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파도여 언제까지나’라는 영화는 필자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집사람과 대학교에 들어가 다시 데이트를 시작한 후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함께 본 영화이다. 1963년 6월 스카라 극장에서 상영한 이 영화에는 최고의 칸초네가수 도메니코 모두뇨가 주인공으로 출연해 여러 곡의 칸초네를 불렀다.
그리고 미녀가수 미나가 주제가 ‘행복은 가득히(Il Cielo In Una Stanza)’라는 칸초네를 불렀는데, 그 후 C.C.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여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주연하는 ‘가방을 든 여인’(1961)이라는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푸른 파도여 언제까지나’의 원제목은 ‘이스키아 섬의 약속’. 이탈리아 남부의 유명한 휴양지 이스키아 섬에서 촬영했다. ‘태양은 가득히’(1960)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푸른 파도여 언제까지나’를 통해 칸초네라는 음악을 알게 되었다. 샹송이 특별한 음악이 아니라 프랑스어로 ‘노래’를 뜻하듯 칸초네 역시 이탈리아어로 그냥 노래라는 뜻이다. 그래서 팝송도 샹송도 이탈리아에 가면 다 칸초네가 되지만 우리는 이탈리아의 노래를 칸초네라고 부른다.
칸초네는 초기에는 주로 오 솔레미오, 산타루치아 등 나폴리 민요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나 ‘산레모 가요제’가 시작되면서 레코드회사나 악보출판사 등의 입김이 작용하여 많이 상업화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행하던 칸초네는 이 영화의 주인공 도메니코 모두뇨의 볼라레와 차오 차오 밤비나, 그리고 토니 달라라의 코메 프리마와 라 노비아, 질리올라 칭게티의 노노레타와 비, 마리사 산니아의 카사비앙카, 루치아노 타요리의 알·디·라 등 주로 산레모 가요제의 입상곡들이 많았다. 그 외에 알리다 켓리가 구슬픈 목소리로 부르는 ‘형사’라는 영화의 주제가 죽도록 사랑해서(Sinno Me Moro), 그리고 밀바, 나다 등 여러 가수가 부른 물망초, 로마여 안녕(Arrivederci Roma), 마음은 집시, 검은 고양이 네로 등과 같은 곡들이 상당히 큰 히트를 했다. 베니스에 가서 곤돌라를 타고 곤돌리에(곤돌라의 사공)에게 노래를 청하면 이들 중 몇 곡은 들을 수 있었다.
스페인음악에 대한 사랑은 몇 장의 LP에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아코디온 연주자 Charles Magnante의 Spanish Spectacular라는 판으로서 안달루시아, 라 쿰파르시타, 질투(Jalousie), 스페인 월츠, 에스파냐 카니 등은 팝송이나 샹송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필자에게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 뒤에 구한 스탠리 블랙 악단의 ‘스페인’이라는 판 역시 듣기가 매우 좋았다. 그래서 좀 더 관심을 가지다 보니 스페인음악의 진수는 기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 세고비아로, 바흐와 같은 작곡가들의 하프시코드 음악을 150곡 이상 기타곡으로 편곡하고, 빌라 로보스 등과 같은 작곡가들에게 기타곡을 작곡하도록 함으로써 레퍼토리를 늘려 기타를 연주회용 악기로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타레가의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등 수많은 기타 명곡들이 필자의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스페인음악 하면 또 플라멩코(Flamenco)를 빼놓을 수 없다. 플라멩코는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심장이라고 하는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애수가 담긴 전통 민요와 향토 무용, 그리고 플라멩코 기타 반주 세 가지가 어우러지는 이 지역 특유의 민속예술이다.
그러나 이 지역 사람들이 이를 소홀히 할 때 집시가 대신하여 전승과 발전에 힘썼기 때문에, 그 형식에는 집시적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순수한 플라멩코는 캐스터네츠를 쓰지 않고 사파테아드(구두 소리), 팔마(손뼉 치는 소리), 피트(손가락 튕기는 소리)로 구성되며, 할레오(관중이 장단에 맞추어 지르는 소리, 우리의 추임새와 비슷함)도 섞여 열광적인 광경을 전개한다.
필자는 2002년 7월 29일 집사람과 함께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후 약 한 달간 주로 유레일패스를 이용하여 스페인 여행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1992년 제25회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마라톤 우승을 했던 몬 주익 언덕의 경기장을 비롯하여 가우디가 설계하고 100년이 지나도록 건설 중인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 등을 관광했다. 다음에 도착한 도시가 그라나다였다. 음악으로만 듣던 알함브라궁전을 직접 방문하여 트레몰로로 연주되는 그 음악을 들으며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는 것은 바로 황홀, 그 자체였다. 또 저녁때는 식사 후 알함브라궁전 서쪽의 계곡 건너편에 있는 집시촌 싸크로 몬테에 가서 정열적인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본산지의 플라멩코를 감상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뒤이어 코르도바, 세비야를 두루 관광한 후 바다호스에 가서 필자가 주례를 섰고 현지에서 침구(鍼灸)학원을 하는 O씨 집에 묵으며 그들과 함께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 다음 톨레도에서 엘 그레코의 집 등을 구경하고 아랑훼스에 가서 아담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스페인왕의 여름별궁을 관광할 때에는 ‘아랑훼스협주곡’의 제2악장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왕궁, 미술관 등을 관람한 후 세계무용대회가 열리는 오렌세와 다음 대회 장소인 카나리아군도의 테네리페에 가서 나흘간에 걸쳐 세계 각국의 민속음악과 무용을 관람한 것도 쉽게 가지기 어려운 즐거운 기회였다. 아직도 활동 중인 그 섬의 화산이 인상적이었고, 나체촌이 있는 해수욕장도 정말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