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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래의 세대읽기] 게임 실력 저하가 나이 탓? 뇌 자극에 도움되는 e스포츠

입력 2026-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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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해야 하는 게임’과 ‘새로 배워보는 게임’ 사이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게임은 오랫동안 젊음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밤을 새워 레벨을 올리고, 친구들과 파티를 짜고, 빠른 손놀림으로 승패를 가르는 일은 한때 청춘의 전형 같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요즘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조금 다른 고백이 나온다. “게임을 하다가 내가 나이 들었다는 걸 느낀다”는 말이다.

빠른 손과 체력이 중요한 스포츠, 게임

좋아하던 게임 자체가 갑자기 재미없어진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예전처럼 몸과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감각이다. 화면 전환이 빠른 게임을 오래 하면 멀미가 나고, 반응 속도가 중요한 게임에서는 놓치는 순간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퇴근 후에도 자연스럽게 접속하던 게임이 이제는 시작부터 부담스럽다. 게임을 즐기려면 먼저 체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게임 크리에이터 9년차 A씨도 이런 변화를 겪고 있다. 그는 20대부터 게임을 시작해 꾸준히 게임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30대가 된 지금, 게임을 대하는 감각은 예전과 달라졌다.

A씨는 “20대에 게임을 처음 시작했다. 30대인 지금보다 경험이 더 적었는데도 그때가 게임을 더 잘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퇴근하고 오면 게임을 하고 싶어도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는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 때는 주로 유튜브를 통해 다른 게임 크리에이터의 방송을 보면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내며 대리만족한다”고 했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B씨는 25년간 1대1 스포츠게임을 해온 플레이어다. 그는 최근 국내 대회에 참가한 뒤, 오래 애정해온 게임을 접기로 했다. B씨는 그 이유를 “피지컬이 떨어진 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더 올라갈 수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B씨는 “지금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시간을 써야 하는데,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니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기는 게 목적인 게임인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 몸의 현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은 지금의 30대 게이머가 처한 변화를 보여준다. 실력을 유지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계속 투입해야 하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응 속도와 집중력,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이들이 게임을 그만두는 이유는 단순히 흥미가 식어서만은 아니다. 직장 생활이 본격화되고, 결혼이나 육아, 가족 돌봄 같은 역할이 늘어나면서 긴 시간을 한곳에 몰아 쓰기 어려워진다. 여기에 몸의 피로, 집중력 저하, 반응 속도 둔화가 겹친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켰다면, 이제는 게임을 하기 위해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는 소수의 주관적인 견해는 아니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연구진은 스타크래프트Ⅱ 플레이어 3305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게임 내 자기주도 반응 시간의 연령 관련 둔화가 24세부터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숙련도가 높아도 이런 둔화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중 일부. 전체 게임 이용율과 미이용자 행태.(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중 일부. 전체 게임 이용율과 미이용자 행태.(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중 일부. PC와 모바일 게임 이용 행태.(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중 일부. PC와 모바일 게임 이용 행태.(한국콘텐츠진흥원)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이동

국내 게임 이용 행태에서도 이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전체 게임 이용률은 50.2%로 전년보다 9.7%포인트 낮아졌다. 게임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 부족’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게임을 대체하는 여가다. 공개 보도에 따르면 게임을 하지 않는 이들이 선택한 대체 여가로는 영상 시청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직접 플레이해야 하는 대신 보는 방식으로 옮겨간 것이다. 특히 게임 방송은 조작의 피로를 덜어낸다. 이용자는 직접 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서사를 따라갈 수 있고, 어려운 보스전이나 경쟁전의 긴장감을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A씨가 말한 ‘대리만족’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게임을 즐길 마음은 남아 있지만, 그 세계에 들어갈 에너지가 줄어든 세대가 택한 관전 방식에 가깝다.

방치형 게임의 유행도 이 흐름과 맞물린다. 방치형 게임은 최소한의 조작만으로도 캐릭터가 성장하고 보상이 쌓이는 구조다. 복잡한 조작이나 정교한 반응 속도를 크게 요구하지 않아, 적은 시간과 체력으로도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장르다.

