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생활] ETF라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노후자금을 불리는 지름길처럼 보이는 ‘2배 ETF’. 그러나 이 상품은 돈을 두 배로 불려주는 것이 아니라 손실을 예상보다 훨씬 크게 키울 수도 있다. 최근 투자 열풍 속에서 시니어 투자자의 자금도 빠르게 몰리고 있다. 레버리지 구조와 함정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이름은 ETF, 실질은 한 종목 2배 베팅
본래 ETF(상장지수펀드)라는 단어는 수십·수백 개의 주식을 한 바구니에 담아 위험을 나누는 분산투자의 대명사다. 그러나 ‘단일 종목 레버리지’라는 2배 ETF에는 분산이라는 방어벽이 없다. 오직 단 한 종목의 하루 움직임에 두 배의 지렛대를 걸 뿐이다.
해외의 고위험·고배율 상품으로 떠나는 투자자의 발길을 국내로 돌리겠다는 취지와 달리, 이 상품은 출시 직후부터 국내 증시의 높은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관련 보도에 따르면 상장 초기 규모는 수조 원대였고, 단기간에 투자 수요가 급격히 몰렸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이 짧은 기간에 개인투자자의 순매수 자금이 빠르게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오해는 이름에서 비롯된다. ‘2배’는 투자 기간 전체 수익률이 2배라는 뜻이 아니다. 하루 수익률을 2배로 따라가며, 매일 새로 계산된다.
1000만 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해보자. 첫날 기초자산이 10% 오르면 레버리지 ETF는 20% 올라 1200만 원이 된다. 다음 날 기초자산이 10% 내리면 레버리지 ETF는 20% 내려 960만 원이 된다. 이틀 뒤 기초자산은 1% 손실인데 레버리지 ETF는 4% 손실이다. 2배가 아니라 더 크게 차이가 벌어진다.

이 등락이 20거래일, 약 한 달간 반복되면 기초자산은 904만 원, 즉 10% 손실이 되지만 레버리지 ETF는 665만 원, 즉 33% 손실이 된다. 주가는 (±)10% 오르내리락 했는데 원금의 3분의 1이 사라진다. 이것이 음의 복리 효과다.
금융당국이 이 상품에 대해 교육과 예탁금 요건을 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반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은 1시간,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추가 심화교육 2시간, 총 3시간을 이수해야 거래할 수 있고, 기본 예탁금 3000만 원도 필요하다. (8월 중 시행)이처럼 오래 묻어두고 숙성시켜야 할 노후자금의 본질과 레버리지는 애초에 정반대다.
레버리지 ETF가 노후자금 운용에 맞지 않는 특성을 지녔음에도 실제 투자 행태는 달랐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주요 증권사 4곳의 투자자 수는 40대가 28.9%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1인당 평균 투자 금액은 70대 이상이 6400만 원으로 1위, 60대가 5100만 원으로 2위였다. 40대(5000만 원)와 50대(4500만 원)보다 많다. 시니어는 숫자로는 소수였지만, 1인당 투자 금액은 가장 컸다. 비단 국내 상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 대형 증권사에서 계좌 자산이 5000만 원 이하인 60대 이상 고객이 올해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 ETF는 미국 반도체 지수의 일일 수익률을 3배 역으로 추종하는 상품이었다.

행동재무학으로 본 우리의 자화상
돈과 심리를 연구하는 행동재무학에서는 손실회피 성향을 강조한다. 인간은 잃는 고통을 얻는 기쁨보다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우리는 ‘내가 아직 잃지 않은 원금’이 아니라 ‘남들이 번 돈’을 새로운 기준점으로 삼는다. 즉 남들만큼 벌지 못한 상태를 큰 손실로 인식해 극단적인 위험자산에 손을 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여기에 포모(FOMO : Fear Of Missing Out, 소외될 것을 두려워 함)라는 심리가 결합한다. 뒤늦게 축제에 참여한 은퇴자는 남들이 반년에 걸쳐 쌓아 올린 수익을 단 두 달 만에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린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2배’라는 글자는 리스크가 아니라, 잃어버린 은퇴의 시간을 되돌려줄 수 있는 마법의 티켓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FOMO의 후폭풍은 잔인하다. 시장의 역사가 보여주듯, 대중의 FOMO가 극에 달하는 시점은 대개 시장의 고점 부근이다. 고점은 변동성이 가장 큰 구간이며, 앞서 말한 음의 복리 효과는 변동성이 클수록 더 파괴적으로 원금을 갉아먹는다. 대중은 레버리지가 가장 위험하게 작동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마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요동치는 장으로 향한다.
‘위험을 선호하는 취향’과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40대의 6000만 원과 70대의 6000만 원은 결코 같은 무게가 아니다. 그 차이는 다름 아닌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마흔의 청년에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20년의 세월과 월급통장이 있지만, 예순과 일흔의 은퇴자에겐 계좌의 패배를 복구해줄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은퇴자의 지갑을 지키는 네 가지 심리 방어선
결국 시장의 덫을 피하는 마지막 방어선은 규제나 제도만이 아니다. 평생을 신중하게 살아온 시니어들이 왜 이 무모한 도박판에서 길을 잃는걸까? 행동재무학에서 제시하는 네 가지 경고등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첫째, 기준점이 오염됐는지 점검해야 한다. 손실회피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잃는 고통을 얻는 기쁨보다 더 크게 느낀다. 기준이 ‘내가 땀 흘려 모은 원금’에서 ‘남들이 벌었다는 돈’으로 옮겨가는 순간, 내가 못 번 돈이 고스란히 치명적인 손실로 인식된다. 이 가짜 손실감에 눈이 멀어 레버리지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는 순간, 진짜 손실이 시작된다.
둘째, 모임에서 들리는 무용담은 소음이다. 각종 모임에서 들려오는 ‘얼마를 벌었다’는 무용담은 시장의 진실을 담은 정보가 아니라, 타인의 허영이 만들어낸 비교 기준일 뿐이다. 사람들은 어쩌다 얻은 행운은 크게 말하지만, 쓰라린 손실은 깊이 감춘다. 그 점을 인정하는 순간, 승전보의 탈을 쓴 소음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셋째, 레버리지는 절대 시간을 되돌려주는 티켓이 아니다. 뒤늦게 축제에 참여한 은퇴자들은 조급증에 시달린다. 남들이 반년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수익률을 단 두 달 만에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해져야 한다. 레버리지가 곱하는 것은 매일의 잔인한 수익률일 뿐, 당신이 놓친 시간이 아니다.
넷째, 내 확신이 깊어질수록 계좌의 수명은 짧아진다. 금융학자 바버와 오딘은 시장의 방향을 정확히 맞힐 수 있다는 오만과 확신이 깊어질수록 거래 횟수가 늘어난다고 봤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주듯, 자주 사고 팔수록 은퇴자산의 수익률은 낮아지기 쉽고 계좌는 서서히 녹아내린다.
시장이 아무리 나를 흔들고 조급하게 만들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한도를 단 1원도 넘기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들의 페이스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노후 속도를 지키겠다는 결단도 필요하다. 이 차가운 이성만이 레버리지라는 시한폭탄 앞에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지켜낼 수 있다. 내 노후자금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은 결국 내 마음의 빗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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