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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이끄는 노년 아닌, 노인이 주도하는 삶 돼야”

입력 2026-10-2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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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 “현장 수용성·인간 존엄 담은 배려기술 필요”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에서 청중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디지털 전환과 AI 기반 혁신’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돌봄 현장의 수용성을 높이고 노인의 자율성과 존엄을 지키는 인간 중심의 기술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이준호 기자)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에서 청중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디지털 전환과 AI 기반 혁신’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돌봄 현장의 수용성을 높이고 노인의 자율성과 존엄을 지키는 인간 중심의 기술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이준호 기자)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노인 돌봄의 구원투수로 불리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쓸 만한 기술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초고령사회 돌봄의 해법은 화려한 첨단 기술 자체가 아니라, 노인의 일상에 스며드는 ‘인간 중심의 배려’에 있다는 학계의 자성과 제언이 나왔다.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는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디지털 전환과 AI 기반 혁신’을 주제로 2026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노년학회, 한국노화학회, 대한노인병학회, 대한노인정신의학회, 한국노인간호학회, 한국장기요양학회 등 6개 회원학회가 총출동해 통합돌봄 시대의 AI 활용법을 모색했다.

조은희 연합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이제 고령화는 단순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넘어 의료와 돌봄, 복지와 지역사회 전반에 새로운 과제와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며 “AI와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노인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연결하고 보다 인간 중심적이고 지속가능한 의료·돌봄체계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라고 화두를 던졌다.

▲가혁 인천은혜요양병원 원장이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에서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가혁 인천은혜요양병원 원장이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에서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현장 모르는 기술은 ‘짐’… 돌봄 잇는 기술 돼야

이날 전문가들은 개발자 중심의 설익은 기술이 돌봄 현장에 오히려 피로감을 안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조강연에 나선 임재영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병원 퇴원 후 요양시설이나 가정으로 이어지는 전환기의 ‘정보 단절’을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며,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로 추진 중인 노쇠 고령자 통합돌봄 플랫폼 ‘케어넷(CARE-net)’을 소개했다. 임 교수는 기술을 통해 돌보는 사람을 돕고, 돌봄 필요를 줄이며, 의료와 복지를 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현장의 디지털 장벽을 짚었다. 그는 “평창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앱 기반 근감소증 중재를 진행했는데, 데이터 사용법을 모르던 어르신에게 수십만 원의 요금 폭탄이 나와 연구팀이 물어드린 적이 있다”며 “와이파이 환경 같은 현실적 문제부터 수가 보상체계, 인간의 존엄성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패널토의에서도 현장 수용성에 대한 쓴소리가 이어졌다. 이혜진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누만 칠해주거나 헹궈주기만 하는 세탁기를 누가 쓰겠느냐”고 반문하며 “도입 후 기기 관리 인력을 더 뽑아야 하거나, 대응할 인력이 없는데 알람만 울려대 ‘경보 피로도’만 높이는 기술은 현장에서 버려진다”고 지적했다.

직접 요양병원에 스마트 기저귀와 레이더 낙상 감지기를 도입해 본 가혁 인천은혜요양병원 원장의 경험담은 청중의 공감을 샀다. 가 원장은 “처음에 전자동 체위변경 매트리스를 도입하며 이제 일 안 해도 되겠다고 환호했지만, 결국 섬세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 실패했다”며 “이후 간병인들의 요구에 맞춰 필요할 때 버튼으로 조작하고 쿠션을 끼워 넣는 수동형 에어매트리스로 바꾸자 현장 만족도가 크게 올랐다. 무조건적인 자동화가 아니라 현장의 업무 흐름을 돕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이 인간의 온기를 대체해선 안 된다는 원칙도 재확인됐다. 이동영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 노인에게 낯선 로봇이나 알람 소리는 피해망상이나 극심한 불안을 부를 수 있다”며 “키오스크나 AI는 어르신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이어야지, ‘휴먼 터치’를 대체하려 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경희 연세대 간호대학 교수 역시 “우리가 지향할 미래는 AI가 더 많은 돌봄을 하는 사회가 아니라, AI를 활용해 사람이 더 나은 돌봄을 제공하는 사회”라고 짚었고, 김홍수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통합의 단위는 기관이 아닌 ‘노인의 삶의 궤적’이어야 하며, 돌봄 기술의 평가에서 노인의 자율성과 ‘존엄’은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기초의학계와 정부 측에서는 ‘돌봄 진입 시점 자체를 늦추는 선제적 예방’에 방점을 찍었다. 박태준 아주대 의과대학 학장은 “75세 이상 고령자 조직의 상당수는 완전히 늙은 세포가 아니라 잠자고 있는 ‘중간 노화세포(mid-old cell)’”라며 “이 세포를 다시 일하게 자극하고 AI로 노화 전환점을 조기 예측하면 독립적인 삶의 기간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원호 국립보건연구원 만성질환융복합연구부장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격차(약 13년)로 인한 연간 약 81조 원의 사회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청주 오송에 ‘국립건강노화연구소’ 설립을 추진 중”이라며 의생명과학과 사회과학을 융합한 국가 R&D 컨트롤타워 구축 계획을 밝혔다.

