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전남 나주시 노안면 시골에 사는 박순금

햇볕은 쨍쨍 내리쬐고, 공기는 후끈 달아오른 여름 한낮이다. 초목은 아랑곳없이 새파랗다. 초록을 뒤집어쓴 들판과 과수원들. 아스라이 먼 곳엔 하늘과 산이 맞닿아 뿜는 푸른빛. 청명한 농촌이다. 목가적인 시골이다. 광주광역시에 살았던 박순금(61, ‘봄봄식품’ 대표)이 고즈넉하고 아늑한 나주의 농촌에 들어온 건 요양을 위해서였다.
그는 도시에서 얻은 신장암 수술을 마치고 2013년에 고향인 이곳으로 이주했다. 시골에서 순수한 식재료들을 거두어 만든 음식으로 몸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귀농을 추동했다. 아내를 소리 없이 섬기는 데 이골이 난 남편 마규종(66)과 함께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원했던 걸 얻었다. 건강을 완연하게 회복했다. 마음 한 자락은 자연에 걸쳐놓은 채 바지런히 농사짓고, 건강에 좋은 음식 생활을 철저하게 지속한 덕분이다.
그런데 박순금은 때로 된장 항아리를 끌어안고 운단다. 이건 항아리를 얼싸안고 블루스를 추는 것보다야 덜 야릇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이유가 뭘까. 손수 지극한 정성으로 담근 된장의 경이로운 풍미에 감격해서 우나? 아니면 정반대로 된장 맛이 영 변변찮은 나머지 배신감을 느껴서? 아니다. 그는 어쩌다 보니 장류업체 사장으로 바뀌어 현재 4년째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지경으로 도무지 매출이 오르지 않아 속이 터지다 못해 일쑤 된장 항아리에 눈물을 뿌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출 하나에만 진정으로 연연하는 것 같진 않다. 생계 방편으로 꾸린 사업도 아니다. 그는 충분히 먹고살 만하다. 전기 관련 사업을 하는 남편이 벌어들인 게 이미 충분하다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벼랑길에 몰린 사람처럼 때로 주체 못 할 슬픈 감정에 사로잡히다니. 까닭이 있다.

“재래식 된장은 최상의 건강식품이다. 발효 과학이 집대성된 전통 유산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흔히 전통 된장을 외면한다. 날로 수요가 줄고 있다. 나주시 관내만 해도 폐업한 전통 된장 업체가 여럿이다.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본다.”
박순금은 심혈을 기울여 된장 사업에 전념했다. 열악한 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울러 자신의 사업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통 된장 자체가 처한 난국을 타개하는 데 일조하기 위해 진력했다. 그의 이름처럼 ‘순금’에 가까울 만치 빼어난 된장을 생산하고자 하품 한 번 할 겨를 없이 부지런히 뛰었다. 눈을 가리고 미친 듯이 트랙을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말이다. 그러나 돌파하기 어려운 허들을 실감하고 번번이 상심을 달래야 했다.
“공장에서 나오는 양조 된장의 위세를 전통 된장이 따라잡을 길이 사실상 전무하다. 달걀로 바위 치기와 닮은 형국이랄까. 밀가루를 섞고 인공 균주를 써 단기간에 대량생산하는 양조 된장과 콩하고 천일염만으로 자연 발효시켜 깊은 풍미를 내는 전통 된장의 클래스 차이는 자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값싼 양조 된장에 쏠려 있다. 어리거나 젊은 층은 물론 40~50대마저 양조 된장에 길들여져 토종 된장의 미래가 어둡다. 그러니 슬프지 아니할 수 있겠나.”

