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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나

입력 2026-03-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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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달갑지 않은 주제였다. 동양에서는 죽음을 말하는 것 자체를 금기로 여겨왔다. 건물의 4층을 ‘F’로 표기하는 문화에서 그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서양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긴 했지만, 죽음은 여전히 쉽게 꺼내기 어려운 화제였다.

하지만 최근 ‘죽음’은 그 자체보다 ‘웰다잉(Well-dying)’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웰빙, 웰리빙, 웰에이징으로 이어지며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화두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4년 말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의 현실 역시 이러한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왜 21세기에 ‘웰다잉’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살기보다 죽기가 어려운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죽기보다 살기가 어려운 시대였으나, 이제는 의술의 발달로 완전한 회복은 어렵더라도 생명 자체는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의료 현장에서는 죽음을 삶의 한 과정이라기보다 의술의 실패로 인식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그 결과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따라서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평소 웰다잉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영문학을 전공한 교수지만, 지난 9년간 대학교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이 강의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개인적 경험과 교육 현장의 요청이 함께 작용했다. 2007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친정어머니를 집 가까이에서 15년간 모시며 지켜본 시간은 내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김일성교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어머니는 적극적이고 강인한 분이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점점 약해져갔다. 그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죽음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도 뚜렷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죽음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 없는 대상이었고, 죽었다가 다시 돌아와 속 시원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계기는 학생들이었다. ‘자기계발 세미나’라는 강의는 늘 인기 강좌였는데, 학생들은 공통된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강의를 들을 때는 시간 관리나 인간관계 관리가 잘 되는데, 혼자서는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계발 세미나 II’를 개설해달라고 요청했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처음 몇 달은 금방 인생이 달라질 것 같지만, 결국 흐지부지된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강의를 만들면서도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혼자서도 꾸준히 자기계발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성공보다 성장을 지향하며 살 수 있을까’, ‘남과 비교하다가 지쳐버리는 성공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지치지 않고 1㎜씩 성장할 수는 없을까’ 등 이러한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하던 끝에,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목표가 분명하면 그 달성 방법도 구체적이고 선명해지듯,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삶의 태도 역시 달라질 거라고 믿게 됐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철학과 교수와 ‘삶과 죽음’이라는 강의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20대 대학생들이 죽음에 관심을 가질지 미심쩍어 폐강을 각오하며 설강했다. 그러나 첫 학기부터 강의는 정원을 채웠다. 당시 우리 사회는 OECD 국가 중 오랫동안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나 군대에서 친구의 자살이나 자살 시도를 직접 경험한 학생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강의는 어느덧 9년째 이어지고 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따라서 죽음 준비는 크게 형식적 준비와 삶의 태도 변화로 나눌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유언장, 장기 기증서 작성, 장례와 노후 요양 계획 같은 형식적 준비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 변화다.

미국에서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공동묘지 안팎에서 노트북을 떨어뜨렸을 때 묘지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묘지 밖에 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트북을 주워주었다고 한다. 죽음을 의식하면 공감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덜 중요한 것을 내려놓고, 좀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삶과 죽음’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처음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던 학생들이 강의가 끝날 즈음에는 죽음을 생각해보는 일이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드리겠다고, ‘지금 여기서(Here and Now)’의 시간을 더 아끼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 강의를 계속하는 이유 역시, 죽음에 대한 사유가 자신의 삶을 더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흔히 과거는 부도난 수표, 미래는 불확실한 어음, 현재는 현금에 비유된다. 결국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지나간 어제도 오지 않은 내일도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다. ‘지금 여기에서’ 하루하루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답이며 모든 시니어들과 나누고 싶은 최선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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