▲이윤환 한국노년학회장이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에서 한국노년학회 심포지엄 개회사를 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이윤환 한국노년학회장이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에서 한국노년학회 심포지엄 개회사를 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장일영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겸임교수(더힐병원 수석원장)가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에서 ‘역노화 솔루션’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장 교수는 자신답게 활기차게 살아가는 ‘기쁨수명(Joyspan)’을 제안하며 영양 섭취와 운동을 통한 회복 전략을 강조했다.(이준호 기자)
▲장일영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겸임교수(더힐병원 수석원장)가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에서 ‘역노화 솔루션’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장 교수는 자신답게 활기차게 살아가는 ‘기쁨수명(Joyspan)’을 제안하며 영양 섭취와 운동을 통한 회복 전략을 강조했다.(이준호 기자)

디지털 격차 해소부터 역노화 전략까지 다뤄져

오후에는 6개 회원학회가 각기 분과 심포지엄을 열고 논의를 구체화했다.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노년학회 심포지엄에서 이윤환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노인층의 디지털 소외 문제를 짚었다. 이 회장은 “최근 조사들을 보면 어르신들도 앞으로 생성형 AI 등 다양한 서비스를 활용하고 싶다는 긍정적 응답이 굉장히 많지만, 다른 디지털 취약계층과 비교해도 노인의 AI·디지털 경험이 가장 낮아 갈 길이 한참 남아 있다”며 “이번 학술대회에서 한 단계 더 깊이 대책을 세워, AI가 이끄는 노년의 삶이 아니라 노년이 AI를 이용해 더 적극적인 삶을 이루도록 학회가 기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진 특별강연에서는 장일영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겸임교수(더힐병원 수석원장)가 ‘역노화 솔루션’을 주제로 강단에 섰다. 장 교수는 단순히 오래 사는 생존수명이나 무병장수를 뜻하는 건강수명을 넘어, 내가 나로서 가장 반짝이며 활동하는 ‘기쁨수명(Joyspan)’을 제안했다. 그는 “검진상 질병이 없는데도 늘 피로하고 몸이 무너지는 것은 세포 재생을 위한 ‘잉여에너지’와 체내에 저장되지 않는 ‘단백질 항상성’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라며 “이미 기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운동만 늘리면 오히려 독이 된다. 끼니마다 단백질을 채워 잉여에너지를 충전한 뒤 운동으로 넘어가는 ‘초과회복’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정근 강남대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은 한국노년학회 기획세션에서는 AI 돌봄이 일상에 파고들며 마주할 법적·심리적·지역적 과제를 집중 조명했다. 변웅재 강남대 특임교수(변호사)는 돌봄 AI나 노인을 대리하는 에이전틱 AI 활용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구 탓인가’를 따지는 소모적 공방을 넘어 리스크를 사전에 예측·분담하는 제도 설계가 시급하다고 짚었고, 고정은 경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독거노인용 대화형 반려로봇 개발 경험을 토대로 AI가 어르신의 생애 기억을 보존하고 인간 상담자가 의미 재구성을 돕는 ‘기억-의미 분업’ 모델과 정서적 안전장치를 제안했다. 또 김수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삶의질정책연구센터장은 인프라가 취약한 농촌의 AI 돌봄은 대면 서비스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흩어진 수요와 지역의 제한된 자원을 잇는 연결고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표 후에는 윤민석 서울연구원 약자동행연구센터장, 조원지 전북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박혜미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패널로 나서 종합토론을 벌였다.

동시에 진행된 나머지 5개 회원학회 심포지엄에서도 ▲한국노화학회의 세포 리모델링 및 만성질환 노화 기전 ▲대한노인병학회의 10분 노인포괄평가(DEEP IN)와 재택의료 임상 효과 ▲대한노인정신의학회의 치매 디지털 바이오마커와 인지중재치료 ▲한국노인간호학회의 스마트홈 기반 돌봄 공백 해소와 노쇠 파운데이션 모델 ▲한국장기요양학회의 피지컬 AI 전략과 요양시설 돌봄로봇 도입 실태 등 기초 연구부터 돌봄 현장을 아우르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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