저물어가는 전통 된장의 황혼이 애석해 된장 사업에 뛰어들었나?
“그렇진 않다. 토종 된장이 사양길에 몰린 건 사업 착수 이후에 알았다. 난 자연이 베푼 빗물과 햇빛만 먹고 자라는 무농약 농작물을 가꾸어 유익한 섭생을 하고자 시골에 왔다. 암을 극복했지만 여전히 잔존하는 후유증을 평생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식탁에 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작물을 다년간 재배했다. 특히 역점을 둔 건 콩이었다. 무엇보다 재래식 된장이 몸에 좋다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콩 농사에 집중해 된장을 만들어 먹었던 거다. 나와 가족이 먹고 남은 건 주변 친지들에게 나누어줬다. 그런데 된장 맛을 본 모든 이들로부터 칭찬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아이고, 이 맛있는 된장을 거저 얻어먹을 순 없지. 아예 된장 사업을 해 돈 내고 사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어떤가?’ 지인들의 권고가 된장 사업에 나선 계기였다.”
맛있는 된장을 만드는 비결이 있겠지?
“공정에 충실하고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 생산 농가마다 좋은 된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은 메주를 가마솥에 발효시키는 식의 속성 방법을 구사한다. 이렇게 되면 곰팡이가 발생할 수 있다. 난 철저하게 전통 기술을 적용하거나 과학적인 보강을 해 된장을 완성한다. 친정의 보물인 ‘씨간장’을 재료로 써서 감칠맛의 극대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요즘 판매하는 된장은 5년간 숙성된 것들이다. 충분한 숙성, 역시 풍미를 결정짓는 관건이다.”
매출 부진을 깰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없다!(웃음) 암담하단 얘기다. 훗날엔 전통 된장이 골동품 같은 유물로 남을까 봐 근심이 많다. 소비자들이 왜 그토록 양조 된장에 쏠려 있는지, 난 정말 그게 야속하다.”
소비자는 현명하다. 좋은 상품은 결국 사랑받게 마련이다. 너무 비관하는 건 아닌가?
“내가 과도한 걱정을 하는 걸까? 문제의 핵심은 마케팅에 둔감하다는 점에 있을지도. 최근엔 서광 같은 게 비치긴 한다. 미국과 독일 등 해외 바이어들이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 프랑스 바이어는 미쉐린 식당 셰프들에게 우리 회사 된장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선적될 예정이다.”

자청한 일은 기어이 완수하는 성격
운이 열리는 조짐일까. K-푸드 열풍의 효과 한 오라기가 박순금에게 솔솔 불어오는 걸까?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된장에 몸과 생각은 물론 영혼까지 팔린 그는 토종 된장의 침체가 자신의 탓인 양 사기 저하돼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장독을 붙들고 닭똥 같은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리는 ‘행사’를 멈출 의사가 아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일면일 뿐이다. 박순금의 기본적인 태도는 밝고 명랑하다. 안경 너머의 눈빛은 생기로 반짝거린다. 내면의 그 어떤 부위도 구겨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인상이다. 안도할 만한 시골 생활에 이른 사람다운 여유도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귀농 목표였던 ‘몸 살리기’의 과업을 이미 완수한 게 아닌가. 요즘 그의 건강은 요상하게도 젊은 날의 상태로 돌아갔다고 한다. 된장 사업 부진으로 끙끙 골머리를 앓지만, 이는 은근하고도 집요한 야심을 가진 자 특유의 투철한 고민과 모색의 징표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요컨대 그는 잘 살고 있다. 게다가 “된장 일이 너무도 재미있다”고 하니 여기서 무엇이 더 부족하랴.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잠을 잔다. 그래도 탈 난 게 없다. 날마다 새벽이면 설레어 일어난다. 콩밭으로, 된장독 늘어선 마당으로, 구수한 향기가 고인 메주 발효실로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 풍경은 어느 하루도 똑같은 게 없어 즐겁다. 콩이 날마다 성장하고, 된장이 익어가고, 새들이 노래하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완전 최고다. 60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직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희열 역시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아! 감사하게도 삶이 기적이구나!’ 자주 드는 생각이 그렇다.”
남들과 구별되는 당신의 성격적 특징이 있다면?
“내가 유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왈가닥이다.(웃음) 불도저 같은 성격을 가진 여자다. 스스로 청한 일은 기어이 해낸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한 말이 있다. ‘너희 엄마는 무서운 여자야. 한번 한다 하면 끝까지 가거든. 배워라!’ 나의 본성에 맞춰 사는 삶, 즉 밝고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데에 행복의 길이 열리겠지 싶다. 시골에 와서 도시에서보다 한결 본성에 걸맞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만족감도 크다.”
된장 일은 혼자 다하나? 만만한 일이 아닐 텐데.
“내가 주도하는 사업이지만 남편이 도와주기도 한다. 그는 고맙게도 자금을 지원해줬다. 노동력도 보탠다. 배달도 전담한다. 본인 사업만으로도 경황없이 바쁘지만 아내를 군소리 없이 섬세하게 보살핀다.”

