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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의 허(虛)와 실(實)

기사입력 2017-09-25 17:59

[하태형의 한문 산책]

세상에는 허구의 사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왕왕 존재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적벽대전(赤壁大戰)이 아닐까 한다. 호풍환우하는 제갈량의 화공(火攻)에 의해 무참히 무너진다는 조조의 80만 대군, 그 진실은 무엇일까?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에는 적벽의 전투를 기록한 글이 모두 다섯 군데 등장한다. <위서(魏書)·무제기(武帝紀)>, <촉서(蜀書)·선주전(先主傳)>, <촉서(蜀書)·제갈량전(諸葛亮傳)>, <오서(吳書)·오주전(吳主傳)>, <오서(吳書)·주유전(周瑜傳)> 등이다. 이중 네 군데의 글에서 공통으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당시 조조의 군에 역질(疫疾)이 돌았다는 기술이다. 남방 지역의 습기 차고 찌는 듯한 기후가 건조한 기후에 익숙한 북방의 조조 군영에 전염병을 유발시킨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로 추측할 수 있다.

문제는 화공 부분인데, 화공이 언급되어 있는 글은 모두 세 군데로 <촉서·선주전>, <오서·오주전>, <오서·주유전>이다. 먼저 <촉서·선주전>에는 “손권은 선주(先主: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와 적벽에서 싸워 크게 이긴 후 그 배를 불태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공에 의해 승리하였다”는 내용이 아니라, “승리한 후 배를 불태웠다”라고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오서·오주전>에는 또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주유(周瑜)와 정보(程普)가 유비와 함께 진격하였는데 적벽에서 조조 군을 만나 그들을 크게 격파하니, 조조가 남은 함선을 불태우고 병사를 이끌고 퇴각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함선에 불을 지른 주체는 조조 군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전투에서는 퇴각 시, 군량미나 함선 등 적군이 활용할 소지가 있는 것들은 소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조 군은 퇴각하면서 이와 같은 군칙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보여진다. 마지막 <오서·주유전>에는 주유의 부하 황개(黃蓋)가 계략을 꾸며 거짓으로 항복한다고 한 후 짚을 가득 실은 배를 보내 불을 질러 승리를 이끌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나관중이 자신의 소설에서 극화(劇化)의 소재를 찾은 유일한 사료(史料)이기도 하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전쟁에서 승리한 오나라의 정사(正史)에도 “조조 군에 역질이 돌았다”, “조조 군이 퇴각하면서 함선을 불태웠다”고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 사실은 남방 풍토병에 시달리던 조조 군이 전투에 패해 퇴각하면서 스스로 함선에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조조가 적벽전 이후 손권에게 보낸 ‘위조공(爲曹公) 작서(作書) 여손권(與孫權)’이라는 외교문서에도 이러한 내용이 아래와 같이 등장한다.

“전일, 적벽(赤壁)의 전투에서는 역질이 돌아 우리 스스로 배를 불태우고 돌아오니, 스스로가 역질이 도는 땅을 피한 것이지, 주유의 수군이 우리를 좌절시킨 것이 아니며, 또한 강릉(江陵)을 포기한 것은, 물자가 떨어지고 곡식이 바닥나 있는 곳을 더 이상 점거할 이유가 없으므로 스스로 군대를 돌린 것이지 주유가 우리를 패퇴시킨 것이 아니니….”

즉 전일의 적벽전에서 손권이 혹여 승리했다고 착각하지 말며, 위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적벽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든 도강(渡江)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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