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식이 만난 귀촌 사람들] 강원 횡성군 공근면 산골에 사는 이현희

어느덧 침상에서 깨어난 봄이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다. 그러나 강원도 횡성의 산중은 아직 한겨울이다. “제가 사륜차를 타고 내려갈 테니 큰길가에 차를 두고 기다리세요.” 귀농인 이현희(75, ‘이브사과원’ 대표)가 전화로 한 말이 그랬다. 산골을 오르내리는 농로가 얼어 위험하다는 얘기였다. 그의 차에 올라탔는데, 산간 소로로 접어들자마자 일변 설경이 펼쳐진다. 울창한 숲에 내려앉은 눈 더미로 눈이 부시다. 드문드문 보이는 인가들도 눈을 뒤집어쓴 채, 산 아래 이미 도착한 봄이 궁금하다는 투의 표정을 짓고 있다. 깊고 적막한 산촌이다.
이현희의 집은 개중 외진 둔덕에 있다. 주변에 보이는 건 다만 두 가지다. 울창한 숲, 그리고 숲 저 위로 빠끔히 열린 새파란 하늘. 이곳은 어쩌면 낙원이다. 눈과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문명적이고 인위적인 것들의 횡포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대체로 세속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이들이 이런 곳을 좋아한다. 외톨이 은자로 살며 자유자재를 도모하는 이들에게 적격일 곳이다. 그렇다면 그는 산중 은둔으로 뭔가 삶의 비밀을 찾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나? 혹은 도시라는 거칠고 고단한 정글에서 코피를 세 사발쯤 쏟고 어쩔 수 없이 고요한 산중으로 퇴각했나? 아니다. 그는 그저 보기 좋고 순수한 자연경관을 추구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땅한 곳을 찾다가 이곳을 꾹 점찍고, 아내와 함께 귀농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수려한 자연과 더불어 오붓하게 살길 원한 아내에게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산촌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차질 없이 실현됐다.

풍경과 분위기에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어떻게 이곳을 찾았나?
“귀농하기로 맘먹은 이후 우리 부부는 틈틈이 곳곳을 답사했다. 하지만 적합한 정착지를 찾지 못했다. 애초 오매불망 향수를 자아내는 나의 고향 하동군 쪽으로 내려가려 했다. 내심 정해둔 터도 있었다. 그러나 산사태로 무너지면서 포기해야 했다. 이 동네를 만난 건 설악산 구경을 하기 위해 스쳐가던 길에서였다. 한눈에 딱 마음에 들더라. 우리가 원했던 자연 풍경이 여기에 있었으니까. 게다가 매물로 나온 집도 있었다. 1000평쯤의 밭이 딸린 작은 집이다.”
집이 아담하고 튀지 않아 인상적이다. 주변 자연과 잘 어울린다.
“오래된 집이라 허름한 구석이 많았다. 곳곳에 곰팡이가 슬기도 했다. 그런 걸 수리해 입주했다. 가장 좋은 조건은 숲속의 집이라는 점이다. 숲길 산책을 즐기며 산나물을 얼마든지 얻어올 수 있다. 집 뒤로 돌돌거리며 흘러가는 실개천의 시원한 물소리도 귀를 씻어준다. 더 보탤 것도, 더 원할 것도 없는 산중이다.”

