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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 이야기(八チ公物語)

기사입력 2017-07-06 10:49

특별히 잘 알려진 대작이거나 이슈가 되는 영화는 아니어도 편안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영화자료들이 집에 있어서 요즘 틈날 때마다 한 편씩 본다. 하치 이야기(八チ公物語)라는 아주 오래전의 일본 영화도 그중의 하나다. 장르는 가족드라마이고 청소년도 관람할 수 있는 영화다. 자극적이고 도가 지나치는 이야기들에 익숙해져가는 요즘 사람들이 보면 신파 같다며 재미없어 할지도 모르겠다.

온 동네와 주변 산과 들이 눈에 뒤덮이고 계속해서 눈이 펄펄 내리고 있는 아키타 현의 풍경이 친근하다. 이병헌과 김태희의 러브스토리가 부럽도록 펼쳐지던 몇 년 전의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경이었던 곳. 여전히 엄청난 눈이 아키타 현의 본모습처럼 첫 화면부터 다가온다.

그렇게 흰 눈이 소담스레 내리던 날, 어미 개의 산고가 진행되고 곧 이쁜 강아지 두 마리가 태어난다. 그리고 그중 한 마리가 동경제대 은사님에게 보내진다. 사랑에 빠져 연애 중인 외동딸과 교수 부부의 관심 속에서 살게 된 강아지는 우뚝 버티고 선 모습이 八자 같다 해서 '하치'라 이름 붙여진다. 그리고 곧 결혼해버린 외동딸의 빈자리를 채우며 하치는 우에노 교수와 깊은 정을 나눈다. 하치는 우에노 교수가 출근하는 아침에 역까지 늘 배웅한다. 뿐만 아니라 퇴근 때도 시간을 맞춰 기다린다. 하치와 늘 함께하는 우에노 교수의 행복한 표정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필자의 생각을 다시금 부추긴다.

하치의 가족들은 말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개에게도 견격이 있어. 견격을 존중해줘야 한다구.”

기억해둬야겠다. 견격~

10년 넘게 우에노 교수와 하치의 사랑 넘치는 관계는 가족들에겐 질투를, 그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준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행복은 단지 그 대상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전염이 되는 법.

그러나 어느 날 뜻밖에도 우에노 교수가 강의 도중 갑작스럽게 뇌일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이때부터는 쓸쓸하고 슬픈 하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계절의 모습이 몇 번씩 화면을 지나가고 시부야역 앞에서 퇴근하는 교수를 기다리는 하치의 애타는 눈빛 때문에 보는 사람의 가슴속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그렇게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영원히 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던 하치는 흰 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시부야역 앞에 쓰러져 쌓여가는 눈에 덮여간다.

▲도쿄 시부야역 하치코 출구로 나오면 충견 하치코(忠犬ハチ公) 동상이 있다(이현숙 동년기자)
▲도쿄 시부야역 하치코 출구로 나오면 충견 하치코(忠犬ハチ公) 동상이 있다(이현숙 동년기자)

1987년 일본판 영화인데 1923년부터 있었던 실화에 기초해 영화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 미담을 기리기 위해 동상까지 제작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도쿄에 갔을 때 시부야역 근처의 그 동상을 일부러 찾아갔다.하치는 우리나라의 진돗개와 같은 일본의 명견 아키다견으로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을 슬프게 한 이 영화는 1920년대가 배경이라서 고답적인 풍경이 화면에 가득하다. 또한 요즘과는 다른 어색한 연기와 대사까지도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마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님> 같은 분위기가 나름대로의 재미를 준다고 할까? 그리고 눈부시게 벚꽃이 흩날리고, 비가 쏟아지거나 낙엽이 날리는 스산한 가을까지도 일본 특유의 분위기로 전한다. 눈이 내리고 쌓이는 아키타 현의 겨울 풍경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작을 미국에서 가져가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리처드 기어가 우에노 교수를 연기한 영화를 필자도 보았다. 개와 사람 간의 특별한 교감을 다룬 영화는 많다. 하치 이야기는 자극이 난무하는 세상에 가슴속에 잔잔히 감동을 일으키며 평화로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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