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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대발 인터뷰]김경동 카이스트 교수가 말하는 세월호 사고 이후의 한국 사회

기사입력 2014-08-29 08:40

“우리 사회에 ‘end’는 있지만 ‘finish’가 없다”

-사고후 중도사퇴는 뺑소니와 같다…

-아직도 세월호 보고서가 없다는 것은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일

-‘잘 산다’개념을 제대로 이해못한 한국사회…

-말로만 하지 말고 배려의 참뜻을 실천하라

세월호 사고는 한국 사회에 가해진 치명적 충격파였다. 무고한 피해자들의 억울함, 부실하기 그지 없었던 구조구난 시스템, 선박 회사의 비리와 해경의 무능함까지, 세월호 사고는 너무나 많은 ‘망가진 것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줬고 그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허술한 실체를 절감해야만 했다. 국내 6.25 전쟁후 사회학 1세대면서 사회학의 기반을 닦는 데 기여한 김경동 카이스트 경영대학 초빙교수. 김 교수는 사회학계의 거두로서 대학 외부의 손짓에도 한 눈 팔지 않고 퇴임 때 까지 학계에 남았다는 그 나름의 모본을 보여주는 특별한 학자다.

그가 말하는 세월호 사고 이후, 지금의 한국 사회가 직면한 커다란 문제들과 그 근원에 대한 분석을 들어본다.

“사고 수습하다 말고 사퇴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아픈 기억은 얼른 지워버리자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들은 단순히 해상 교통사고였다고 치부하기도 했다. 그 사이코패스적 발언들은 세월호 사고 속에서 드러난 온갖 비리와 부실의 총체적 모습들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공동체의식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다는 걸 재발견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가족이 같은 상황에 처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냐고 그들에게 되묻는 건 의미가 없다. 이미 역지사지라는 기본적 관념을 지워버린 이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들이 날뛰는 세상,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되었나

한국 사회학의 기반을 닦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받는 김경동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돌아보며 이 사태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분명하게 밝혔다.

“세월호 사고는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층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김 교수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대처로 해경을 무조건적으로 없애고 안정 정책을 통합하는 기구를 졸속으로 만드려 한 것도 성급한 처사라고 평가했다.

“안전에 관한 기관을 만드는 건 사고에 대처하는 한 방편이기에 ‘그런 기관을 만들겠다’고 말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사고에 대한 성찰도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뭔가를 빨리 만들어 보여주려고만 하는 건 답이 아니에요. 과연 그렇게 만들어진 기관이 제대로 된 업무를 할 수 있을까요?”

그는 ‘end’는 잘하면서 ‘finish’는 안되는 습관에 젖어 있다며 완료는 잘하는데 완성도는 낮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힘 합쳐 대책 백서 만들어야 참사 되풀이되지 않는다

“백서라고 정책보고서라는 게 있는데 사고백서는 원인을 찾아내 자세히 기록해놓음으로써 비슷한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만드는 공적 보고서지요. 미국은 9·11 테러 이후 2년 동안 모든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다 참여해서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대책을 만들었던 것처럼 철저히 조사하고 대처방안을 만들어 가는데 진중한 자세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김 교수는 정부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태의 원인과 공과를 샅샅이 파헤쳐 수습대책과 재발 방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정리한 보고서가 없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거기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책임자들은 사임하는 우리나라 인사풍조는 특권에만 집착하는 것 뿐이라는 지적이다.

사의 표명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평가하는 것 같은데 옷을 벗는 건 나중이고 먼저 세월호 참사의 문제점·원인을 이 잡듯이 잡아내 꼼꼼한 대책을 수립하고 그만두는 것이 정당하다는 그의 생각이다. 부패하고 무기력한 기업·관료가 꼼짝 못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빨리 빨리’가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