고령자에겐 서서 하는 농사가 안전해
숲엔 소나무와 잣나무가 지천이다. 잎사귀들이 뿜는 초록으로 꽉 찬 산기슭이다. 그 누구도 흔들어놓을 수 없는 고요와 평온이 가득한 산골이다. 세상의 소음과 악다구니가 틈입할 수 없는 일종의 이방이다. 취향에 따라선 난감한 곳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무료와 고독이 겹으로 쌓여 사람이 눌러앉기엔 곤란한 벽지라고 보는 눈들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현희 부부는 끄떡없다. 귀농 10년 세월을 무탈하게 지냈다. 살맛 나는 날들의 행진에 급박한 제동이 걸리거나, 딱히 머리를 감싸 쥐고 고심해야 할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원하던 곳에서 원하던 방식으로 영위하는 삶의 품질이 이렇게 준수하다.
그렇다면 밥벌이는? 이현희가 뭉칫돈을 들고 산에 들어온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형편이 옹색하지도 않다. 그저 고만고만한 정도의 안정된 가계를 꾸려나가며 자족한다. 그는 소일거리 삼아 사과 농사를 짓는다. 그것으로 돈을 만든다. 돈도 돈이지만 일을 지속할 수 있다는 데 안도한다. 건전한 노동을 일상적으로 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농사를 그는 매우 유능한 직업으로 친다.
사과 농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10여 년 전, 그러니까 내가 귀농한 즈음 강원도에 사과 농사 바람이 일었다. 기후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소득 작물로 부상했다. 큰 일교차, 높은 해발고도 등 강원도 특유의 재배 환경을 통해 달고 상큼하고 아삭아삭한 고품질 사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서였다. 그래 사과를 유망 작물로 판단하고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학습하는 셈치고 300평 정도 운영하다가 차후 800평으로 늘렸다. 사과 농사를 시작한 데엔 다른 큰 이유도 있다. 주로 쪼그려 앉아 일하는 일반 밭농사는 자칫 무릎관절이 망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서서 일하는 사과 농사는 고령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다. 바로 그 점에 착안했던 거다.”
사전 준비는 어떻게 했나?
“우리는 안산시에서 살다 귀농했다. 경기도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을 미리 공부하고 내려왔다. 사과 농사를 결심한 뒤엔 사과 농가들을 견학해 기술을 습득했다. 초심자의 입장에서 농사가 쉽진 않았다. 그러나 극복했다.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
사과 재배 기술의 포인트를 꼽는다면?
“날씨 변화를 민감하게 살펴 적시에 방제를 하는 게 중요하다. 방제엔 교과서가 없다.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과학적 영농도 필수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사과나무를 향한 애정이다. 나무들의 요구를 채워줘야 한다. 내 자식인 양 살뜰하게 뒷바라지해야 한다.”

‘횡성사과연구회’를 만들어 사과를 지역의 명산품 반열에 올려놓았다지?
“유망한 작물임에도 관이 관심을 갖지 않아 단체를 구성했다. 그것으로 사과 농업의 활로를 개척했다. 횡성군의 관심과 지원 정책을 유도했다. 효과는 매우 컸다. 재배 농가와 재배 면적이 10배로 늘었고, 사과 농사의 후발주자였던 횡성이 일약 사과 명산지로 떠올랐으니까. 농사를 지으며 바라는 건 하나다. 농업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특히 청년들에게 실증해 보이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농촌의 어버이들에게 신세를 지고 살아왔다. 그렇다면 은혜를 갚아야 한다. 농촌이 살아나도록 우선 청년 농부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사과로 얻는 소득은 어느 정도인가?
“2024년의 경우 연 매출 4300만 원을 올렸다. 이 중 70%가 순소득이다. 이쯤이면 충분하단 생각이다. 농사 덕분에 따분하지 않은 노년을 보낼 수 있고, 농사가 곧 운동이니 건강에 차질이 없고, 일정 소득이 나와 자식들에게 손 벌릴 일이 없으니, 여기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나. 농사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업이다. 일찍부터 나의 귀농을 ‘수익형 헬스귀농’이라 이름 붙이고 나름의 일관된 방향을 향해 걸어왔다.”

‘서로 사랑하라, 조건 없이’
다들 알다시피 농촌엔 거의 노인들만 남았다. 이현희는 올해로 74세지만 이 마을에선 ‘청년’으로 통한단다. 이렇게 요상하고도 ‘웃픈’ 농촌의 현실에 그는 통탄한다. 젊은 피의 응급 수혈이 필요하다고 본다.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청년들이 뛰어들어 꿈을 펼치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춘 게 농촌이라고 판단한다.
이렇게 농촌의 우울과 희망을 동시에 읽는 이현희에겐 농사 외의 일도 많다. 억울한 피해를 입고도 호소할 방법을 모르는 농민들을 위해 공익적 활동에 나서는가 하면, 귀농인과 원주민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상생협의회를 만들기도 했다. 세상 어디나 그렇듯, 공공의 일 앞엔 흔히 차가운 벽이 가로놓인다. 특히 약삭빠른 기득권자들이 음으로 양으로 동원하는 방어벽이 두껍다. 현실이 그렇더라도 그는 해볼 건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을 찾아 자신을 쏟아붓는다.
이런 이현희를 두고 걱정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대외활동을 하다가 행여 건강과 마음을 해칠까 염려하는 이. 그건 그의 아내가 아니고 누구랴. 하지만 아내 역시 만류하진 않는다. 올곧은 일, 쓸모 있는 일은 누가 뭐래도 해야 한다는 사고를 부부가 공유하는 거다. 유유상종이다. 사실 이 부부의 금슬은 유별나다. 세상엔 커피가 식는 속도보다 빠르게 식는 사랑이 흔하다. 하지만 이들은 인생의 가을에 이르러서도 해맑은 정을 나누며 산다. 그러자고 손잡고 산촌에 들어왔다. 일도 많고 재미도 많은 산중 생활이지만, 이현희의 목적은 여하튼 아내를 기쁘게 하자는 데 있다. 하다못해 TV를 보거나 운전을 할 때도 한쪽 손은 아내의 손을 잡아 쥔 채로 꼬무락거린다는 게 아닌가. 아내에게 ‘빙의’된 남자다.
“귀농으로 얻을 건 다 얻었다. 아내의 신뢰와 사랑을 얻었다. 완전한 만족을 느낀다. 햇살이 들이치는 창문을 여는 아침마다 행복감을 맛본다. 달과 별과 물소리를 아내와 함께 만끽할 수 있어 너무도 좋다. 내가 원래부터 이렇게 꽤 괜찮은 남편은 아니었다. 별것 아닌 일로 아내에게 욱하고 성질을 부리는 수준의 인간에 불과했다.”