시장 흐름도 비슷하다. 센서타워는 한국 모바일 RPG 시장에서 MMORPG의 매출 비중이 2020년 78.8%에서 2024년 56.2%로 낮아졌고, 같은 기간 방치형 RPG 비중은 1.7%에서 16.0%로 커졌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를 두고 모든 이용자가 빠른 게임을 떠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장시간 몰입과 강한 경쟁을 요구하는 게임에 대한 피로감, 적은 조작으로 보상을 얻는 게임의 성장, 직접 플레이 대신 영상을 보는 흐름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게임의 즐거움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몰입하느냐’에서 ‘얼마나 적은 부담으로도 연결감을 느끼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노년층에겐 게임이 다른 의미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게임이 노년층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청년과 중년 게이머가 게임에서 ‘예전 같지 않은 나’를 확인한다면, 노년층은 게임을 통해 ‘아직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나’를 확인하기도 한다.

게임은 손과 눈, 뇌를 함께 쓰는 활동이다. 규칙을 이해하고,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손가락을 움직여 반응한다. 특히 전략 게임은 자원을 관리하고, 여러 상황을 동시에 판단하며,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계획을 바꿔야 한다. 이 과정이 노년층에게는 새로운 학습과 자극이 된다.

실제로 전략 게임과 인지 기능의 관계를 살핀 연구도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60~70대 성인을 대상으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를 활용한 훈련을 진행했다. 논문에 따르면 훈련을 받은 집단은 과제 전환, 작업 기억, 시각 단기기억, 추론 등 일부 인지 기능에서 통제집단보다 향상을 보였다.

2025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린 연구도 자주 언급된다. 이 연구는 창의적 경험과 뇌 나이 지표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스타크래프트Ⅱ 전문가 집단의 뇌 나이 지표가 비전문가보다 평균 4.06년 낮게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또 단순한 게임이 아닌 전략형 게임이어야 하며, 장시간 연속 플레이는 뇌건강에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커지는 ‘실버 e스포츠’

일본에서는 이런 가능성이 실버 e스포츠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케어 e스포츠’다. 일본의 사단법인 케어 e스포츠협회는 고령층이 e스포츠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다. 협회는 복지시설 입소자들이 참가하는 장기·오셀로 토너먼트를 열고 있으며, 현재는 미에현·기후현·아이치현 등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격투게임 ‘철권8’을 활용한 고령자 대회도 주목받았다. 2025년 11월 열린 ‘제12회 케어 e스포츠 TEKKEN8’에는 복지시설 입소자들이 참가했고, 90대 참가자 간 대전 장면도 화제가 됐다.

일본 아키타현의 시니어 프로 e스포츠팀 ‘마타기 스나이퍼즈’도 있다. 이 팀은 60세 이상 플레이어로 구성된 일본의 시니어 프로 게이밍팀으로, 공식 홈페이지는 이들을 ‘일본 최초의 시니어 프로 게이밍팀’이라고 소개한다. 일본 내각관방 자료도 마타기 스나이퍼즈를 평균 연령 67세, 60세 이상 멤버로 구성된 팀으로 설명하며, 디지털을 활용한 고령층 참여 사례로 제시했다.

같은 게임, 다른 시간 감각

결국 게임은 세대마다 다른 시간을 비춘다. 30대와 40대 게이머에게 게임은 한때 몸이 먼저 반응하던 젊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예전보다 느려진 손놀림, 빨리 쌓이는 피로, 긴 시간 몰입하기 어려운 현실은 곧 ‘내가 나이 들었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반면 노년층에게 게임은 새로운 규칙을 익히고, 손과 눈을 맞추고, 상대와 겨루며, 아직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는 장이 된다. 청년과 중년이 게임 앞에서 쇠퇴를 느낄 때, 노인은 같은 게임 앞에서 가능성을 느끼는 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게임 자체가 아니라 게임을 어떤 시간과 관계 속에 놓느냐다. 누군가에게 게임은 잠깐의 휴식이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인지 자극과 사회적 연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한 세대에게 버거워진 문화가 다른 세대에게는 새 활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은 의외로 좋은 세대읽기의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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