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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시월과 나누다] 신화 속으로 들어가다

기사입력 2017-09-01 09:54

강릉과 정선의 경계지역에 자리한 노추산 입구에서 약 2km 정도 전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모정탑들이 마중을 나온다. 이들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앞으로도 돌탑, 좌우로도 돌탑, 계곡의 물길 사이사이를 뻗어난 샛길로도 돌탑이다,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자연석으로 된 첨성대를 연상케 하는 원뿔형태의 돌탑 3000여개가 늘어서서 우리를 맞이한다. 새소리 물소리에 맞춰 열병식을 하는 듯도 하다.

자칫 지루할수도 있는 돌탑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탄성이 절로 나왔다. 현상세계가 아닌 분명 신화 속을 걷는 느낌이 들어 온몸에 전율이 일며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 많은 돌은 어디서 다 구했을까. 어느 조각가가 어느 설치미술가가 이토록 정교하고 기기묘묘하게 수많은 인간의 염원을 형상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건 한낱 돌이 아니었다. 분명 돌의 형상을 빌렸을 뿐, 원시공동체의 대집단이었다. 추장들을 비롯해 고래, 독수리, 장승, 시조새, 거북이, 토끼, 모두가 숨 쉬고 있는 생명체들이었다. 돌의 마디마디 뼈를 이어 핏줄을 돌게 하는 정성으로 자녀들의 우환을 물리치고 가정의 평안에 대한 기원을 한 개 한 개 쌓아올린 돌탑들.

돌탑의 주인공 차옥순 어머니는 4남매 중 아들 둘을 잃고 남편까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중, 어느날 꿈 속에서 산신령을 만났다.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우환이 사라진다는 계시를 받고 장소를 물색하던 차, 이곳 율곡 선생의 장원비가 있는 노추산을 선택했단다. 조그마한 움막을 짓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집안의 안녕을 빌며 한 개 한 개 돌을 쌓아올리기를 무려 26년, 그동안 집안일도 저절로 풀려 자녀들도 잘되고 남편도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돌탑 3000개를 완성 시켜 놓고 2011년 타계하기 직전 대기리 마을 사람들한테 잘 돌봐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후 강릉시가 마을 사람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관광자원으로 지정했고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감동의 명소였다.

나는 아이들을 위하여 또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얼마만큼 정성을 쏟았나 싶어 핑그르르 도는 눈물을 훔치며 발길을 돌렸다. 이 마음을 졸시로 옮겼다.

율곡의 구도장원비가 있는 노추산 모정 돌탑 길을 걷는다

어느 어머니가 가정의 우환을 없애기 위해 26년간 태풍과 싸우며

단단한 허공을 한 조각 한 조각 쪼개어 쌓아 놓은 3000개의 돌탑들

신화 속에서 단체로 외유 나온 고대인들이 비릿한 하늘 말을 쏟아내고 있다

어느 시대에서 왔냐고 거듭거듭 던지는 내 질문이 튕겨나오는 공이다

구르는 공을 생각 속에 넣는 나는 내 시간을 모두 허물고

태풍에도 끄떡없도록 온 몸에다 눈들을 총총히 심어 기하학적인

새로운 나의 탑을 쌓기 시작한다

때로는 어머니처럼 팔을 활짝 펴 사면을 감싸안기도 하며

- 송시월의 <탑>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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