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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삼일천하로 무너진 반란!

기사입력 2016-08-01 13:58

◇첫째 날

문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수입브랜드 의류매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아침에 남편 출근할 때, 부부싸움을 하였다. 다른 날은 다투고 나가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남편한테서 필자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전화가 온다. 그런데, 이날은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없는 것을 보니, 단단히 삐쳤나 보다. 밤 12시가 지나도 남편이 집에 귀가하지 않았다. 매장과 집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거리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보니, 이날은 하루 종일 서로가 전화 한통 주고받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니까, 어린 아들을 재워놓고 매장에 가보았다. 새벽 1시쯤 이였는데, 여름이라 그때까지도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매장에 들어가지는 않고, 길 건너 골목 입구에서 건너다보았더니 불빛이 보였다. 남편이 매장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집에 왔다. 재워놓고 온, 어린 아들이 걱정되어서다. 집에 도착해서도 남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둘째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린 아들을 유치원에 보낼 준비를 했다. 남편은 아침식사 시간이 되었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들은 ‘아빠 어디 갔느냐’고 찾는다. 필자는 어린 아들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응, 좋은 물건 알아보려고 일찍 회사에 가셨어.” “그랬구나. 난 또, 어디 갔나 했지!” 남편은 평소에 어느 상품이 새로 나왔는지, 또, 어떤 상품들이 잘 팔리는지 살펴보러, 자주 의류회사에 가곤 했기 때문에, 어린 아들 까지도 그렇게 말 하면 잘 알아듣는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난 후, 반찬거리를 사러 가락시장엘 갔다. 문정동 살 때는 가락시장이 가까워서 평소에도 잘 이용하는 곳이다. 필자가 반찬거리를 사러 간 것은 모두 다, 이유가 있다. 다음날 아침쯤엔, 남편이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서 집에 들어 올 것이라는 계산을 해서다. 그것을 노리고, 필자는 아침상을 생일상처럼 아주 풍성하게 차리려는 것이다. 남편이 이틀 동안 매장에서 자느라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서가 아니다. 남편의 가출하는 버릇을 싸악 고쳐 주려는 것이다. ‘당신이 없어도 난, 아들하고 둘이서 더 잘 먹고, 더 잘 살 수 있어. 나가려면 나가! 난, 당신 같은 남편 필요 없으니까!’ 그런 마음을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장을 볼 때도 남편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일부러 골라서 샀다. 아들이 유치원에서 오기 전에 서둘러 집에 왔다. “엄마! 내일 누구 생일이야?” “아니!” “그럼, 할머니 오신댔어?” “그게 아니라, 우리 아들 맛있는 거 해주려고 그러지!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빨리빨리 키가 쑥쑥 크라구!” 아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러 나간다. 엄마가 돼가지고 어린 아들에게 거짓말만 하구! 참, 필자도 한심하고 불쌍하다. 둘째 날도 서로가 전화 한통 주고받지 않았다.

셋째 날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3일째 되는 날이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골고루 많이 차려놓고는 아들에게 밥을 먹인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식사 시간이 되니까 현관문을 열쇠로 여는 소리가 들린다. 필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모른 척하였다. “아빠! 회사에 갔다 왔어?” “으?응, 아들아, 밥 좀 주라, 아빠, 배고프다!” “아빠, 빨리 여기 앉어. 맛있는 거 아주 아주 많어.” “여기? 그래, 아, 알았어” “엄마! 아빠 숟가락 가져와야지. 빨리 빨리!” 필자는 못 이기는 척하고 남편의 수저와 밥, 그리고 국을 챙겨다 주었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낼 준비를 마치고, 유치원차를 기다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유치원 차가 떠나고 나서, 필자는 머언 하늘을 쳐다 보면서 한 호흡 크게 쉬고는 씨익 웃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폭풍 흡입을 했나보다. 평소에는 한 공기 이외에는 절대 안 먹는 사람인데, 한 공기 다 먹고, 더 갖다가 먹었다. 거기다가 과일에 커피까지 챙겨 먹은 것이 아닌가! 먹을 건 다 먹었네. 필자는 남편에게 꼭 한마디를 했다. “왜 들어왔어? 우리는 당신 없어도 잘 살 텐데. 아! 서류 때문에 들어 왔구나! 그럼 오늘 법원가자.” “아,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늦었어. 빨리 나가 봐야 돼.” 남편은 급히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는 꽁무니를 뺀다. 배가 고파서 더 버티지 못하고 ,남편의 반란은 이렇게 허망하게 ‘3일천하’로 끝을 맺었다.

그 이후로는 단 한번도, 남편이 외박을 하거나, 가출을 해 본적이 없다. 먼 훗날, 남편에게 들은 얘기인데, 그날 아침에 집에 들어와 아침 식탁을 보고는 완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한다. 집 나가면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그래서, 앞으로는 절대로 집을 나가지 않고, 싸우더라도 꼭 집에서 싸우겠다고 결심 했단다. 필자의 계획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지금은 집집마다 대부분 현관에 번호 키를 설치하니까, 열쇠로 열고 들어갈 일이 없지만, 필자네 집은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현관을 열쇠로 열고 드나들었다. 남편은 출근을 할 때나, 외출을 할 때면 꼭, 열쇠를 챙기면서 필자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그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열쇠 없으면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쫒겨 날까봐, 다른 건 몰라도, 열쇠는 꼭 챙겨야지.” 필자도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는다. 남편도, 필자도, 그 허망한 ‘남편의 3일천하’가 생각나서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항상 웃음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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