부부의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셈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평생 호미자루 한 번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남편은 농사에 서툴다. 초기엔 땅을 파다가 삽자루만 여러 개 부러뜨렸다. 낫을 간다고 갈았어도 처음 상태보다 오히려 낫날이 더 무뎌지곤 했다.(웃음) 성격도 서로 다르다. 가령 난 감정 표현에 적극적이지만 그는 말수가 드물다. 도무지 아기자기한 맛이 없어 내가 종알종알 불만을 터뜨려도 입을 꾹 닫고 만다. 대범한 사람이다. 편협한 나에 비해 속이 깊다.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된장 사업을 유지하며 자나 깨나 고민하는 나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노골적으로 한 적이 없다.”
견결한 부부애로 산다
아내가 하는 일을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 그저 건강을 해치지 않길 바라는 남자. 박순금이 그리는 남편의 초상이 그렇다. 그러고 보면 견결한 부부애로 살아가는 커플이다. 신장암에 걸려 맞닥뜨린 고비를 넘긴 것도 남편의 조력 덕분이었다. 수술에 네 차례 실패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던 한때,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나주의 명산 금성산 꼭대기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오르내렸다. 그건 박순금을 회생시키는 디딤돌이 됐다.
좋은 삶이란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
“난 크리스천이다. 하나님에게 순명하는 삶이 가장 좋은 거라고 본다. 나이 들어서도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뛰는 것 역시 아름다운 삶이란 생각이다. 든든한 가족애를 가지고 화목하게 사는 것 또한 행복의 원천일 테고. 난 광주에 사는 두 여동생을 이 시골에 불러들여 여생을 함께하고 싶다. 그런데 동생들이 한 말이 있다. ‘오메, 너무 큰일을 벌여부렀어. 언니는 그거 아는가, 모르는가?’(웃음) 된장 사업의 부진을 꼭 짚어 화살을 날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이 없는 언니임을 알면서도 괜한 걱정을 한다.”

인생의 묘미는 이 길이 막히면 저 길로 바꾸는 데에도 있다. 된장 일보다 더 흥미로운 일을 찾아 도전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계획은 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캠핑카 타고 여행하며 자유를 구가하는 나날에 관한 꿈. 그걸 이루어 남편에게 보답하고 싶다. 그러나 그건 된장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은 다음의 일이다.”
박순금은 치열한 레이서. 특유의 ‘불도저 기질’을 가일층 발동해 사업의 산정에 오르고 싶다. 된장독을 붙잡고 눈물을 흘려야 할 일이 거듭될지라도.
박순금이 주는 귀농귀촌 Tip•귀농해서 정착하기까진 시련과 시행착오가 통과의례처럼 이어진다. 심각하게 고민하고 신중하게 판단해 귀농하자. 난 귀농을 일단 만류하는 축에 속한다. 특히 농산물 가공판매 분야에 뛰어드는 건 쌍수를 들어 반대한다.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사견이다.•귀농이든 귀촌이든 맘에 드는 곳이 있더라도 한 달 정도는 미리 살아본 뒤 결정하라. 해당 지역의 물정부터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특정 종교를 믿는 주민들이 대다수인 마을로 이주했다간 소외될 수 있다.
•농지 매입을 똑똑하게 하고 싶으면 미리 동네 사람들과 교류해 조언을 얻는 게 좋다. 뭘 모른 채 시세보다 싼 땅이 나왔다고 덜컥 샀다간 곤욕을 치룰 수 있으니까. 가령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땅 밑에 잡목 따위가 무수히 매립된 매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땅엔 쇠꼬챙이를 꽂아도 들어가지 않는다.
•은퇴한 시니어 부부라면 귀농보다 귀촌을 선택하는 게 상책이다. 검소한 살림으로 월 생활비를 150만 원 수준까지 줄일 수 있는 게 귀촌이다. 부족한 부분은 이웃의 농사를 거드는 알바로 보충하면 된다. 적당한 알바는 재미있고, 건강에 유익하다. 주민들과 순식간에 친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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