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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제자리 노인 빈곤, “해법은 소득과 돌봄의 다층적 구성”

입력 2026-03-13 07:00

특별대담 : 2026 돌봄 대전환 원년, ‘초고령사회 골든타임‘을 점검하다 <3부>

▲본지 라운지 회의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토론 중인 박영란 교수(우)와 석재은 교수(좌).(이준호 기자)
▲본지 라운지 회의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토론 중인 박영란 교수(우)와 석재은 교수(좌).(이준호 기자)

2026년은 고령사회 대응의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이달에는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법’이 전국적으로 전면 시행되는 시점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돌봄을 단순 노인 복지 개념이 아닌, 의료·연금·노동·주거 등 사회 시스템 전체를 고령친화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이를 위해 본지 자문위원 박영란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대한민국 초고령사회 대응의 ‘골든타임’을 점검하는 특별 대담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대담 :

박영란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박영란 교수(이하 박): 석재은 교수님을 어렵게 모셨습니다. 석 교수님은 한림대에서 노인복지, 사회복지정책, 사회보장 분야를 연구해 온 학자이자, 한국사회복지학회, 한국노인복지학회 학회장과 제5기 사회보장위원회 실무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으며 학계와 정책 현장을 두루 이끌어 오신 분입니다. 우리 사회의 노후소득 보장과 사회보장체계 개편 논의에서 꾸준히 핵심 목소리를 내오신 분이라는 점에서, 초고령사회 대응을 묻는 오늘 대담에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기도 합니다.

박: 요즘 정부가 너무 조용합니다.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인구 전략'으로 개편된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논의 자체가 멈춰 선 듯한 느낌입니다. 고령사회 대책을 누가,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컨트롤 타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불안한 지점입니다. 보건복지부 안에서도 사업마다 따로따로 돌아가고 있을 뿐, 전체를 아우르는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박: 고령사회 정책의 '재설계'와 '재건축'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조항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고, 서비스 전달체계 역시 다양한 유형의 사업이 혼재된 채 운영되어 왔습니다. 사회보장기본계획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복지는 복지대로, 보건은 보건대로 하위 계획이 난립하면서 부처 간 유기적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왔습니다. 오래된 집을 땜질식으로 고쳐 쓰는 방식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입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제도 간 정합성을 근본부터 다시 맞추는 구조적 재편 작업입니다.

석재은 교수(이하 석): 맞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계획을 더 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을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는 것 바로 그 '재설계' 가 핵심입니다.

박: 최근 노인 빈곤율이 낮아졌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그러나 헤드라인이 말하는 것과 현장의 체감이 같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70세 이상까지 일하기를 원한다는 고령자들의 목소리가 있고, 노인 일자리가 110만 개에 달한다는 수치도 들립니다. 그렇다면 노인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말로 소득 제도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박영란 교수. (이준호 기자)
▲박영란 교수. (이준호 기자)

“계획은 많은데 전체 그림은 흐릿, 컨트롤 타워 안보여”

석: 노인빈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고질적이고 큰 문제입니다. 최근 빈곤율이 조금 개선됐다고 해도,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의 소득 변화가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전망을 보면 노인빈곤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진 않는다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노인빈곤은 앞으로도 심각하게 다뤄야 하는 핵심 과제입니다.

석: 다만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자산과 소득 흐름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세대이고, 이들이 노년층의 주류가 되면 소득 지형을 바꿀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자동으로 빈곤을 해소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기존 관행처럼 자산을 자녀에게 이전하는 방식으로 가면, 빈곤과 불안정은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박: 그러면 해법은 공적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석: 공적 제도는 핵심이지만, 그것만으로 끝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기초연금, 노인일자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공적 수단이 기본 축이지만, 본인의 자산을 노후에 최적화해 활용하는 전략도 같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택연금처럼 자산을 노후소득으로 전환하는 수단을 활성화하고, 자녀 부양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 자산으로 생활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가면,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적 불안정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노인빈곤·소득불안정 문제보다는 덜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박: 현 노인세대의 빈곤은 당장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제한돼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결국 무엇을 어떻게 조합해야 하는지, 이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석: 현 노인세대 빈곤은 우리가 투입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고정돼 있습니다. 이분들은 국민연금에서 이미 배제된 분들이 상당수 있는 상태이고요. 그래서 기초연금, 노인일자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이 세 조합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요즘은 근로장려세제(EITC)까지 포함해서 노인의 소득보장 제도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근로장려세제가 노인도 받게끔 바뀌면서 이 제도의 큰 수혜 집단이 노인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박: 제도 정합성 차원에서 보면, 그 자체가 또 질문거리이기도 하네요.

