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잡기에는 수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고수는 오래 배워서 수준이 올랐을 수도 있고 소질이 남달라 빨리 수준을 높였을 수도 있다.
동네 당구 클럽에서도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수준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도 칠 기회도 생긴다. 그러면 고점자들은 일단 꺼려한다. 하점자들과 쳐 봐야 배울 것도 없고 하점자가 너무 못 치니까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겨야 본전이고 지면 기분 나쁘다. 소위 ‘물’이라 하여 하점자에게 잡혔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고수는 하점자와 칠 때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질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원래 자기 점수대로 놓고 치는 것이므로 이기고 지는 확률은 같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수가 이기는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고점자와 치게 되면 배울 점이 확실히 있다. 지더라도 그것을 익힐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승패에서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이다. 고수와 칠 때는 지는 경우가 많다. 고수를 이겼을 경우는 또 기분이 괜찮다.
골프도 그렇다. 못 치는 사람과 같이 하게 되면 못 치는 사람은 공 찾기에 급급하다. 같이 치는데 같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치는 것이 아니다. 고수가 잘 친 경우라면 우쭐하기도 하고 칭찬도 받아야 하는데 하수는 잘 친 것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남이 치는 공을 바라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댄스도 그렇다. 기껏 하수를 잡아주는데 하수는 정작 자신이나 비슷한 수준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수를 잡아주자니 재미도 없고 집중하지 않다보니 스텝이 틀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너나나나 비슷한 수준으로 보는 것이다. 잔소리를 하면 너는 잘 하느냐고 반문한다. 강사나 프로가 아니면 같은 수강생으로 보는 것이다. 자기수준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대우 받으며 하수를 잡아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수는 고수가 상대해 줄 때 예의를 표하는 것이 좋다. 일종의 존경심 표시이다. “배우겠습니다” 한 마디면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어진다. 고수가 멋진 솜씨를 발휘하면 맞장구를 쳐주거나 칭찬을 하는 것이 좋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말년에 친구가 없어 외롭게 지내셨다. 친구들과 바둑을 두거나 당구라도 치라고 권했다. 그러나 이제 배워봐야 남들은 수준급인데 초보자는 상대를 안 해주니 같이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퇴직한 동생에게도 당구를 권했었다. 그러나 질 때가 많은 하수 시절을 겪기 싫다는 것이었다.
모든 잡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입문하고 나면 초보자 소리를 듣고 어느 정도까지는 ‘하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고수를 만나면 하수 과정을 빨리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겸손하면 더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겸손하지 않거나 감정이 무감각하면 고수는 하수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