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식이 만난 귀촌 사람들]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시골에 사는 허기열

‘아이고, 따분하다!’ 서울에서 전산 관리 회사에 다니다 정년퇴직한 허기열(64, ‘문경애(愛) 농장’ 대표)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온 건 은퇴 1년째였다. 해야 할 일도, 할 만한 일도 없어 지루한 나날에서 신속하게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 궁리를 해 찾은 답이 귀촌이었다. 아울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침내 문경시 마성면 시골로 이주했다. 그의 시골살이는 이제 겨우 2년이 지났다.
그에겐 묵은 정을 공유해온 동아리가 있다. 아내의 친정 쪽 사촌오빠나 언니들과 수십 년째 정기적으로 회식을 하는 등 매우 돈독하게 지냈다. 이 단란한 친족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꺼번에 시골행 열차에 오른 거다. 허기열을 포함해 5가구다. 어디에 살든 가까이서 살갑게 지내고 싶었던 그들은 마을 한곳에 나란히 집을 지었다. 변두리 호젓한 터에 근사하게 지은 집에 산다. 주변엔 산이 흔하다. 솔바람이 콧등을 치는 자리다. 산야에 사는 명가수인 새들이 악곡을 연주하는 곳이다.
문경을 귀촌지로 선택한 데엔 이유가 있다. 두터운 우애로 이어진 친척들의 원 거주지는 서울, 부산, 대구, 이천 등으로 제각각이었고, 그 중간 지역인 문경을 적지로 삼았다. 그들의 목적은 시골에서 한결 한가로운 삶을 구가하는 데 있었다. 산야에 펼쳐지는 자연을 마음 안으로 끌어들여 평온하게 살고자 했다. 한가하면서도 유쾌하게 지내길 원했다. 그 무슨 복잡한 일에 발목 잡히지 않은 채 재미있는 일상을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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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허기열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농사꾼으로 변신했으니까 말이다. 그는 현재 미나리 농사를 하고 있다. 1년 반째 자나 깨나 미나리를 생각하며 지낸다. 초보 농부다운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농사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초심자다운 소소한 애환과 소소한 보람을 경험하면서.
“매물로 나온 미나리 농장을 사들여 일을 시작했다. 농사 경험이 없었던 만큼 좀 쉬운 작물을 찾아내는 게 필요했는데, 미나리가 적당하다고 봤다. 전 농장주에게 들은 미나리 농사의 매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과수류와 달리 농사 첫해부터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제대로 할 경우 상당한 소득을 지속적으로 올릴 수 있으며, 재배부터 생산까지 작업 과정도 까다롭지 않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끌린 건 짧은 재배 기간이다. 전 농장주는 이런 얘기를 했다. 겨울 미나리의 경우 연중 늦겨울부터 초봄까지 서너 달만 열심히 일하면 안정적인 소득이 나온다고. 나머지 비수기엔 열심히 놀러 다녀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은 농사가 어디 있겠냐고.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호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미나리 농사에 뛰어들었다.”

농부들에 따르면 세상에 쉬운 농사는 하나도 없다. 미나리 농사는 정말 수월하던가?
“전 농장주의 얘기 가운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부풀려 얘기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걸 뒤에 알았다.(웃음) 예를 들면 이런 게 있다. 재배 기간이 짧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머지 기간에도 할 일이 계속 생기더라.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재배 기술을 익히느라 힘들진 않았나?
“힘들었다. 문경에 있는 미나리 재배 농가는 세 곳에 불과하다. 쫓아가서 기술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 미나리 주산지인 청도군의 농가들을 찾아가 부지런히 배웠다. 아내 역시 귀농교육 기관을 통해 공부했다. 이렇게 배운 것들로 농사에 적응해나갔다.”
보통 귀농하기 전에 귀농교육을 받아둔다. 이게 없인 시련 기간이 길어지게 마련이라서.
