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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을 잘하는 방법? 그거 어렵지 않다

기사입력 2025-06-24 08: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충북 충주시 금가면 숲속에 사는 이난희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올해로 시골살이 5년 차에 이른 귀농인 이난희(59, ‘초록세상들꽃마을’ 대표)의 집은 숲속에 있다. 길차게 자란 온갖 나무들이 초록빛 아우성을 토하는 곳이다. 세상의 소음과 소란이 침범 못 할 산자락이다. 여기에 가득한 건 정적이다. 때로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정적을 휘저어놓지만, 일생을 고요하게 사는 나무들의 집단 거주지이니 분위기가 뒤집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나무와 숲을, 그리고 조용한 시간과 공간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에겐 영혼까지 맡겨도 무방할 일종의 파라다이스일 테다. 이를테면 이난희에게 이곳은 믿을 만한 안식처다. 그는 세찬 비가 오거나 폭설이 쏟아지거나, 불운이 방문하거나 악재가 겹치거나, 그 어떤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을 최상으로 친다. 그리고 이 숲에서 평온을 얻었다. 그것이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닐망정 심한 타격을 입을 경우에도 동요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타고난 성향과 숲에서 살며 얻은 에너지가 합세해 그에게 긍정의 눈을 달아준 것 같다.

요컨대 이난희는 대체로 태연자약하게 일상을 바라본다. 그는 이른바 ‘치유농업’에 꽂혀 치유농원을 만들었다. 아직 자리가 잡히진 않았다.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손에 쥘 만한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대응하는 게 상책이라고 보는 눈치다. ‘나여! 난처한 상황을 불러들인 게 누구냐? 바로 너 아니냐?’ 이렇게 남모를 독백을 하며 자신부터 점검하는 것 같다. 조바심 없이 현황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받아들인다. 그러곤 초심으로 돌아간다. 차분하게 대책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그는 어떻게 이 그윽한 숲을 찾아냈을까?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수익이 부족해 헤매고 있지만

“원래 이곳엔 양로원이 있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거기에 속한 직원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충주 시내 아파트에 살며 출퇴근했다. 처음엔 봉사활동 차원에서 양로원과 인연을 맺었으나 나중엔 아예 운영을 맡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양로원이 문을 닫게 됐고, 내가 그걸 사들였다. 치유농원을 꾸미기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치유농원 운영은 ‘농업 고시’라고 하는 치유농업사 시험에 붙어야 자격이 주어진다지?

“그렇다. 쉽지 않은 시험이다. 난 이곳에 들어와 농원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작업을 하는 한편 근 1년간 시험 준비를 해 합격했다. 평생교육사, 시민정원사, 도시농업사 등의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작년에 농원을 오픈했다.”


치유농업은 어떤 걸 말하나? 사람들은 대부분 생소한 부문으로 여길 텐데.

“근년에 나타난 새로운 농업 패러다임이다. 국가가 주관하는 까다로운 시험을 치르고 뽑힌 치유농업사들이 등장한 건 불과 3년여 전이다. 치유농업이 표방하는 목적은 매력적이고 이상적이다.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에게 신체적 건강과 심리적 안정감을 북돋아주기 위한 농업이니까. 이를 구현하기 위해 농장주는 작물 재배, 원예 활동, 동물 돌보기, 자연 체험 등 갖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한다. 한마디로 농장의 텃밭과 자연환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게 치유농업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농업이라니! 흥미롭다.

“진일보한 농업 파트이지 않을까 싶다. 반드시 필요한 농업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한 농업이면서, 동시에 농업인에게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활로니까.”


치유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참여자들은 보통 1주일에 하루 2시간씩, 총 6주에 걸친 연계 수업을 받는다. 우리 농원은 주로 발달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대상으로 삼는다. 프로그램 내용을 예로 들면 허브와 소금을 이용한 ‘허브소금 만들기’가 있다. 이건 참여자들이 텃밭에서 직접 허브를 가꾸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2주 차엔 허브를 따서 말리는 과정이 이어지고, 다음 주엔 소금을 빻는 작업을 한다. 이후엔 소금을 담을 도예 항아리를 손수 빚으며, 6주 차엔 완성된 항아리에 허브소금을 담아 집으로 가져간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작업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우게 되나?

“허브를 가꾸고 향기를 맡으면서, 혹은 항아리를 빚고 문양을 그려 넣으면서 즐거워한다. 감각적인 자극에 따른 집중과 교감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면서 정서적 안정에 이르는 것이다. 식물과 새소리를 ‘예쁘다’고 칭찬하며,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여자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에 이르기도 한다. 일반인에게 이건 대단한 일이 아니겠지만 그들에겐 특별한 경험일 수 있다. 무엇보다 우울감이나 외로움에서 벗어나 밝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이럴 때면 보람을 느낀다. 치유농업을 직업으로 삼은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농업 정책자들이 유능한 아이템을 도입한 셈인가?

“취지와 목적은 매우 좋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에 놓여 있다. 게다가 혼선과 정체가 빚어지고 있다. 현재 500명 이상의 치유농업사가 배출됐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치유농원을 운영하는 이들도 수익성이 너무 좋지 않아 고민에 빠져 있다. 내 경우가 그 대표다. 헤매고 있다.(웃음)”

이런! 이난희의 언사는 시종일관 나긋하고 수굿해 따사롭게 들린다. 얼굴엔 미소가 살갗처럼 붙어 있다. 하지만 농원의 부진을 귀띔할 때엔 한줄기 그늘이 스쳐 지나간다. 왜 아니랴.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치유농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가는 너무 빈약하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사람

국내의 치유농업은 아직 초보 단계에 있다. 정책의 전략은 엉성하고 파편적이며, 지원은 지속적이지 않다. 농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지만 겉포장만 화려하다는 평이 나온다. 수익 구조가 불분명한 채로 재정만 낭비하고 있다고 쏘아붙이는 전문가도 있다. 이난희의 불황은 이처럼 부실한 정책적 토대에 기인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치유농원도 없지는 않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력에 힘입어 활성화된 지역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탁상행정에 그치는 수준이다.”


