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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일병 구하기

기사입력 2017-07-13 09:47

필자는 중학교 동창들과 산악회를 만들어서 매달 산행을 하고 있다. 가족과 동반해 해외원정ㆍ서울근교ㆍ원거리 산행도 즐긴다. 땀을 뻘뻘 흘리고 정상에 오르면 하늘을 날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된다. 빙 둘러앉아 도시락과 간식을 꺼내놓고 푸짐한 음식과 함께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면 우정은 더욱 돈독해진다.

멀리 산행이라도 갈 때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마치 학창 시절 소풍 갈 때처럼 즐거운 시간이 된다. 그런데 행동은 느리지만 지구력이 대단한 ‘거북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시간 약속을 해도 자주 지각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버스 출발을 조금 늦추면 되지 뭐 하며 기다려줬고 어느 순간 그의 지각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좀 기다려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당사자는 전혀 미안한 표정이 없었다. 부인이 동행할 때는 가끔 시간을 맞출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른 친구들이 그의 지각을 많이 양해해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몇 년 전부터 산행 모임에 변화가 생겼다. 높은 산을 오르기 힘들어진 부인들은 빠지기 시작했고, 시간 여유가 많은 남자들만 남았다. 도시락도 사라지고 하산 후 뒤풀이가 풍성해졌다. 허리띠 풀고 먹고 마시는 시간이 많아지자 친구들은 다른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또 등산이 힘들어진 친구가 하나둘 늘면서 걷기 쉬운 둘레길을 많이 찾았다. 대여섯 시간 산행 시간은 두세 시간으로 확 줄었다. 전철로도 갈 수 있는 경기ㆍ강원 지역 명승지의 둘레길이 우리 나이에 딱 맞는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아차렸다.

지금은 수도권 전철을 많이 이용한다. 경춘ㆍ중앙ㆍ경강선을 타면 가는 곳마다 산행 명승지다. 차가 막혀서 기다리는 일도 없고, 비용도 얼마 들지 않아서 안성맞춤이다. 전철은 편리하지만 운행시각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런데 상봉역 집결지에 늦게 나타나는 거북이 친구 때문에 산통이 다 깨져버렸다. “친구야 같이 가자.” 지난날 버스 창문을 두드리던 버릇으로 전철을 향해 아무리 손을 흔들어봐야 소용없었다. 그렇다고 차 한 번 놓치면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몇십 명 친구들이 거북이를 위해 출발을 늦추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몇 번은 친구들이 기다려줬지만 시간이 갈수록 용납이 되지 않았다. “저 친구 좀 뺄 수 없나?” 친구들의 불평이 하늘을 찔렀다. 50년지기가 아니면 참기 어려운 장면과 함께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꿩도 매도 다 놓칠 위기가 닥쳤다. 이 나이에 본인의 의식 변경은 매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거북이 일병 구하기’ 작전이 시작됐다.

먼저 당일 전화와 문자로 약속시간을 알렸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를 보지 않았다.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지금은 빛의 속도를 따라야 사는 시대, 운동경기도 수백ㆍ수천분의 1초에 승부가 갈리는 세상이다.

2단계로는 몇 년 전까지 산행을 같이 했던 친구 부인을 설득했다. 산행 안내 공지사항을 친구와 부인에게 함께 보냈다., 당일 전화와 문자도 친구 대신 친구 부인에게 보냈다. 눈을 비비고 나오면서라도 지각하지 않는 거북이 일병을 상상하면서….

“으이구 주책이야, 거북이 일병! 제발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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