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치매머니 154조’라는 표현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수치는 단순한 자산 규모를 넘어선다. 판단능력이 저하되는 순간, 재산은 분명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활용할 수 없는 ‘동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자산의 약 74%가 부동산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은 이 문제의 구조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공공신탁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수탁자가 돼 자산을 관리하고, 의료비·요양비·생활비 등 필수 지출을 대신 집행하는 구조다.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재산 보호 장치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의는 분명하다.
여전한 제도적 한계
첫째, 대상의 제한성이다. 현재 공공신탁은 기초연금 수급권자 등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으며, 시범사업 형태로 제한된 인원에게 적용하고 있다.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이 저하된 고령자의 자산 규모가 154조 원에 이르는 현실을 고려하면, 제도가 포괄할 수 있는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둘째, 개입 시점의 문제다. 공공신탁은 상당 부분 판단능력 저하 이후에 작동하는 구조다. 이 경우 자산의 사용 방식이나 분배 구조를 당사자가 충분히 설계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철학과 의지가 반영된 ‘자기결정’보다는 제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후 대행’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셋째, 자산 구조와의 괴리다. 치매머니의 약 74%가 부동산이다. 결국 자산관리의 핵심은 부동산의 활용과 전환에 있다. 그러나 공공신탁은 제도 설계상 현금성 자산 중심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거나 처분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이로 인해 상당한 자산이 실제 관리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간신탁 활용 필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금융권에서는 ‘치매안심신탁’과 같은 민간신탁이 활용되고 있다. 민간신탁은 건강할 때 은행 등 금융기관과 계약을 체결해 두고, 이후 판단능력이 저하되더라도 사전에 정한 조건에 따라 자산이 관리·지급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매월 일정 금액을 생활비로 지급하거나, 간병비·의료비를 증빙에 따라 집행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나아가 사후에는 잔여 재산을 특정 수익자에게 분할 지급하도록 설계할 수 있어, 상속 계획까지 함께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부동산 활용 측면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민간신탁은 부동산을 신탁재산으로 편입할 수 있으며, 필요 시 원하는 시점에 처분해 현금화하고 이를 간병비나 생활비로 사용하는 구조를 사전에 설계할 수 있다. 단순한 자산 보관을 넘어 ‘사용 흐름’까지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공신탁과 민간신탁은 상호보완적 관계
결국 공공신탁과 민간신탁은 대체 관계라기보다 역할이 다른 제도다. 공공신탁이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최소한의 보호 기능을 담당한다면, 민간신탁은 개인의 의사를 반영해 자산 활용을 능동적으로 설계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제도를 상호 보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탁은 더 이상 일부 자산가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초고령사회에서 자산관리의 기준 역시 바뀌고 있다. 얼마나 남기느냐가 아니라, 내 자산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끝까지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가가 핵심이다. 이 질문에 대한 준비는 이제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한 노후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필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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