석: 맞습니다. 제도 설계의 의도와 현실의 작동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기초연금의 역할입니다.

▲석재은 교수.(이준호 기자)
▲석재은 교수.(이준호 기자)

기초연금, ‘정액·중하위 70%’로는 하위층 기본보장 불충분

박: 기초연금은 지금 정액으로 중하위 70%에게 지급되는 구조인데, 이 틀을 다시 봐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석: 그렇습니다. 노인 소득 분포를 보면 중하위 40%, 그러니까 하위 40%는 소득이 없는 계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구간은 기초연금, 노인일자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같이 작동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기초연금이 수평적인 정액 구조로 넓게 퍼지는 방식만으로는 노후소득 보장의 ‘기본 보장’ 기능을 충분히 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나옵니다.

석: 그래서 연금개혁 논의에서 ‘기초연금 구조개혁’이 주요 아젠다로 올라와 있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기초연금 구조개혁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 그런데 그 시점에 처음에 시작할 때 70%는 왜 70%였는지 혹시 아세요?

석: 기초연금 도입 당시, 한나라당은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100% 보편적 지급안을 주장했었죠. 반면 참여정부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재정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소득 하위 40~45%를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효도 연금' 도입을 추진했어요. 이후 여야는 정치적 절충안으로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까지 확대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대다수 노인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준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되,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력이 충분한 상위 30%를 제외함으로써 국가 재원의 효율성을 고려한 것이죠.

박: 게다가 기초연금 수급 여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 등 다른 제도의 참여 자격과 맞물려 있습니다.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것들이 연쇄적으로 흔들리는 구조이기에, 파급이 훨씬 더 큽니다.

석: 맞습니다. 더 중요한 건 기초연금이 도입될 때 목적이 세 가지가 겹쳐 있었다는 점입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보완, 국민연금 급여 인하에 따른 보충 기능, 그리고 노인빈곤 해소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목적은 제도 도입으로 상당 부분 달성된 측면이 있고, 두 번째 목적은 “보충이 필요한 대상 범위가 어디까지냐를 따져봐야 하는 영역입니다. 반면 세 번째 목적, 노인빈곤 해소는 여전히 아주 심각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초연금의 목적을 앞의 두 목적보다 ‘빈곤 해소’에 더 중심을 두고, 기능을 재정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진 겁니다.

석: 그래서 소득 하위 계층에 더 선택적으로 집중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자는 방향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방안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연금 수급자와 기초연금 수급자가 이원화될 수 있고, 계층을 통합적으로 연결해 주는 장치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따릅니다.

박: 결국 이건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시뮬레이션이 필요합니다. 누가, 어디서 이걸 책임지고 할 것인지의 과제가 남습니다.

석: 2023년에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한 흐름이 있습니다. 적정성 평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위원회 구성 형태로 논의를 다룬 건 처음이었습니다. 노인 소득 분포와 변화 추이를 보고, 기초연금 수급 범위를 어떻게 가져갈지, 국민연금이 개혁될 때 기초연금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여러 제도의 발전 모형을 놓고 장단점을 분석해 단기·장기 방안을 제안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석재은 교수.(이준호 기자)
▲석재은 교수.(이준호 기자)

노인일자리, 소득보전 수단으로만 봐선 안 돼

박: 제도들이 현장에서 충돌하는 지점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제가 읽은 기사 중에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던 분이 장기요양 4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일자리 참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결국 등급 자체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몸이 좋지 않음에도 월 30만 원의 소득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단편적인 사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충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석: 저도 100% 동의합니다. 노인일자리는 역사적으로 소득 보전의 ‘대리 제도’ 성격이 강했고, 그러다 보니 일의 의미나 사회참여 같은 가치를 충분히 실리지 못한 채 소득 보전 쪽으로 계속 경도돼 왔다는 점입니다. 연령 제한도 사실상 없고, 건강 상태를 참여 기준으로 삼는 구조도 약합니다.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을 분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격 제한에 걸리게 되면, "그냥 장기요양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택하겠다"는 선택을 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석: 저는 일자리가 이제는 ‘노인일자리답게’ 운영돼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싶습니다. 기초연금이 저소득층 소득보전 쪽으로 강화되는 방향으로 재편이 된다면, 노인일자리는 소득보전만이 아니라 일의 의미, 사회적 기여, 사회참여가 균형 있게 성취되는 구조로 가야 합니다.