산에 살며 변했다?
“나를 바꿀 필요를 느낀 건 귀농 이전이었다.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다. 난 안산에서 제약회사를 다니며 가장 노릇을 했다. 그러다 회사에 바른 소리를 했다가 잘렸다. 이후 아내가 가계를 책임졌다. 귀한 사람을 각박한 생활전선으로 내몰아 고생시켰다. 숫제 귀한 줄도 몰랐다. 술과 담배와 고스톱 따위를 즐기며 시간을 낭비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막역한 술친구가 암으로 죽었고, 그 충격으로 번민하다가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됐다. 지푸라기를 거머쥐는 심정으로 기독교에 입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귀농은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 아내에게 잘하자는 생각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산에 들어왔다.”
도시에서 사이좋게 살던 부부가 귀농 뒤 오히려 갈등을 심하게 겪는 경우도 있다. 시골 생활의 한정된 틀 속에서 부부가 밤낮없이 얽혀 살다 보면 불화가 생길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부부가 각자의 외부 활동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 난 아내의 등을 떠밀어 외부와 만나게 한다. 산에 살면서 집에만 머물다 보면 우울증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를테면 읍내의 문화공간을 드나들며 댄스스포츠, 난타, 기타 같은 걸 즐긴다.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맘만 먹으면 산골에서도 얼마든지 유쾌하게 살 수 있다. 촌을 답답하게 보는 이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생각보다 훨씬 넓게 열린 삶터다.”
10년 뒤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
“노부부가 손잡고 치악산을 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게 내 눈엔 멋진 황혼의 블루스로 보였다. 나 또한 그렇게 늙고 싶다. 여한 없이 아내를 사랑하다 껄껄껄 웃으며 끝을 내고 싶다.(웃음)”
이현희는 미리 쓴 유언장에 묘비명을 적어두었다. ‘서로 사랑하라, 조건 없이’라고. 사랑이 나를 구하고 너를 건진다는 뜻이겠다. 이건 인생의 정답이다. 평범한 진실이다. 하지만 실천하긴 어렵다. 이현희는 여기에서 예외다. 아내 사랑에 관한 한 그는 무적함대다.
이현희가 주는 귀농 Tip•횡성군 인구의 38%가 귀촌·귀농인이다. 타 지자체에서 보기 드문 높은 비율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30% 정도가 도시로 돌아간다. 역귀농의 큰 원인은 소홀한 준비에 있다. 준비 없이 무계획적으로 왔다간 사필귀정처럼 쓴맛을 보고 중도에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 사전에 귀농교육을 충분히 받아두자.•농토를 마련할 땐 농업용수 조달 상황부터 파악하라. 농사엔 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원이 확실하지 않은 농지 매입은 금물이다.
•소득 창출을 목적으로 한 전업농의 경우엔 한결 신중하게 접근하자. 의욕만 가지고 대충 농사를 시작했다간 일이 꼬일 수 있다. 토질과 기후와 작목의 상호 적합성을 따져 귀농지를 선택하는 게 옳다. 토양 검사도 필요하다. 농업기술센터를 통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텃세를 걱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역지사지의 태도 하나면 문제없이 살 수 있다. 일단 원주민을 포용하는 처신이 현명하다. 하나를 베풀면 반드시 하나가 돌아오는 게 시골 인심이다.
•산속으로 귀농할 경우엔 산불에 대비해 옥외소화전을 구비하자.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소방 호스를 갖추는 게 좋다.