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한 바지와 감촉 좋은 티셔츠의 편한 차림, 가벼운 가방. 화장기 없이 모자를 눌러쓰고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지하로 내려가며 오늘 할 일에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양평으로 달릴 참이다.
요사이 혼자서 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연습 삼아 다녀보려고 하니 좀 긴장된다.
양평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양평 성당 근처의 식당에 들렀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집은 음식이 정갈하고 인심이 후해서 다른 손님들에게 소개해도 다들 좋아했다.
맛도 토속적이고 현지의 싱싱한 채소를 쓰다 보니 음식이 살아있는 느낌이 좋다.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계산대 위의 십자고상과 푸른 성지가지 꽂힌 것이 보였다.
가장 토속적인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시켰다. 9천 원.
그때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여주인은 반색하며 달려가 말했다.
“ 아~ 여기는 VIP용 메뉴판을 드려야죠.”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메뉴를 고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음식은 다른 손님을 제치고 먼저 나왔다. VIP니까. 다른 손님들은 익숙한 듯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나도 그냥 묻혀서 조용히 기다렸다. 아니 돌아가는 분위기를 흥미 있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음식을 먹은 다음 계산대에 돈을 내고 나갔다. 수행원만 없을 뿐 분명 VIP가 분명했다.
나는 그 VIP용 메뉴판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메뉴의 가격은 정상가의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 식당에서는 독거노인이나 경로당 노인에게 2500원을 받고 음식을 주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손해나지 않는 범위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고 배부르게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특별히 다른 메뉴판을 만들어 그들이 미안해하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얼마나 따스한 나눔인가.
계산대 위의 십자고상이 멋지게 보였다. 한 사람의 따듯한 마음이 공동의 선을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명절이 다가온다. 구호품을 앞에 쌓아놓고 불편한 아이들이나 사람들을 엑스트라로 놓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홍보용으로 쓰는 사람들은 해마다 줄고 줄어 없어졌으면 좋겠다. 봉사하면서 오히려 많이 배우고 감동을 한다고 한다. 함께 감사하는 마음은 인간이 가진 멋진 감정이다. 그래도 과연 주는 사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정말 유익한 나눔인지 늘 생각할 일이다. 자신의 체면은 세우고 받는 사람이 굴욕적인 나눔이야말로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