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성인 가족돌봄 제공자 5900만 명… 연간 495억 시간 돌봐

미국에서 가족이 무급으로 맡고 있는 돌봄의 경제적 가치가 1조100억 달러(약 1532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고령자와 장애 성인을 돌보는 가족의 역할이 미국 내 공적 돌봄 재정 규모를 넘어서는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은퇴자단체(AARP) 산하 공공정책연구소가 지난 26일 발간한 ‘헤아리기 어려운 돌봄의 가치(Valuing the Invaluable) 2026’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성인 가족, 이웃, 친구 등을 돌본 미국의 가족돌봄 제공자는 5900만 명으로 추산됐다. 이들이 제공한 돌봄 시간은 연간 495억 시간이며, 시간당 평균 가치를 20.41달러(약 3만1000 원)로 환산한 전체 경제적 가치는 1조100억 달러(약 1532조 원)에 달했다.
보고서는 이 규모가 2024년 미국의 연방·주·지방정부의 공공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이드 지출 9317억 달러(약 1414조 원)보다 많고, 민간기업의 전체 의료비 지출 9674억 달러(약 1468조 원)도 웃도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요양서비스 및 급성기 이후 돌봄 지출 5637억 달러(약 855조 원), 본인부담 의료비 5566억 달러(약 844조 원)와 비교해도 거의 두 배에 이른다. 가족돌봄이 사실상 거대한 ‘보이지 않는 복지 재정’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돌봄의 양뿐 아니라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가족돌봄 제공자의 57%는 수행 업무와 투입 시간을 기준으로 ‘고강도 돌봄’을 하고 있었고, 55%는 원래 의료진이 맡던 의료·간호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가족돌봄에 쓰는 시간은 평균 주 27시간으로 집계됐다.
495억 시간이라는 규모는 풀타임 노동자 2380만 명이 1년 내내 일한 것과 맞먹는다. 미국 전체 풀타임 노동자의 약 17%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보고서는 미국 성인들이 가족돌봄에 쓰는 시간이 청소와 음식 준비에 들이는 시간과 비슷하고, 종교·자원봉사 활동에 쓰는 시간보다는 훨씬 많다고 짚었다.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전보다 정교해진 산정 방식이다. 단순히 최저임금이나 돌봄노동 임금을 일괄 적용하는 대신, 식사 준비·이동 지원 같은 일상생활 지원, 목욕·옷 입기 같은 신체 수발, 주사·도뇨 관리 등 의료·간호 보조 업무를 나눠 각각 다른 가치로 계산했다. 그 결과 2021년 6000억 달러에서 2024년 1조100억 달러로 크게 뛰었다. 보고서는 이 증가가 돌봄 제공자 수 급증 때문이라기보다 돌봄 시간이 늘고, 재가돌봄 비용과 돌봄 인건비가 상승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월 단위로 계속 돌봄을 제공한 인원은 3700만 명으로, 2021년의 3800만 명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평균 시간당 가치는 16.59달러에서 20.41달러로 23% 올랐고, 보고서는 이 상승분의 90%가 실제 재가돌봄 비용과 직접돌봄 노동자 임금, 최저임금 상승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가족돌봄이 납세자와 사회 전체에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주지만, 그 부담은 돌보는 사람의 건강과 삶의 질, 장기적인 경제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정부와 기업, 의료체계가 가족돌봄 제공자의 가치와 부담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지적은 지난 27일부터 의료·요양·돌봄을 하나로 묶은 ‘통합돌봄’ 서비스를 시작한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족이 병원 동행, 식사 지원, 복약 관리, 위생 보조, 정서 지원을 떠맡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를 위한 보완책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