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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지나 만난 군대동기, 벌거숭이 친구 같더라!

기사입력 2018-10-24 11:15

어린 시절 한동네에서 흙장난이나 술래잡기도 함께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던 친구를 벌거숭이 친구라고 한다. 이런 친구가 나중에 높은 관직에 오르거나 돈을 많이 벌어 명절날 금의환향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고향 친구 앞에서 우쭐대거나 다른 한쪽이 주눅들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최근 45년 만에 만난 군대 동기를 통해 오랜 친구를 만난 느낌을 받았다.

바로 군대 동기인 김○○이다. 우리는 반공을 국시로 삼던 시절, 자대배치 첫날 만났다. 나는 경상도 출신이었고 그는 나보다 나이가 2살 많은 전라도 사내였다. 나는 지원병이었고 그는 명문대 학생으로 입영연기를 하다가 입대를 했기 때문에 나와는 나이 차가 있었다. 그는 군 생활이 늘 불만이었다. 학력과 능력이 무시되고 계급과 짬밥으로 풀이되는 서열문화를 못 마땅히 여겼다. 식사 당번은 졸병인 우리들 몫이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선임 병사의 식기세척까지 해주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했다. 나는 군대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기에 그가 불만을 토로하면 긍정적으로 받아주며 대화하며 토닥여줬다. 나이와 학력을 떠나 군대 동기로서 많은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서로 많이 알게 되고 또 의지할 수 있었다. 그는 명문대 학생답게 영어도 잘했고, 경제이론에도 밝았다. 가끔 김○○의 해박한 지식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것을 배우고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군사교련을 대학에서 받았다는 이유로 나보다 3개월 먼저 제대했다.

학업을 마치고 은행이 입사한 김○○과 몇 번의 연락을 취했다. 휴대 전화가 없던 시절 내가 부득이하게 점심 약속을 어긴 일도 있었다. 그 후 저녁 식사를 한번 하고는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몇 년 지나 김○○가 다니는 은행 본사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개인 기밀 사항이라며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40년이란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다.

우연한 기회에 이 은행에서 정년퇴직을 한 분을 알게 되었다. 혹시 ‘김○○’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쉽게 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은 은행에서 고위직 임원을 역임해 은행 일을 했던 사람이면 쉽게 알 수 있는 거물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와 전화를 걸고 서로를 확인했다. 그렇게 45년 만에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는 45년 전의 모습 그대였다. 그는 꽤 성공한 삶을 산 눈치였다. 딸 둘 중에 큰딸의 남편이 변호사고 작은딸도 변호사라고 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 덕택에 해외 지사 근무를 오래 했다고 한다. 혈압이나 당뇨약도 먹지 않고 있을 만큼 몸도 건강하다. 한마디로 자신을 철저히 관리했다. 세월을 뛰어넘어 대화는 끝이 없었다. 군대 이야기는 서로가 다 잊어버려서 한마디 꺼내지 못했지만 자식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가 대화 주제였다. 마치 어릴 적 벌거숭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몇 년을 만나지 않으면 아무리 가깝게 지냈어도 몇 분 동안만 이야기하면 대화가 궁해진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무려 두 시간이나 대화하고 헤어졌다.

군대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아 누구나 그 안에 들어가면 똑같은 쇳물이 된다. 그전에 무슨 일을 했든 학력이 어떻든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만난 사이기에 나이 들어 만나도 우리 둘은 20대 초반의 젊은 병사로 돌아간 듯 대화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고향의 벌거숭이 친구를 만난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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