“나도 서울에서 교육을 받아둔 건 있다. 농사를 지을 작정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원래 일에 붙들리지 않는 귀촌 생활을 원했으니까. 그러나 농사에 발을 들여놓게 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귀농교육을 받았는데, 이게 꽤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미나리 농사의 포인트는 어디에 있나?
“미나리의 품질, 즉 향과 맛을 가르는 관건은 물맛이다. 좋은 물을 적시에 대주어야 미나리가 튼실하게 자란다. 우리 농장의 물은 지하 100m에서 뽑아 올리는 청정 암반수다. 최상의 수질을 보유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물을 효율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나리는 주로 밤에 자란다. 따라서 밤에 물을 주고 낮엔 물을 뺀다. 겨울밤의 하우스 보온도 암반수의 높은 수온으로 처리한다. 이를 위해 자정까지 농장에서 일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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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도 귀농해 합류하다
미나리의 비위를 맞춰가며 뒷바라지하는 일이 쉬울 리 있으랴. 농사가 다 그렇듯 미나리 역시 농부의 진땀과 식은땀과 팥죽땀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농부가 흘린 땀의 총량에 비례하는 성적표를 발부한다. 그렇다면 허기열의 성적은 어떨까. 농장은 2500평 부지에 지은 하우스 10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농사 첫해인 작년에 거둔 성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매출 기대치는 5000만~600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매출은 그것의 60%에 그치고 말았다. 서툰 게 많은 귀농 첫해의 매출임을 고려하면 아주 저조한 성과라고 할 수도 없다. 나간 건 많아도 정작 손에 들어오는 건 별로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빈손이 되기도 하는 게 귀농인들의 첫해 농사 실정이지 않던가.
“지난해 저조한 생산성의 원인은 수확량 자체가 적었다는 데 있다. 출하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탓이었다. 미나리는 줄기가 굵을수록 무게가 많이 나간다. 그런데 나는 미나리가 덜 자란 조기에 수확함으로써 무게가 덜 나가는 가느다란 걸 거둬 팔았다. 결과적으로 판매 물량의 규모를 줄이는 착오를 범했다.”
미나리에 대해선 어떤 평을 들었나?
“맛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향이 유난히 싱그러워 풍미를 즐길 만하다는 얘기였다. 이는 좋은 물을 씀으로써 얻은 효과로 분석된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좋은 향과 더불어 줄기에서 붉은빛이 나오는 미나리를 선호한다. 그게 더 맛이 좋기 때문이다. 향후 붉은빛을 내는 미나리 개발에 주력할 참이다.”
아들도 미나리 농사에 뛰어들었다지?
“서울에 살던 아들이 청년농부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1년 전쯤 부모의 농사에 합류했다. 대형 하우스 3개 동을 따로 지어 미나리를 기르고 있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른 귀농인가?
“그렇다. 도시에서 스트레스를 끼고 살 수밖에 없는 직장 생활을 하느니 일찌감치 농사에 입문하는 게 진취적인 삶이라는 생각으로 넌지시 귀농을 권했다. 아들은 일단 귀농교육부터 받아보고 판단하겠다고 하더라. 이후 안성에 있는 농협청년농부사관학교에서 6개월 코스를 밟은 뒤 귀농을 결행했다.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본다. 일에 치여 사는 나로서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셈이다.(웃음)”
아들이 농사와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나? 한창 뜨거운 청춘이 고즈넉한 농촌에 산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묵묵히 잘 적응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회의에 빠져 고민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물론 힘든 부분이 많을 테지. 그러나 무던하고 건실한 아이다. 애환을 잘 헤쳐나갈 거라 생각한다. 머잖아 아버지의 실력을 추월하는 농부로 성장할 걸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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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자체는 재미있더라
아들이 대견해 죽겠다는 투로 싱긋 웃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허기열은 바쁘게 산다. 초보 농부의 딱지를 붙이고 매사 적극적으로 뛴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농사에 쏟아붓는다. 그러지 않고선 궤도에 올라설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귀농 전 그는 농사가 까다로운 직업임을 미처 몰랐다. 따라서 퍼즐을 맞춰나가듯 더듬더듬 농사의 기법과 맥락을 다듬으며 버거운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허기열은 만족스럽단다. 무엇이 그를 자족하게 할까. 정신 승리에 불과한 건 아닐까?