농업정책은 흔히 용두사미로 흐르는 것이라 치고, 자력으로 헤쳐나갈 방법은 없나?

“기본적인 조건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 체험 활동을 하는 체험농원과 비교할 때 치유농원의 참가비는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돼 있다. 따라서 자력으로 참여자들을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애초 관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지만 나 몰라라 한다. 비용을 받지 않고 봉사할 테니 협조해달라고 해도 들은 척 만 척이다. 그럼에도 일반 농가들은 치유농업에 특혜가 주어지는 양 오해하고 반발한다. 이에 당국은 치유농업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치유농업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생각을 하고 있다.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웃음)”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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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겠다. 막대한 투자 비용까지 감안하면 고통스러울 테고.

“수익이 나오지 않는 현실인 데다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어려워 고심한다. 치유농원보다 수월한 체험농원으로 전환할 생각도 해보고, 아예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농원을 운영한 지 1년여밖에 안 된 마당에 조급한 마음을 가질 일은 아니라는 결론에 닿게 되더라. 고통? 그런 건 없다.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괴로워 머리를 싸매진 않는다. 무슨 벼랑 끝에 몰린 것도 아니고,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상황만도 아니다. 원했던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마땅히 겪어야 할 초기의 시행착오라 보면 그만이고. 게다가 사업을 하는 남편이 돈을 벌어와 밥을 굶을 일도 없다.(웃음)”


농사로 소득을 보충하는 건 어떤가?

“귀농하자마자 고구마, 옥수수, 도라지 등 밭농사를 해 수입을 도모했다. 현재도 일부 작물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도 건지기 어려운 게 농사라는 걸 알고 적극적이었던 태도를 아예 버렸다. 대신 인근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돌봄 교사로 일하며 수입원으로 삼았다. 요즘은 치유농업이나 꽃차에 관한 외부 강의도 한다.”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은 방기 없이 찾아내 뛰고 있는 셈이다. 빛과 그늘이 번갈아 찾아오는 게 생활이다. 가급적 밝은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대치의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지속이 가능한 게 인생이다. 누군들 여기에서 예외가 있으랴. 이난희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역시 최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특별하다. 그는 어쩌면 외유내강형 인간? 태도는 마냥 부드럽지만 짱짱한 내면이 슬쩍슬쩍 비친다. 그러하니 고독할 수 있는 숲속의 나날을 별다른 장애 없이 살아가는 거겠지. 하지만 소소하되 성가신 일이 날마다 펼쳐질 수 있는 게 시골 생활이다. 도시의 편리한 아파트 생활과는 아주 다르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농원의 부진한 상황을 제외하고 가장 힘겨운 일을 꼽는다면?

“(1초도 망설임 없이) 단연 풀 뽑기다. 겨울만 빼고 날이면 날마다 저 너른 터에 나가 풀을 뽑는다.(웃음) 제초제를 뿌리긴 싫고, 강철 같은 기세로 올라오는 풀들을 방치할 순 없고, 무자비하게 뽑아내자니 미안하고, 결국은 딜레마를 안고 산다. 잡초도 꽃이거니 하고 적당히 놔두는 쪽으로 생각을 돌린다.”


동물과 잘 지내기도 쉽지 않은 게 시골 생활이다. 집 안으로 침투한 뱀이 소파 위에서 똬리를 튼 경우도 봤다.(웃음)

“뱀은 거의 날마다 본다.(웃음) 말벌들의 광적인 활동도 유심히 관찰해 대처해야 한다. 이렇게 불편한 점이 있지만 적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골 생활엔 불편보다 편리가 더 많다. 내겐 그렇다는 얘기다. 먹고살 수 있는 기본소득만 확보된다면 얼마든지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게 시골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누리는 게 많다는 뜻이겠지? 무엇이 당신을 만족하게 하나?

“가장 큰 건 편안한 마음을 얻은 데 있다. 덕분에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건 숲이 준 무상의 선물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주 경험하는 평온한 상태. 이보다 더 나은 게 흔하진 않을 것 같다.”

자연을 마음에 두고 살기. 옷을 입듯 몸에 자연을 붙이고 살기. 그게 바로 즐거운 시골 생활의 비법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이난희가 주는 귀농 Tip

•귀농하기 전 농업에 관한 공부부터 충실하게 해두자. 그래야 실패나 실수를 면제받을 수 있다. 사전의 공부로 쌓은 실력을 귀농 필살기로 삼을 작정이라면 그는 현명한 사람이다. 귀농교육도 받지 않은 채 성급하게 귀농지를 정하고 땅을 먼저 사들이는 일처럼 심한 바보짓은 없다.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 안목이 생겼을 때 토지 장만에 나서라는 얘기다.

•너른 농토와 커다란 집을 마련할 생각은 삼가자. 규모가 클수록 손실도 비례해서 커질 수 있다. 특히 집을 크게 지을 경우엔 겨울철 난방비 부담도 커진다. 나는 임야와 농지가 한 덩어리로 묶인 너른 땅부터 사들였는데,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귀농교육부터 받았다면 굳이 너른 땅을 사진 않았을 것이다.

•치유농원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먼저 현장의 운영 실태를 면밀히 파악하자. 신중하게 판단해야 시행착오를 예방할 수 있다. 농원의 위치는 가급적 도시 근교에 잡아라. 접근성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 마음을 확 열고 접촉하라. 인사를 잘하라.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귀농 #귀촌 #농촌생활 #은퇴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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