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건축비 폭등에 신규 개발 ‘스톱’
입주율 90% 육박, 신규는 0.4% 증가
7월 들어 우량시설 인수 발표 잇따라

미국 고령자 주거시설 시장에 지각변동이 나타나고 있다. 고령화로 입주 수요는 빠르게 늘지만 신규 공급은 정체되고 있다. 자금 조달 비용과 건축비 상승으로 신축이 지연되자 투자사들은 새 시설을 짓는 대신 운영 중인 우량시설을 인수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인 고령자 주거·돌봄 투자센터(NIC)가 지난달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주요 31개 시장의 고령자 주거시설 평균 입주율은 올해 2분기 89.9%를 기록했다. 1분기보다 0.4%포인트 올라 20분기 연속 상승했다.
미국에서 ‘시니어하우징’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고령자 주거시설을 뜻한다. 이와 유사한 ‘시니어리빙’은 주거에 식사, 청소, 건강관리, 돌봄, 여가활동 등을 결합한 고령자 주거·생활서비스 시설을 가리키는 넓은 개념이다. 여기에는 비교적 건강한 고령자를 위한 독립생활형 주거, 식사와 청소·목욕·복약관리 등을 지원하는 생활지원형 주거, 치매 환자를 위한 기억장애 돌봄시설 등이 포함된다.
이는 24시간 간호와 의료적 관리가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간호시설, 즉 요양원과는 성격이 다르다. 최근 거래되고 있는 시설들은 독립생활과 일상생활 지원, 치매 돌봄 등을 제공하는 고령자 주거시설이다.
20분기 연속 입주율 고공행진
NIC 자료를 보면 조사 대상 31개 시장 중 15곳의 입주율이 90%에 도달했거나 이를 넘어섰다. 입주 가구 수도 올해 1분기 63만5962가구에서 2분기 63만9650가구로 약 3700가구 늘었다.
반면 전체 공급량은 전년보다 0.4% 증가하는 데 그쳤고, 건설 중인 물량도 1만6000가구를 밑돌았다. NIC는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말 입주율이 9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신규 개발이 지연되는 원인은 수요 부족이 아니라 자금 문제다. NIC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높은 인건비와 건축자재 가격, 부동산 가치와 자금 조달 여건의 불확실성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올해 1분기 건설 중인 물량은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줄었다.
공급 부족과 입주율 상승은 투자자들의 기대에도 반영됐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평가·자문업체 BBG가 지난 3월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7% 이상은 올해 시장을 긍정적이거나 다소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응답자의 76% 이상은 활동적인 고령자를 위한 주거시설과 독립생활형·생활지원형 주거의 자본환원율이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부동산 가치 상승과 자산 확보 경쟁 심화를 의미한다. 모든 시설 유형의 임대료 상승을 예상한 응답자도 90%를 넘었고, 60% 이상은 2026년 수익성 개선을 전망했다.
운영업계도 신규 건설보다 인수·합병과 위탁운영 계약으로 규모를 키우고 있다. 미국 시니어산업협회 아르젠텀이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최대 고령자 주거·생활서비스 운영사 브룩데일 시니어리빙은 584개 단지, 4만7085가구를 운영 중이다.
고령자 주거시설 전문 운영사 디스커버리 시니어리빙은 414개 단지, 4만6074가구로 2위를 기록했다. 운영 가구 수는 전년보다 1만2382가구 늘어 조사 대상 기업 중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아르젠텀은 운영사들의 성장이 신규 건설보다 인수·합병과 자산 거래, 위탁운영 계약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거래도 이어지고 있다. 브룩데일은 지난달 16일 텍사스주 휴스턴의 ‘브룩데일 갤러리아’를 2340만 달러(약 340억 원)에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독립생활형과 생활지원형 주거로 구성된 244가구 규모의 고층 시설이다. 브룩데일은 그동안 이 시설을 위탁 운영해 왔으나 이번 거래로 소유권까지 확보했다.