박: 전달체계 관리 비용도 적지 않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석: 그렇죠. 제가 말하는 '정상화'는 일자리를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일자리 수당처럼만" 운용되는 흐름을 끊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시장 일자리에서 밀려나신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시민권 또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소득 때문에 몸이 아파도 나와야 하는 구조"가 계속되면, 본인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관계 속에서 자괴감만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 여기서 자연스럽게 다층 노후소득 보장 체계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층·중하층은 공적 제도의 조합으로 대응해야 한다면, 중산층 이상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함께 받쳐야 한다는 그림입니다.

석: 맞습니다.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이 저소득층에 ‘기본 보장’ 성격으로 작동한다면, 적정 보장을 위해서는 퇴직연금이 중산층 노후 보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퇴직연금은 사실상 ‘퇴직연금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석: 퇴직연금은 원래 퇴직금, 일시금 제도로 출발했고, 의무화가 됐어도 중도 인출이 상당 부분 허용돼 왔습니다. 그래서 퇴직 시점에 중도 인출을 거의 다 해 가고, 연금으로 받는 분들이 “한 10% 남짓” 수준에 머문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니 이름은 퇴직연금인데, 실제로는 노후소득을 ‘연금 형태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구조였습니다.

박: 상품 구조 자체도 장기투자에 불리하다는 말씀이시죠.

석: 그렇습니다. 가입 단계에서 원금보장 위주로 들어가고, 중도 인출이 상시 가능하니까 장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금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다는 비판이 나와도,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만 탓할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렇게 설계돼 있었다는 점을 같이 봐야 합니다.

박: 그러면 해법은 “중도 인출을 완전히 막자”로 가는 겁니까.

석: 완전히 막기는 어렵습니다. 기존 퇴직금 관행도 있고, 자기 주도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싶다는 근로자 목소리도 큽니다. 근로자의 자산 운용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퇴직금 관행에서 벗어나 일시금 형태의 중도 인출을 제한하고 상당 부분을 퇴직연금으로 수령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또한,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기금화 방안을 검토하고,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에서 일종의 '(시장이 관행 등에 안주하지 않도록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하는)메기'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민간 금융기관의 경쟁과 수익률 향상을 견인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고용노동부 소관의 퇴직연금 제도가 노후 보장의 실질적인 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박영란 교수. (이준호 기자)
▲박영란 교수. (이준호 기자)

주택연금, 개인의 리스크 줄일 수 있게 다층적 구조 가져야

석: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자산 운용의 패러다임 변화입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자산관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으로만 인식했다면, 이제는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질 테니 너희는 너희의 삶을 살아라"라는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주택을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노후 자산의 핵심으로 활용하겠다는 ‘주택연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주택연금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나 이율 상승 등 거시경제적 변동 리스크를 개인이 온전히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이러한 리스크를 보증해주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신뢰를 줄 때 주택연금은 비로소 매력적인 상품이 될 것입니다. 저는 주택연금이 국민연금, 퇴직연금과 함께 노후 소득을 지탱하는 견고한 ‘제3의 축’으로 제안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박: 교수님께서 짚어주신 주택연금의 리스크와 국가 보증 문제는 매우 중요한 핵심 쟁점입니다. 이런 깊이 있는 논의가 대중적인 콘텐츠에도 충분히 담겨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복지 담론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었습니다. '사회보장기본법'이나 '사회서비스' 같은 용어들은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조차 그 실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교과서적인 틀 안에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인 복지를 전공한 입장에서도, 퇴직연금 의무화나 주택연금의 국가 보증 구조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국민이 노후의 '소비자'로서 정당한 선택권을 행사하려면, 이러한 정보들이 대중의 눈높이에서 해석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집이 어떻게 내 연금이 되는지"를 스스로 이해하고, 막연한 불안을 덜 수 있습니다.

