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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따스한 마음을 읽다

기사입력 2017-08-28 09:25

[이성낙의 그림 이야기]

▲<종묘 제례 관리> (컬러 애칭, 1938)
▲<종묘 제례 관리> (컬러 애칭, 1938)

작품을 보면 화가의 심성을 짐작하게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 화가 중엔 단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나 에드바르트 뭉크(Edward Munch, 1863~1944)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은 ‘미술 심리’, ‘미술 치료’ 분야에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종교화가 아닌 작품에서 따뜻한 이해와 배려를 고스란히 담은 화가가 있으니, 바로 우리네 풍속과 풍광을 작품에 남긴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 우리 땅을 밟은 키스는 많은 작품과 함께 소상한 인상기도 남겼다. 그중 3·1 독립선언서에 대한 글을 보면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독립선언서에서 발췌한 다음 글은 성명서라기보다는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인류애의 깃발 아래 목숨을 바친다.

구름은 검어도 그 뒤에는보름달이 있나니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약속하도다.


Under humanity’s flag let us perish.

Shadowed from the great black cloud is perfect round moon

Which to us great hope will show.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 ~1940>에서 발췌


그리고 그는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라는 글을 여러 번 남겼다. 또한 키스는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를 여행하며 각 나라의 문화를 고루 체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작품과 글을 통해 한국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분명하게 표출한 것은 참으로 놀랍다.

키스의 작품 중엔 ‘종묘 제례 관리’란 제목을 붙인 그림이 있다. 그런데 작가는 바로 그 선비에게서 ‘의젓한 몸가짐’을 보았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 속에서도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느낀 그것을 화폭에 옮겼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이는 대상에 대한 진지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을 사랑한 엘리자베스 키스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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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현), 간송미술재단 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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