김 교수는 근본을 성찰하고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는 작업을 방해하고 무조건 성과만을 찾는 ‘빨리 빨리’ 정신의 근원이 경제 개발에 대한 맹신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차원의 경제개발에 대한 로드맵은 이미 1950년대에 있었습니다. 자유당 정권 때에도 능력 있는 관료들과 전문가들이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했었어요. 그러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이어서 장면 정권도 실패하면서 준비했던 경제개발 계획은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군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군사정권으로선 정권의 정당성 확보가 중요했죠. 그 정당성 확보를 위해 경제개발을 정책 일순위로 선정했습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지향점이 경제 개발에 특화돼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성공적으로 이뤄진 건 우리에겐 일단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경제라는 것은 살아있는 동물이다. 크면 클수록 그 안엔 복합적인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까지 성장하다가 그 이후로는 성장이 주춤해진 건 경제가 복합적인 구조가 되어 다루기 어려워지고 변화가 간단치 않아졌는데 이에 대처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을 정립하지 못했기에 그런 것이다.

“기껏해야 수십 년, 세대로 치면 한 세대 동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학교를 다니고 광복과 전쟁을 겪고 산업혁명까지 다 경험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시점에 왔는데,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 행동양식, 인간관계는 그 새롭고 복합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60년대의 모습 그대로를 가져온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사람들이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에 실패한 주요 원인이라는 겁니다.”

▲사회학 1세대면서 사회학의 기반을 닦는 데 기여한 김경동 카이스트 경영대학 초빙교수(서울대 명예교수)

국가개혁운동 ‘잘 살아보세’가 실패한 이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시스템은 개선되려는 의지가 없었던 걸까? 그건 아니다. 1970년대를 상징하는 새마을운동은 대표적인 국가개혁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의 구호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잘 살아보세’였다.

“그런데 문제는, 잘 사는 게 뭐냐는 정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경제제일주의라는 말이 정책 기조 중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IMF사태를 맞아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했죠.“

김 교수는 경제제일주의라는 말을 하기 전에 ‘잘 산다’라는 넓은 개념에 대한 가치관을 보다 신중하게 정의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잘 사는 건 이런 건데 그러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가난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라는 걸로, 잘 산다라는 넓은 개념을 확립하고 공유한 다음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런 신중한 논의를 하기 전에 무조건적으로 ‘돈’이 모든 정책과 인생의 중심 목적이 된 게 문제였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소위 ‘시장경제가 부를 축적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다’라는 이론을 제시한 책 <국부론>의 저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을 내기 전에 도덕적 정서에 대한 책을 썼고 거기에서는 인간은 타인의 정서에도 관심을 가지고 동정심 같은 것으로 타인과 정서적인 공유를 하면서 다 함께 잘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연중에 공동체주의 철학이 담긴 거죠.”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당장 잘못되는 것만 막아줬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사회에서 발전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덴 성공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부나 국민이 중요시하는 가치는 여전히 장기적인 미래보다는 당장의 해결책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물질지상주의가 아직 사람들에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교육가치관이 바로 서야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경쟁에서 이겨서 출세하라고 말합니다. 출세하면 물질적 보상이 나오죠. 지금껏 우리 사회가 인생의 목표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극심한 경쟁 속에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인생은 돈과 지위가 전부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보면, 모든 이들이 이런 식으로 다 자기중심적이면 사회 자체가 성립이 안됩니다.”

타인을 생각하라, 그리고 변화를 수용하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회. 김 교수는 갈팡질팡하며 혼돈 속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한국을 그렇게 진단했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말하는 성숙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간단하게 정의내렸다.

“개인적으로는 어린이가 처음 태어나서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데 차차 자라면서 남을 의식하게 되는 게 성숙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성숙의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 보고 출세를 안 했으니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에서 학문에 전념하다 은퇴했고, 계속 강의와 연구를 할 수 있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잘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 그게 성공이라고 봅니다.”

성숙에 대한 그의 기준은 간결했다. 그만큼 성공에 대한 기준 또한 간결했다. 그러나 그 간결함이야말로 한 사회학자가 70여 년의 오랜 생애에서 체험하고 연구하여 얻어낸 커다란 교훈이기도 했다.

“은퇴하고 나서 학교폭력 방지위원으로 사회공헌을 하면 어때요. 어떤 사람은 교장 선생님 하다가 경비원 하기도 하고 그러죠. 거기서 즐거움과 보람이 있다면 행복 아닙니까?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 저도 계속 일을 하며 살 겁니다. 나와 가족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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