박: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 신뢰할 만한 정책 해설이 없다는 점입니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는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홍보성에 치우쳐 있으며, 국책연구소나 금융권의 보고서는 일반 시민이 읽기엔 너무 어렵습니다. 정보는 흩어져 있고, 정작 정책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국민은 "이 제도가 내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 채 불안 속에 놓여 있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같은 매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당사자를 위한 정책 해설자' 역할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세무·재무 전문가들이 제도를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코너는 많습니다. 그러나 제도의 앞뒤 맥락과 시대적 배경까지 짚어주는 깊이 있는 분석은 여전히 드뭅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안전망을 제공하겠다고 법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개개인은 각자도생의 불안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모순을 직시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석: 정보 전달의 오류가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지는 과거의 사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공무원 및 사학연금 개혁 당시, 급여율 삭감이 예고되자 많은 교직원이 당황했습니다. 사실 삭감은 개혁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었는데, "지금 퇴직하지 않으면 예전 요율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졌습니다. 지적 수준이 매우 높은 교사들조차 이 정보를 오해하여 대규모 명예퇴직 러시가 벌어졌죠.

이는 정책적 아젠다가 개인의 삶과 연결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복잡한 사회보장 제도를 국민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인 소통 창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담 중인 석재은 교수와 박영란 교수.(이준호 기자)
▲대담 중인 석재은 교수와 박영란 교수.(이준호 기자)

“통합돌봄, 지역 공동체 자원 활성화 해 자생적 모델 만들어야”

박: 대한민국은 사실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탄탄한 사회보장 프레임을 갖춘 나라입니다. OECD에 가입한 1995년에 사회보장기본법이 제정되었고, '사회사업'이라는 용어는 '사회복지'로, 다시 '사회서비스'로 진화해 왔습니다. 특히 2012년 법 전면 개정을 통해 보건의료, 주거, 교육, 문화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사회서비스 체계를 명문화한 것은 분명 선진적인 성과입니다.

그러나 10여 년이 흐른 지금, 제도의 존재감은 여전히 국민의 체감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최근 논의되는 '기본사회' 담론이 또 다른 '옥상옥'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쌓아온 사회보장의 역사를 먼저 복기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의 운동으로 탄생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기초선'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고용 불안과 새로운 사각지대에 대응하는 더 높은 수준의 '기본' 보장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할 때입니다. '기초'와 '기본'의 용어적 차이를 넘어, 국가가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보장할 기본선이 어디까지인지를 다시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석: 공감합니다. 사회보장기본법은 우리 사회보장의 상위법이자 우산법으로서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지자체의 제도를 조정하는 수준의 기술적인 역할에 머물러 온 측면이 있습니다. 정권에 따라 제도의 이름은 바뀔 수 있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지속 가능한 재정 구조 속에서 소득 보장과 돌봄이라는 두 축을 어떻게 조화롭게 운영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AI 기술이 가져올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여, 국민의 삶을 재생산하는 방식 자체를 고민하는 담론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박: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현실은 지역 간의 극심한 격차입니다. 농촌의 노인들은 응급실에 가야 할 긴박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방으로 이양된 사업들은 지자체의 재정 형편에 따라 그 질이 천차만별입니다. 경기도 내에서도 도청 차원의 관내 시군구 정책을 추진할 때 지역별 형평성 논리에 가로막혀, 취약 지역에 대한 긴급 지원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특히 농촌 현장에서 분투하는 생활지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 단지를 걸어 다니며 1인당 15~20명을 관리할 수 있지만, 농촌에서는 자동차로 이동해도 한 명을 돌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할당 인원은 똑같습니다. 돌봐야 할 어르신은 넘쳐나는데 자원은 없고, 지원사들은 개인의 신념과 헌신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현장의 이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사회보장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석: 그래서 필요한 것이 '통합 돌봄'의 실험입니다. 중앙 정부는 제도적 정합성을 조율하는 거시적 작업을 수행하고, 지역은 공동체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성화하여 아래로부터의 자생적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의 격차를 창발적인 아이디어와 공동체 의식으로 메워나가는 실험들이 통합 돌봄을 통해 시도되어야 하며, 중앙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유연한 정책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고비용 의료 자원에 의존 벗어난 돌봄 체계의 체제 개혁 필요”

석: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과제는 의료와 돌봄 체계의 근본적인 개혁입니다. 그간 고령사회 대응은 단기적인 처방이나 나열식 대책에 그쳐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키는 '체제 개혁'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병원이나 고비용 의료 자원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역사회 내에서 충분하고 유연한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체계를 재편해야 합니다. 가족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생애 말기까지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존엄하게 보낼 수 있는 구조, 즉 사회적 자원을 덜 쓰면서도 삶의 질은 높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의료-돌봄 통합 체계'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시대적 소명입니다.

노후 소득 보장이 '누구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의 문제라면, 의료와 돌봄은 '어떠한 시스템에서 함께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두 축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대한민국 노후의 불안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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