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함께하는 북人북]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
김한승(金漢承·52) 국민대학교 교수는 저서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의 여는 글에서 인간을 ‘평범하게 비범한’ 존재라 일컬었다. 이는 ‘평범하지만 비범하다’거나 ‘평범하고도 비범하다’는 말이 아니다. 풀어 설명하자면 개개인은 저마다 비범하지만, 한편으론 모두가 그러하기에 인간의 비범함은 곧 평범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를 차별해서도, 차별받아서도 안 되는 존재라는 것. 그는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기 위한 토대로 ‘인류 원리’라는 다소 낯선 주제를 끌어왔다.
김한승 교수의 책을 읽은 이들의 감상평에는 공통된 선입견이 있었다. 대부분 제목만 보고 자존감에 대한 자기계발서나 심리치유서 정도로 여겼다는 것이다. 또 감성적인 위로를 건네리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논리적 해석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위안을 얻게 돼 흥미로웠단다. 물론 책에는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지만, 그 내용의 근간으로 삼은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는 천체물리학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이러한 반응을 낳았다.
“인류 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탄생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적당한 중력, 태양과의 적정 거리,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온도, 육지와 바다의 알맞은 비율 등 수많은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 모두는 아주 희박한 확률 속에서 각자의 특정성을 갖고 우주에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모두 ‘비범한 존재’라 할 수 있죠. 다만, 이 기적 같은 일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일어났으니 ‘평범하다’고 보는 거고요. 이렇듯 인류 원리는 우리가 평범하게 비범하다는 점에 착안해 보다 근본적인 존재의 의미를 고찰하게 합니다.”
아무개를 아무나로 여기는 ‘갑질’
미국 소설가 마가렛 딜란드는 “‘아무개(somebody)’를 ‘아무나(anybody)’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nobody)’ 없다”고 했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령 ‘아무개를 사랑한다’와 ‘아무나 사랑한다’ 등으로 대입해보면 그 뉘앙스가 확연히 드러난다. 책 제목 역시 이러한 의미를 살려 주제를 드러냈다.
“아무개는 어떤 특성을 지녔지만 그것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고, 아무나는 아예 그런 특성을 배제해버린 상태입니다. 때때로 타인을 아무개가 아닌 아무나로 여겼을 때, ‘갑질’ 같은 만행이 일어나곤 하죠. 우리는 상대를 아무개로 바라보는 동시에, 나 역시 그들에게 아무개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근대철학에서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길 권하죠. 이는 달콤한 위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류 원리의 관점에서 ‘나는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즉 ‘아무개’라는 연대성을 통해 궁극적인 위안을 얻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인류 원리의 관점을 자칫 모든 존재를 획일화한다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각자 다양한 특성을 가진 존재임이 같다는 것이지, 애초에 두 존재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류 원리는 평범함과 비범함, 특수성과 일반성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해볼 기회를 마련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정확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는 건 단순히 주소처럼 공간적 좌표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가령 ‘나는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시점에 살고 있는가?’,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과 나중에 태어날 사람들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나는 지금보다 앞으로 더 행복할까?’ 등 삶과 죽음, 인류, 자아의 세계를 아우르는 훨씬 넓은 차원의 질문의 답을 요구하는 일이죠. 이때 자신의 위치를 짚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답을 찾으려면 공간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시간까지 그린 ‘4차원 지도’가 필요하지요. 물론 정확하고 자세한 4차원 지도를 인간은 손에 쥘 수 없겠고요.”
성공적 인생의 클라이맥스
앞서 언급한 4차원 지도에는 시간의 차원이 포함된다. 김 교수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중장년일수록 ‘과거의 나’와의 연결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체된 도로를 지나는데 알고 보니 길 위에 떨어진 매트리스가 원인이었다고 가정해보죠. 누군가 매트리스를 치운다면 그의 선행에 감탄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지나칠 겁니다. 본인이 치른 비용은 이미 허비한 시간이고, 내가 매트리스를 치워 생겨날 이익은 뒤에 오는 사람들이 누리게 될 테니까요. 즉 매몰비용이라 간주한 거죠. 그러나 이는 현재 겪고 있는 일과 앞으로 겪게 될 일만을 염두에 둔 결과입니다. 비록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직접 매트리스를 치우고 스스로 보람을 느낀다면, 과거의 시간을 더 이상 헛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짜증으로만 가득했을 그 시간을 훨씬 나은 경험으로 바꿔준 셈이죠.”
이처럼 대개 과거는 지난 일이고, 미래를 위해 현재에 충실한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태도는 과거 자신의 노력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과거의 경험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과거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한 일 때문에 후회하는 중장년이라면 이러한 태도 변화가 더욱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삶의 비극(?)일 수 있는데, 젊어서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많이 하지만 그에 대한 지혜가 부족하고, 나이 들어서는 혜안은 있지만 선택의 기회가 적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그때 이렇게 할걸’ 하며 때늦은 후회를 하곤 하죠. 하지만 매트리스 사례처럼 어떤 선택이 실패라고 판단할지라도,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노력을 얼마나 보람 있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과는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는 반대로 과거의 성공 기억에만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성공 방식만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인데, 자칫 ‘꼰대’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노후에는 빛을 내야 할 과거, 잊어야 할 과거 등을 구별하면서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잘 엮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령 음악회에서 교향곡을 듣는데 마지막에 이상한 소음이 발생했다면, 사람들은 이전의 좋은 경험은 다 잊고 결과적으로 망친 무대라고 판단합니다. 결국 클라이맥스 부분이 모든 것을 좌우해버리는 거죠. 그만큼 우리 인생 스토리도 뒷부분이 주는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장년은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죠. 실패, 후회, 고통으로 얼룩진 과거일지라도, 현재의 노력을 통해 그 의미를 충분히 재조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