“한번은 300평 밭에 들깨와 고구마 등을 길렀는데 몽땅 망쳤다.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생활의 최전선임을 깨달았다. 다소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시골에 왔다는 자각도 있었다. 그러나 얻은 게 많다. 일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일을 찾았다는 안심, 자율적으로 살고 있다는 쾌감, 삭막한 도시엔 없는 자연과 함께 사는 즐거움 같은 게 그렇다. 그러니 무슨 큰 불만이 있겠나? 더구나 농사가 적성에 맞는다. 고생한 대가가 제대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농사 자체는 재미있더라. 이건 진심이다. 한마디로 난 만족하며 산다. 그런데 아내는 다르다.(웃음)”
아내는 불만이 많다는? 여성들은 흔히 귀농을 질색한다.(웃음)
“때로 서울을 그리워한다. 쇼핑할 곳 없고, 병원은 멀고, 외식하기 어렵고, 마을엔 할머니들 일색이고. 아내가 만족할 만한 요소가 사실 드물다. 게다가 이상한 벌레만 봐도 십 리는 달아나는 사람인데, 시골엔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뱀도 많다.(웃음) 그러니 얼른 정이 들겠나? 마음은 반반이다. 반은 서울에, 반은 시골에 두고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수시로 농장으로 불러내 일을 시켜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별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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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겪은 가장 괴로운 일을 꼽는다면?
“관청에 민원 넣기를 취미처럼 반복하는 이의 말도 안 되는 민원을 당해 한동안 괴로웠다. 연간 300건의 민원을 넣는다는 이 민원 대장은 문경에서 아주 유명한 괴짜다. 주민에게 사경에 이르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얘기도 들었다.(웃음)”
어디서든 연속 상영되는 건 희로애락의 드라마다. 그런데 미나리 농사의 앞날은 어떻게 내다보나?
“농사를 시작한 데엔 돈벌이 목적도 있었다. 여생을 연금에만 의존할 수 없어서다. 부지런히 뛸 참이다. 아들까지 합류해 활력을 얻은 만큼 날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좌우명이랄까, 나의 신조를 들어보겠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라는 거다. 한 10년, 끝까지 고고싱! 그런 다짐으로 산다.”
그는 실컷 달리고 싶다. 아직은 요상하게 앞을 가로막는 게 있지만, 그게 무슨 철의 장벽이겠냐라는 배짱으로. 농사며 일상이며 아직 반짝이는 게 드물지만, 긍정과 낙관을 놓치지 않으며. 허기열의 산뜻한 집 거실 창가에 겨울 햇살이 바스락거린다.
허기열이 주는 귀농 Tip•귀농하기 전에 미리 농촌 현장에서 경험을 쌓자. 지자체들이 예비 귀농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미리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게 좋다. 이를 통해 지역의 풍토와 자연환경, 주요 작물 현황, 교통 상황, 편의성 여부 등을 한결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빈집을 빌려 3~4개월 정도 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귀촌이나 귀농 희망자들은 대부분 여생을 시골에서 보낼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미리 살아보기’를 번거롭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미래의 20~30년 여생을 위해 3~4개월쯤 미리 투자하는 건 똑똑한 처신이다.
•가급적 지인이나 친척들과 함께 내려오는 게 좋겠다.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시골 생활의 어려운 대목을 용이하게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즐겨라. 어렵지 않다. 노인들이 모이는 마을회관에 때때로 막걸리, 빵, 음료수 등을 넣어줄 줄 아는 사람이라면 호감을 사게 마련이다. 농촌의 특성상 원주민들에겐 배타성과 보수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