지난달 30일에는 미국 부동산 투자사 레인지 에쿼티 매니지먼트 등이 플로리다주 팜비치카운티의 ‘하버체이스 오브 보인턴비치’를 인수했다. 생활지원형 주거와 기억장애 돌봄시설 135가구로 구성됐으며 거래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투자사들은 고령인구 증가와 높은 소득 수준, 제한적인 신규 건설을 인수 배경으로 제시했다. 운영은 기존 고령자 주거시설 운영사 하버 리타이어먼트 어소시에이츠가 계속 맡는다.
우량 자산 매입 선호… 투자사 ‘큰손’ 역할
미국 대형 헬스케어 부동산 투자회사 웰타워도 기존 시설을 중심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올해 2분기 30건, 총 62억 달러(약 9조 원) 규모의 인수 거래를 진행했으며, 올해 완료했거나 계약한 거래는 155억 달러(약 22조5000억 원)에 달했다.
웰타워는 자체 데이터 분석 플랫폼으로 인수 후보 시설의 입지와 수요, 운영성과를 분석해 통상 수개월이 걸리던 검토 기간을 45∼60일로 줄였다고 밝혔다. 인수 후에는 종이 문서와 반복 행정업무를 줄이는 운영체계를 적용해 수익성과 효율을 높인다.
웰타워의 고령자 주거시설 운영 포트폴리오 전체 입주율은 올해 2분기 87.6%를 기록했다. 동일 시설 기준 입주율은 89.4%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3%포인트 상승했다. 동일 시설 기준 입주 가구당 월평균 매출은 6059달러(약 879만 원)로 전년 같은 기간의 5758달러(약 835만 원)보다 늘었다.
미국 헬스케어 부동산 투자회사 벤타스도 지난달 29일 발표한 실적자료에서 올해 2분기 고령자 주거시설을 중심으로 22억 달러(약 3조1900억 원)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올해 누적 투자액은 34억 달러(약 4조9300억 원)다. 거래 대상이 늘자 올해 투자 목표도 30억 달러(약 4조3500억 원)에서 45억 달러(약 6조5300억 원)로 높였다.
투자회사와 전문 운영회사가 역할을 나누는 방식도 확산하고 있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신생 고령자 주거시설 전문 투자회사 헬스 웨이브 파트너스는 지난달 14일 플로리다주 웰링턴의 ‘알라마 시니어리빙’을 인수했다. 생활지원형 주거와 기억장애 돌봄시설 134가구로 구성된 고급 시설이며 거래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헬스 웨이브는 맥쿼리자산운용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고령자 주거시설에 투자하고 있다. 운영은 기존 전문 운영회사 에이지웰 시니어리빙이 계속 맡는다.
헬스 웨이브는 지난해 12월 캘리포니아주 샌타애나의 ‘클리어워터 앳 노스 터스틴’을 첫 투자 자산으로 인수한 데 이어, 올해 3월 콜로라도주 파커의 ‘모닝스타 시니어리빙 오브 파커’를 인수하며 투자 지역을 확대했다. 인구·경제 여건이 우수한 시장의 고품질 시설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확대가 곧 신규 건설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높은 건축비와 금융비용 탓에 투자사들은 개발 위험을 부담하기보다 운영 중인 시설을 인수해 개보수하고 입주율을 높이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도시 입주율이 계속 오르고 인수 경쟁이 치열해지면 신규 개발은 땅값과 건축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도시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NIC는 개발업체들이 고령자 주거 수요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은 중소 규모 시장을 새로운 사업 지역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 고령자 주거시설 시장은 수요 확대와 공급 정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국면이다. 입주율 상승과 임대료 인상 전망은 투자 매력을 높이지만, 자금 조달 문제로 신축이 막히면 고령자의 주거 선택지가 줄고 가족의 주거·돌봄 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