매는 자신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그는 2015년 마침내 귀촌을 했다. 남편과 어린 딸과 함께 그토록 갈망했던 산골로 이주해 새살림을 시작한 것.

숨은 듯 깊은 숲속에 있는 집인데 어떻게 찾아냈나?
“가족여행 중에 발견했다. 오랫동안 가급적 세상에서 먼 산골에 있는 자그만 집을 찾다가 용케 이 집과 인연을 맺었다. 자연의 사계를 바라보며 살 수 있는 환경이라 첫눈에 호감을 느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리가 원했던 기준보다 집과 터가 너른 곳이어서.”
작은 집을 원한 이유는?
“규모가 크면 일이 많아져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 봤다. 일에 시간을 과소비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한적한 시골에서 남편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일상, 그 하나면 좋은 삶일 거라고 생각했다. 방 하나짜리 집에 살더라도 심신의 안정과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 밖엔 딱히 구상한 게 없었다. 상당히 용감하게 귀촌한 셈이다.”

생계 대책은 가지고 왔겠지?
“대책 없이 그냥 왔다. 우리는 이 집을 대출받아 샀다. 손에 쥔 게 별로 없이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살다 보면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별걱정은 없었다. 정 어려우면 산골에 지천인 산나물을 채취해 팔 생각이었다. 대책 비슷한 것으로 마이너스통장이 있어 당장 밥 굶을 일은 없었다.(웃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잔고가 바닥으로 내려가더라. ‘어, 이걸 어쩌나?’ 내심 불안했다. 그즈음 남편이 일을 찾아 생활비를 벌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했나?
“아랫마을에 있는 양봉 농가나 곶감 농가에서 품을 팔아 일당을 받는 식의 일이었다. 남편의 고생이 너무 심했다. 어수선한 집과 마당을 고치고 다듬는 일만도 벅찰 텐데, 게다가 전에 해보지 않은 신역(身役)까지 시켰으니….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남편 몰래 눈물 흘린 때가 많았다. 먹고사는 일의 고달픔을 여기에서 처음 겪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산골에서조차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히다니. 잠 못 이룬 밤이 꽤 많았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부족해 나도 산나물을 채취, SNS를 통해 도시의 지인들에게 팔았다. 시골 태생인 나에겐 산나물에 관한 경험이 있어 작업이 어렵진 않았다. 판매는 잘 됐다. 지리산 자락에서 나오는 나물이라 매우 향긋하단 호평을 들었다. 채집해 오는 족족 완판을 했고. 그렇게 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며 한두 해를 흘려보내자 비로소 숙면과 안심이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가 바랐던 평온한 일상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으니까. 날마다 된장국 하나 놓고 밥을 먹더라도 소박한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자 했는데, 그게 가능해진 것이다.”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완전한 정상은 어떤 것일까. 김랑에게 그 답은 ‘소박한 생활’이다. 물질적 결핍을 ‘모자람’이 아니라 과욕이 사라진 ‘여백’으로 받아들이고, 그 청량한 빈자리에서 소소한 일상의 생기와 즐거움을 길어 올리는 나날들. 그게 유유상종과 의기투합으로 조화를 이루어 사는 김랑 부부가 바라는 바일 테다. 사람은 참새가 아니라서 나뭇가지 하나 움켜쥐고 소박한 밤잠을 잘 순 없다. 그러나 김랑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저 형편에 맞춰 자족할수록 물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세상의 파도를 건너는 부부의 돛대엔 ‘오유지족(吾唯知足, 스스로 오직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이라는 좌우명이 걸려 있다.
김랑이 구사한 ‘소박한 생활’의 진도는 매우 빠르게 나갔다. 쾌적한 항해처럼 가뿐한 행진을 했다. 멍석을 깔고 부부가 함께 누워 밤하늘에 모여 수군대는 별들을 바라보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산야에서 얻어온 식재료로 차린 간소한 식사를 즐기고, 취향이 비슷한 이웃의 귀촌인들과 자매처럼 살갑게 지내는 사이에 김랑의 외진 집은 도시 사람들까지 방문하는, 일종의 사랑방으로 바뀌었다. 과속과 계산과 내숭이 만연한 세상에 한껏 지친 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오곤 했다. 하룻밤 묵고 가는 이도 많았다. 그들은 맘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아예 민박 영업집을 열어달란 ‘청원’을 넣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김랑은 예기치 못한 민박 운영에 나서게 됐다. 영업은 경쾌하게 돌아간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호조를 유지하고 있다.

시골에서 숙박업을 하다 실패한 이들이 드물지 않다. 순조로운 운영이 가능한 배경이 무엇일까?
“깨끗한 자연을 만끽하며 마음 편하게 내 집처럼 쉴 수 있는 곳. 손님들이 이곳을 보는 관점이 보통 그렇다. 그들은 민박집에서 잠만 자고 주변 명소를 관광하는 식의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퇴실할 때까지 거의 여기에 머문다. 우리가 차려낸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처럼 함께 밥 먹기. 함께 대화하기. 또는 홀로 가만히 멍 때리거나, 조용한 산책을 즐기기. 손님들의 방식이 대부분 이렇다. 개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우리 부부의 취향을 닮은 이들만 찾아오는 민박집으로 색깔이 고정됐다. 그렇게 되도록 의도적으로 운영했다.”
수익을 올리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민박을 하면서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수익 추구는 과욕일 뿐이다. ‘손님을 골라서 받지 마라. 그래야 돈을 모은다!’ 그렇게 충고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소박한 생활을 이상으로 삼은 우리가 무슨 대단한 사업처럼 민박을 운영한다는 건 모순이다.”
김랑의 어투는 나직하고 수굿하다. 애써 비위를 맞춰주는 언사나 튀는 주장이 없다. 음식에 비하면 조미료를 치지 않고 버무린 산채나물의 담백한 맛에 가깝다.
당신의 성격은 보기보다 사교적인가? 손님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일이 피곤하지 않은가?
“난 그릇이 작은 여자일 뿐이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다.(웃음) 그러나 손님을 가족으로 대하는 버릇 하나는 확실하다. 손님들과 마음을 탁 열어놓고 소소한 일상을, 자연을, 꿈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드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지. 우리는 그들이 이곳에서 온전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누리길 바라며 소통한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는 금방 정들게 마련이다. 재방문 고객이 많고, 함께 먼 곳으로 여행도 하는 식으로 끈끈한 유대가 형성된 건 교감의 폭이 넓은 덕분인 것 같다.”

