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는 이혼의 전단계로 상대와의 관계를 정리하기위한 거리를 두는 시기라면 졸혼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준 비단계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은퇴를 하고 귀촌생활을 원하지만 아내는 익숙한 도시생활과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한발작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럴 때 졸혼을 선언 하면서 각자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산다고 합니다.
내게는 부부동반으로 세 가족이 만나는 조촐한 모임이 있습니다. 30년도 더 넘어 젊은 시절 같은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끼리 정분을 이어오다가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래도 먼 거리는 아닙니다. 질기고 질긴 인연으로 매월 한 번씩 만납니다. 밥값은 돌아가면서 쏘는 식으로 처리합니다. 이중에 한집이 앞에서 예를 든 일본의 졸혼과 비슷한 생활을 합니다.
남편이 생활비로 일정금액을 아내에게 주고 잠도 집에 들어와서 자지만 별거하는 형식으로 다른 방을 각자 쓴다고 합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남편은 밖에서 밥을 사먹고 집안에서는 일절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 부부인데 속으로 보면 남과 다를 봐가 없습니다. 어찌 대화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나 같으면 속터져 죽을 것 같은데 잘도 견디며 생글생글 웃습니다.
일본식 졸혼의 태동배경이 아내가 퇴직한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편의 수발 등 아내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황혼이혼이 생겨났고 거기에 불을 지핀 것이 이혼을 하면 남편의 연금의 상당액을 아내가 받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내들이 구속받지 않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고 황혼이혼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부인이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졸혼의 장점이라고 합니다. 반면 단점은 두 집 살림을 하니까 생활비가 많이 들고 혼자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해도 119에 전화를 해주거나 간병 등 직접적인 도움을 배우자로부터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늘어나는 황혼이혼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본의 졸혼 사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국형 졸혼으로 한집에 별거 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황혼이혼도 막고 서로 도움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집에 살면서 남남처럼 지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눈에 안 보이면 모를까 같이 있으면서 투명인간처럼 서로 행동한다는 것이 속에서 천불이 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혼보다는 시간을 바탕으로 화해를 모색한다고 봅니다. 앞에서 예를 든 내가 아는 부부처럼 실제 졸혼 가정을 영위하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합니다. 맞벌이 부부는 연금도 따로 받으니 경제력으로도 짱짱하여 아내는 남편의 잔소리를 듣고 살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나라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졸혼 부부가 자꾸 늘어날까봐 걱정을 합니다. 나이 들어 ‘부부함께 하기’ 등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의 가부장만 고집하다가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