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주거 활동가 김수동 플래너… “지역 안에서 세대 공존할 거주 방식 찾아야”

“아흔이 넘으신 어머니와 함께 살다 보니, 통합돌봄 시대의 임종기 돌봄과 장례 문제가 더 이상 남의 일 같지 않아요.”
김수동 플래너는 공동체 주거 운동의 현장을 오래 지켜온 활동가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의 직전 이사장으로 최근 3년 임기를 마쳤고, 지금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상조조합 ‘채비’에서 플래너로 활동하며 웰다잉 강의와 임종기 돌봄, 대안 장례 운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공동체주택 ‘여백’에서 10년간 거주한 주민이기도 하다.
나답게 나이 듦, 어디서 이룰까
최근 출간된 ‘일본을 보며 생각하는 ‘나답게’ 늙어갈 수 있는 집’은 김수동 플래너의 개인적 경험이 켜켜이 쌓은 문제의식이 함께 반영된 책이다. 이 책은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이자 에이징투게더 대표로 활동 중인 박소정 교수를 중심으로 김종석 차의과학대학교 통합의학대학원 원장, 김정근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 류재광 일본 간다외국어대학교 교수, 일본에 거주하는 편집자이자 작가인 나무가 참여했다.
노년학, 복지, 의료, 비즈니스 전문가와 주거 현장 활동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본의 고령자 주거 현장을 직접 보고 정리한 현장 탐방기이자 정책 지침서다. 물론 김수동 플래너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살펴보면 제목에서도 내용에서도 이 책의 방점은 ‘나답게’에 찍혀 있는 듯 보인다.
“노인이 되면 개성과 욕구, 취향이 쉽게 지워지고, 사회는 사람을 한 명의 ‘김수동’이 아니라 그저 노인으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일본에서 본 여러 시설은 조금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설에 살아도 보호의 대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유지하고 고립되지 않은 채 삶의 고유성을 지키도록 돕는 운영이 돋보였어요. 우리도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면서 이러한 노인의 주체적 삶을 지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은 일본 사례 중 하나는 히로시마의 다양한 기관이 모여 있는 복합시설 ‘미소노코’였다. 김 플래너는 이곳을 “혁신적인 모델 중 하나”이라고 평가했다. 한 운영 주체가 히로시마에서 세 곳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소규모 다기능 재가돌봄센터와 작은 호텔을 결합한 모델, 치매 노인 그룹홈과 청년 거주 공간을 결합한 모델, 지역 주민이 늘 드나드는 지역 개방형 노인요양시설 등이 각각 다른 성격을 띠면서도 모두 지역과 연결된 노후 주거라는 공통된 방향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소노코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건물보다 운영의 방식이다. 집에서 방문 돌봄을 받다가 데이케어를 이용하고, 이후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해지면 그룹홈이나 요양으로 옮겨가더라도 완전히 낯선 체계로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안에서 익숙한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며 삶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에서 말하는 ‘이바쇼’, 곧 꼭 내 집이 아니더라도 존재감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의 개념을 언급하며, 노후의 집은 시설 입소 전후가 단절되는 구조가 아니라 삶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여야 한다고 했다.

공간을 만들 때 ‘세대 간 접점’ 고려해야
청년과의 접점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미소노코 사례를 설명할 때 흔히 별도 사업처럼 떠올리기 쉬운 대학생 셰어하우스는 완전히 독립된 외부 사례라기보다, 같은 운영 체계 안에서 노인 그룹홈과 맞물려 돌아가는 방식에 가까웠다. 김 플래너는 학생들이 노인과 그냥 같은 건물만 쓰는 것이냐는 질문에 “건물은 따로 떨어져 있고, 공유하는 공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주목한 제도 중 하나는 학생들이 그룹홈에서 일정 시간 봉사활동을 하면 거주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었어요. 대단한 전문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동무를 하거나 외출에 동행하고, 디지털 기기 사용을 돕는 정도의 일이죠. 여러 세대를 한 공간에 배치하니 자연스럽게 이런 제도 운영이 가능한 겁니다. 청년들이 부담 없이 노인과 마주칠 수 있고, 그 경험이 결국 낯섦과 혐오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돼요. 반대로 한국에선 노인과 대화해 본 경험이 적어 낯설다고 말하는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오랜 기간 공동체 주거 활동가로 활약해 온 그는 한국의 노후 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 플래너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실버타운과 요양원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실버타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혼자 지내기 어려운 이들에게 실버타운은 필요한 선택지라고 인정했다. 다만 자신에게 실버타운은 ‘쉼터’라기보다는 정해진 상품과 서비스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노년의 삶도 누군가 설계해 놓은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스스로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꾸려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플래너가 실제로 거주하는 공동체주택 ‘여백’의 모습을 보면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다. 여백은 느슨한 협동주택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이 공간에서 살면서 공동체주거가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을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함께 밥을 나누고, 경조사를 같이 겪고, 도움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누군가 손을 내미는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간보호센터를 다니는 어르신이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송영을 받아 줄 사람이 없을 때 단톡방에 요청을 하면 간단히 해결돼요. 대단지 아파트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간단하지만 꼭 필요한, 공적 영역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단 몇 분이면 되지만 아무에게나 부탁할 수 없는 ‘사소한 돌봄’을 여백에서는 쉽게 해소할 수 있어요.”

베이비부머의 노후 거주 대책 ‘우리동네스테이’
김 플래너가 최근 강조하는 거주 개념인 ‘우리동네스테이’도 이 연장선에 있다. 그가 말하는 ‘우리동네스테이’는 고령자가 살던 집과 동네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소규모 협동조합형 공동체주택 구상이다. 대규모 시설로 옮겨가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안에 스며드는 작은 주거 거점을 만들고 여기에 식사, 생활지원, 돌봄을 필요한 만큼 연결하자는 것이다. 혼자 살더라도 완전히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돌보는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고령자 주택과도 결이 다르다.
김 플래너는 “베이비부머에게 사실상 유일한 노후 대책인 현재 거주 주택을 주택연금으로 활용하고, 국민연금을 더해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이용료를 설계하면 사회주택·협동조합·주민 참여를 결합한 방식으로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동네스테이는 단순한 주택 모델이 아니라 노후의 삶을 시설 수용이 아닌 지역 안의 서로돌봄 체계로 재구성하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김 플래너의 시선은 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채비 플래너로 활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일본의 노인주택과 요양시설 상당수가 임종 돌봄까지 품고 있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봤다고 했다.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익숙한 공간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김 플래너가 말하는 재택임종도 꼭 자기 집에서의 임종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병원 밖, 자신이 살아온 지역사회 안에서 익숙한 관계와 공간을 유지한 채 삶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반면 한국은 죽음이 지나치게 의료 시스템 안으로만 들어가 있어 재택의료와 방문간호, 비의료적 임종 돌봄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결국 가족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봤다.
그가 준비하는 다음 책의 주인공은 ‘어머니’다. 어머니 돌봄 과정에서의 일상을 담은 ‘냉정한 영주씨’다. 김 플래너는 코로나 시기 어머니와 깊이 있는 대화를 많이 나누었고, 그 일상을 SNS에 기록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초고령 노인의 지혜’를 발견하게 됐고, 그것을 올가을쯤 책으로 묶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책의 제목은 ‘냉정한 영주씨’다. 그는 “효자 노릇은 못할 것 같고, 친구라도 돼야겠다”며 “그래서 어머니를 ‘영주 씨’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