인생의 오후에 천금처럼 만난 산골. 부드러운 솔바람이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황송하게도 새들이 무료 공연을 펼쳐 외로울 까닭이 없는 이곳. 김랑에겐 보석이다. 따라서 그는 민박 영업으로 분위기가 흔들리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고객들에게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고, 그들의 진심에 찬 얘기와 교감하며 인생을 배우는 나날에 그는 안도한다. 이런 김랑을 대하는 손님들의 태도에도 평범치 않은 게 있다. 우정을 나누며 지내던 몇몇 단골이 적잖은 자금을 모아 기부, 마당에 민박용 작은 집 하나를 짓게 했단 게 아닌가. 덕분에 옹색했던 방 사정이 개선됐다.
“도시에 살 때 난 세상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살 만한 곳은 아니라는 정도의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귀촌 이후엔 달라졌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됐다. 마음으로 스며드는 민박 손님들, 함께 독서를 하고 일상의 여흥도 같이 즐기는 귀촌귀농 부부들, 푸성귀를 슬쩍 마당에 놓고 가는 할머니들, 그리고 한결같이 따뜻한 남편… 시골 생활의 모든 게 선물로 느껴진다.”
뭔가 지독한 경험을 한 적은 없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방문하는 게 인생이잖은가?
“내면이 뒤집힐 정도의 불운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엄청난 산불로 혼비백산한 적은 있다. 강풍을 타고 강과 산을 날아다니다시피 한 산불이 우리 집까지 집어삼킬 기세로 가까이에서 넘실거렸으니까. 자연 앞에 겸손하게 순응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되새긴 사건이었다. 사람이 저지른 실화(失火)로 자연을 망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불 관리를 철저히 한다. 때로 ‘불멍’을 할 수 있냐고 묻는 손님이 있지만 어림없다.(웃음) 금기 사항이다.”

도시에서 살 때와 현재의 당신은 무엇이 다른가?
“시골에서 매사 만족하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도시에선 우울증과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리며 시간을 허비했다. 세상을 그만 마치는 게 정답이지 싶은 생각조차 했다. 몰골 자체가 말이 아니었다. ‘어라, 이제 사람 꼴로 돌아왔네!’ 요즘 도시 친구들이 하는 말이 그렇다.(웃음) 불만도 없진 않다. 이곳엔 눈이 드물며, 오더라도 금방 녹아버린다는 것. 그 하나가 아쉽다. 폭설에 고립돼 깊은 고요를 느끼고 싶었는데, 여기선 어려우니….”
폭설이 데려다주는 고요를 기대했다? 사치치고는 발칙한 것이라 보는 눈도 있으리라. 그러나 취향을 향유해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보다 값진 행복이 다시 있을까. 김랑은 그간의 숲속 생활을 기록한 책도 한 권 냈다. 일상을 진부하지 않게 드라이브하는 데에도 능하다. 해마다 두세 달은 집을 비우고 부부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도시에선 오만가지 번뇌에 사로잡혀 끙끙댔지만 시골에서 자가 치유를 한 이의 타격력 있는 일상이 흥미롭다. 삶엔 ‘지옥’이 섞여 있다. 그러나 그 한 치 곁엔 낙원이 있다. 우리는 흔히 그걸 까먹고 산다.
김랑이 주는 귀촌 Tip•귀촌 후보지가 있다면 최소 한 달, 길게는 사계절을 미리 살아보고 최종 결정하자. 지역의 실상을 경험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상황을 판단했다간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가령 평소 바다를 좋아한다고 덜컥 바닷가에 터를 잡으면 안 된다. 취향으로 바라보는 바다와 삶터로서의 바다는 다르다.•펜션 사업을 구상한다면 관광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관심을 두자.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 업소를 차리는 게 유리하다. 나처럼 조용한 시골에서 자그만 민박집을 하고 싶다면 특유의 ‘색깔’을 고안해 운영하라. 예컨대 요리에 조예가 있다면 조식과 석식을 제공하는 민박집을 열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음식 맛이 뛰어날 경우, 미각을 즐기는 고객들의 재방문 유도가 용이하다.
•시골 생활엔 도시와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생동감 넘치는 자연환경에 기대어 마음을 편하게 다스릴 수 있으며, 많지 않은 돈으로 소박하게 잘살 수도 있다. 다만 시골의 밤은 무료감을 불러들인다는 점을 유념하라. 단신 귀촌의 경우엔 더 지루할 수밖에 없다. 부부가 동행해 귀촌하는 게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일 욕심은 내려놓자. 텃밭과 정원을 가꾸고, 산나물 캐러 다니고, 약초 찾아 산을 헤매는 식으로 모든 걸 하다 보면 건강을 해치고 마음의 여유도 잃을 수 있다. 정말 하고 싶은 일 한두 가지에 집중하는 게 좋다. 특히 텃밭에 연연하지 말자. 동네 어른들과 잘 지내면 푸성귀는 거저 들어온다. 물론 마음을 연 친화 관계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 시골 인심은 여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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